“56년생 배우 유동근 결국 안타까운 소식…” 왜 그래야만 한걸까… 갑작스런 그의 충격 고백.. 말 못할 사연 내용을 알아보세요..

유동근 씨는 참 멋진 배우입니다.

사극

현대극, 멜로, 막장 드라마 등 어떠한 역할도 훌륭히 소화하는 대표적인 배우죠.

전인화는 장희빈이라는 역할이 너무 부담이 되어 유동근으로부터 연기 지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연기 선생님과 제자로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하네요.

연예계 잉꼬부부 유동근, 전인화의 남다른 러브 스토리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데요.

하지만 실제 인간 유동근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다시는 연기를 못 할 거라는 생각에, 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해 봤고, 또한 아내가 걱정되어서 감독에게 항의하는 도중에 해서는 안 될 완력까지 사용한 결과, ‘용의 눈물’이 아니라 ‘용의 주먹’이라고 조롱당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전인화는

1985년 KBS 드라마 ‘초원의 뜨는 별’로 데뷔를 했는데요.

데뷔 초부터 참하고 단정한 미모로 지고지순한 역할을 맡아 총망 받는 신인으로 떠올랐죠.

그녀는 연기를 시작한 지 2년도 안 되어 ‘인현 왕후’라는 드라마에서 ‘장희빈’ 역할을 맡게 됩니다.

당시 감독이 사극의 대가인 이병훈 감독님이셨는데요.

전인화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인데, ‘장희빈’ 같은 큰 역할은 자신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했죠.

그러자 이병훈 감독님이 하는 말이 ‘어떻게 신인이 내 작품을 거절하느냐’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인화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희빈’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새내기 연기자에게는 아무래도 너무 벅찬 역할이었죠.

그래서 그녀는 ‘장희빈’ 역을 잘하기 위해 연기 선생님을 구하게 됩니다.

장군의 딸로 유명한 ‘김을동’ 씨가 유동근을 추천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은 사극 연기 선생님과 제자로 만나게 되었고, 정말 빡세게 연기 지도를 받게 됩니다.

유동근은 엄격한 선생님이었다고 하는데요.

칭찬도 야박했고, 항상 단점을 알려주며 혹독하게 연기 지도를 했죠.

또한 유동근은 전인화에게 한밤중에 냉면을 사 오라고 시키기도 하고, 제대로 군기를 잡았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츤데레 같은 모습에 전인화가 반하게 됩니다.

당시 전인화는 모태 솔로였고, 나이트 장이나 미팅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유동근은 1년간 사극 연기 지도를 해줬고, 1년간의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전인화는 항상 엄격하고 무뚝뚝한 유동근의 모습에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되죠.

유동근의 혹독한 사극 연기 지도의 전인화의 연기력도 일취월장하게 되었고, 결국 초반에는 연기를 못 해서 욕을 먹다가 마지막에는 칭찬을 들었다고 하죠.

 

전인화는

당시 유동근이 방송 모니터까지 하면서 열정적으로 지도를 해준 것이 굉장히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 그리고 드라마 종영 후 회식 자리에서 술이 취한 유동근이 전인화에게 키스를 하게 됩니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기도 전에 입술을 뺏긴 그녀.

당시 정말 순수했던 전인화는 입술을 뺏겼으니 ‘결혼을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갑자기 유동근에게서 연락이 뚝 끊기고 말죠.

입술까지 뺏긴 전인화는 당황하게 됩니다.

유동근이 갑자기 연락을 끊은 사유는 이랬습니다.

사실 그는 당시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고, 후유증이 굉장히 심했다고 합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음주운전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와서, 유동군과 친구가 탄 차를 들이받았죠.

 

 

 

그는 자신이

운전을 했고, 친구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핸들을 자신 쪽으로 꺾어서 크게 다쳤다고 털어놨습니다.

유동근은 1년 정도 재활 치료를 진행했는데, 20대인데 이가 다 부서져서 틀니를 꼈다고 하죠.

현재도 갈비뼈 2대가 없지만,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유동근은 자신이 결혼할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도 ‘넌 다른 생각 말고, 나랑 살자’라고 했고, 그래서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전인화는 갑자기 연락을 끊은 유동근의 집으로 찾아오게 되는데요.

그는 자고 있느라 틀니를 소독약에 담가놨는데, 그걸 본 전인화는 그제야 그가 많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무런 말 없이 동근을 껴안고 울 수밖에 없었죠.

1988년 그렇게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고, 사귄 지 1년여 만인 1989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전인화는 굉장히 총망 받는 신인 여배우였고, 얼굴도 예뻤기에 ‘왜 9살이나 많은 유동군과 결혼하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고 하는데요.

그 후 전인화는 한결같이 남편의 곁을 지켰고, 성치 않은 몸을 끌어안아 주었죠.

전인화는 “처음엔 유동근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그냥 사고 났다는 말만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다. 유동근이 턱뼈에 쇠를 넣는 대수술을 두 번 했다. 찾아가서 얼굴을 보는데 퉁퉁 부어 있더라. 유동근은 결혼한 후에도 전신 마취 수술을 스무 번 했다”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겨냈던 시간들, 두 분의 사랑이 너무 아름답네요.

유동근과 전인화는 30년이 넘은 결혼 생활에도 연예계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유명한데, 전인화 씨가 촬영 중일 때는 커피차를 보내 부부 금슬을 확실하게 보여주기도 한다는데요.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는데, 아내인 전인화가 출연 중이던 드라마 ‘왕과 나’의 책임 프로듀서와 조연출을 폭행한 적이 있었죠.

 

본인이 주장하는

폭행 이유는 대분이 쪽대본 형식으로 너무 늦게 나와 촬영이 길어지면서, 아내의 몸이 안 좋은 상태라서 배려해 줄 것을 부탁하는 와중에 제작진이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고, 막장스러울 정도의 쪽대본 때문에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정황을 따져보면 ‘왕과 나’ 촬영 당시 쪽대본 그리고 이런저런 사유 때문에 그날따라 몸도 아픈 상태이던 아내 전인화가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리는 바람에 유동근 씨가 화가 나서 따지러 간 것 같은데요.

본인 주장에 따르면 아내가 걱정되어서 항의하는 와중에도 책임 프로듀서가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도 연기자이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항의한 취지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완력을 사용한 건 아무래도 잘못이 맞는다고 인정했죠.

설상가상으로 이 사건이 터진 후 이 드라마의 연출자인 고 김재형 피디도 건강상의 이유로 사극 제작에서 완전히 은퇴합니다.

 

그리고

이걸 보고 온라인상에선 ‘용의 주먹’이라며 조롱하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이 바람에 sbs 드라마는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가, ‘아테나 전쟁의 여신’의 nts 국장 권용관 역으로 출연이 확정되면서, 4년 만에 sbs 드라마로 컴백하게 되었죠.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압도적인 흑역사로 일컬어지는 ‘연개소문’도 sbs 작품인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sbs와는 악연인 듯합니다.

대중은 유동근을 ‘왕’ 전문 배우로 기억하는데, 군주 역할을 많이 맡았기도 하고, 특유의 후덜덜한 발성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각인시키는 탓도 있죠.

비슷하게 카리스마형 배우로 유명한 김영철이 ‘야인 시대’와 ‘태조 왕건’에서의 귀청이 떨어질 듯 쩌렁쩌렁한 호통으로 유명하다면, 유동근은 마치 호랑이가 낫게 으르렁거리다가 포요하는 듯한, 절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초저주파 타입의 호통인데요.

사자후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고 그야말로 전설입니다.

사극의 주요 배역에서도 카리스마가 있고, 강력한 권력자 역을 많이 맡았는데, ‘용의 눈물’에서 연기한 태종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죠.

 

이때 보여준

연기는 대중에게 길이길이 남았으며, 나중에 처음으로 연기 대상까지 받게 됩니다.

‘용의 눈물’에서는 명 장면이 많았지만 거기서도 ‘용의 춤’ 부분을 최고로 치는데, 이 장면은 유동근, 김무생, 최명길 모두가 폭발한 장면이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죠.

특히 ‘용의 눈물’에서 유동근이 맡은 태종은 한국 사극 역사상 최고의 연기이자 최고의 캐릭터로 꼽히는데요.

이때 유동근의 나이는 40대에 막 접어들었을 때였고, 배우로서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 나이에 한국 사극 역사 나아가 한국 연기 역사의 길이 남을 연기를 한 것이죠.

그러니 당연히 연기 대상을 받았고, 2002년에 그에게 다시 연기 대상의 영광을 준 ‘명성황후’에서 ‘흥선대원군’ 역할을 맡았을 때 최고의 장면은 대신들에게 경복궁 증축의 필요를 역설했던 장면인데요.

조용조용하게 매우 낮은 톤으로 영국 공사의 자금성 입성기를 들려주다가, 조두순이 끼어들자 순간 ‘걸어서 가겠네, 걸어서 가겠네’라고 크게 호통을 치고, 다시 조용한 톤으로 돌아가는데 면전이었으면 오줌이라도 찔끔 지릴 수준이었죠.

정도전에서도 정몽주와 논쟁 중 ‘정몽주!’라고 내지르는 장면도 압권으로 네이버 추천 검색에 올라올 정도였는데, 유동근이란 배우의 힘을 알 수 있는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고, 정몽주에게 내지르는 이 영상을 보면 그 특유의 성난 음색이 드러납니다.

 

유동근은

데뷔 초부터 왕 전문 배우였던 것은 아니었고, 처음에는 비중 없는 포졸이나 자객으로 사극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언급에 의하면 “사극 분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데뷔 초 젊은 시절에는 아직 왕의 얼굴이 아니었는데, 이젠 본인이 보기에도 자신의 얼굴이 왕의 얼굴처럼 보인다”라고 합니다.

34년간의 결혼 생활에도 여전히 잉꼬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동근과 전인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데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