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도 모친 숨지더니 끝내 최근 들려온 그의 근황…” 딸 이승아 마저 눈물겨운 소식을 지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트로트의 황제’ 설운도의 노래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설운도 그의

노래 ‘사랑의 트위스트’에는 추억이 녹아 있고, 보랏빛 엽서’를 들으면 아픈 이별의 기억이 떠오르고, ‘다 함께 차차차’로 힘든 순간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던 설운도가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지 벌써 40년이 되었죠.

얼마 전 안타깝게도 설운도의 어머니는 사기를 당해 드러눕게 되었고, 병원 신세를 지다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 바보라는 말을 들으며 애지중지 키웠던 딸 이승아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의 아픈 가족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설운도는 ‘트로트계의 싱어송라이터’로 통하는데, 그는 노래도 잘 부르지만 작곡 실력도 뛰어나죠.

설운도의 히트곡 ‘쌈바의 여인’, ‘보랏빛 엽서’, ‘사랑이 이런 건가요’ 등은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는데요.

지난해에는 설운도가 임영웅에게 선물한 노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대박 나기도 했습니다.

가수 설운도의 본명은 이영춘인데요.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 설운도는 이영춘이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 예명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설운도라는 이름을 생각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운도는 처음에는 스스로 나훈아처럼 최고의 가수가 되자는 뜻과 그리고 권투의 라운드처럼 가수 인생의 매 라운드를 열심히 살자는 뜻에서 나운도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매니저가 운도는 괜찮은데, ‘나’라는 성이 좋지 않아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고 하여 다른 성을 연구하다가 ‘설’이라는 성이 ‘운도’와 잘 어울려 ‘설운도’로 예명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설운도의 나이는 1958년생으로 올해 65세이고, 고향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이라고 하는데요.

설운도는 부산 한독원예학교 재학 중,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연탄 배달에 나섰다고 합니다.

형편이 그렇다 보니 설운도는 이후 정상적인 학교 과정을 밟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동아대학교에 들어가 체육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요.

 

 

 

설운도는

한 방송을 통해 아픈 가족사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어머니가 하숙 생활을 하시면서 하숙집 아들을 만났는데, 미 8군 통역관이었다고 하죠.

두 분이 결혼했는데 외할아버지가 치과 의사셨고 부유하게 살았지만, 설운도의 아버지가 금지된 약에 손을 대면서 집안이 몰락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약 중독을 이기기 위해 술을 드시다 알코올 중독이 되셨는데, 어머니가 자식 때문에 가정을 홀로 지키셨다고 하죠.

그래서 집이 몰락하는 바람에 장남인 설운도는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70년대 당시 펑크 소프트 록 밴드 트리퍼스의 대타 보컬리스트로 돈벌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나이트클럽에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정이 바쁘면 대타를 세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그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설운도의 어머니는 원래 교편생활을 오래 하시다가 공무원 생활을 하셨다고 하는데요.

우연히 노래자랑에 참가하셨다가, 우승하시는 바람에 부산 mbc 전속 가수가 됐다고 합니다.

이후 설운도는 육군에 입대하여 전역한 뒤 1982년 당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KBS 신인 탄생에 출연해 프로그램 5주 연속으로 우승하며, 데뷔 이듬해인 198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출연하여 데뷔 곡인 ‘잃어버린 30년’을 부르게 되었는데 하루 만에 빅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30년’은 원래 ‘아버지께’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노래인데, 이산가족 생방송을 하는 걸 매니저가 보고 작사가 박건우에게 전화를 걸어 작사를 요청했고, 하룻밤에 작사, 그다음 날 녹음, 모레에 방송, 하루 만에 엄청난 히트를 하여 이후 이 곡은 녹음 후 최단기간에 히트한 곡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게 되었죠.

설운도 본인도 이산가족 상봉 방송 기간 내내 약 1천여 번은 불렀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설운도는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산가족의 설움을 그린 곡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노래로 제3회 kbs 가요대상 7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설운도는 차차차와 트로트가 어우러진 ‘다 함께 차차차’를 발표했는데요.

 

이 곡의

작곡을 맡았던 이호섭은 설운도가 새벽에 갑자기 찾아와서 곡이 있으면 달라는 부탁을 하여, 10분도 안 되어 악보를 완성하였고, 작사를 맡았던 김병걸 역시 10분도 되지 않아 작사를 마쳤다고 합니다.

발표 초반에 이 노래를 들은 평론가들은 ‘무슨 곡 수준이 이 모양이냐’라고 평가 절하를 했지만, 경제 파동이 있었던 당시 상황과 맞물려 이 곡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고, 2년 연속으로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죠.

설운도는 데뷔 후 꾸준히 대중들의 인기를 얻으며 1990년대부터 현철, 송대관, 태진아와 나란히 견주며,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트로트를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설운도는 주로 반짝이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라 대중들에게 ‘반짝이 의상’ 하면 생각나는 가수로 꼽혔죠.

이후 2004년에는 ‘춘자야’가 인기를 얻으며 당시 혜성처럼 나타나 전국의 일명 ‘어마나 열풍’을 일으켜 트로트의 세대교체를 이룬 장윤정을 제치고, 전국 톱텐 가요쇼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편 설운도는 아내 이수진과 결혼해 현재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요.

설운도와 이수진 부부는 1987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드라마 종방영에서 한 테이블에 우연히 합석을 하게 되었다가 설운도가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죠.

 

 

이에 설운도는 ‘초면에 실례지만 너무 미인이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고 하는데, 뜻밖에도 둘 다 고향이 부산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설운도는 이수진이 작사가로 활동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신곡이 나오면 들어달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러다 갑자기 ‘수진 씨 우리 결혼합시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죠.

그리고 이후 세 번째 만났을 때는 결혼해 달라고 떼를 썼다고 합니다.

설운도는 “당시 아내 직업이 영화배우였다. 80년대 인기 배우였다. 28세 때 아내를 처음 만났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처음에 안 넘어오길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음반 낼 생각 없느냐’라고 물었다”라고 말했죠.

설운도는 이수진과 데이트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에서 두 시간 이상 기다려도 안 나타나서 나가려는데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만남이 시작됐는데, 첫 데이트에 임신해서 운명이라고 생각해서 결혼하자고 했다고 하죠.

 

당시 두 사람은

청평으로 드라이브를 가게 되었고, 마침 또 그때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차가 고장이 났는데 마침 파전집이 있어 거기서 일단 동동주나 마시자고 했고, 분위기가 좀 올랐을 때 청혼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설운도는 아내에게 ‘결혼 안 해주면 여기서 죽을 거다’라고 떼를 썼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후 2차로 술 한 잔 더 하고 결국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설운도의 아내인 이수진은 그와 만나게 되면서 곧바로 결혼의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요.

이후 1년 뒤 바로 둘째를 낳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아내 이수진은 설운도의 상당히 긴 무명 시절 동안 뒷바라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나중에 남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트로트 가수 중 한 명이 된 후에도 ‘명품백 하나 사달라’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애정은 여전하지만, 두 사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과거에 설운도 어머니가 돈이라도 좀 벌어보고자 다방을 하나 인수해서 하려고 했는데, 그때 사기를 엄청 크게 당했다고 합니다.

설운도는 “어머니가 착하시다 보니 사기꾼이 붙었다. 큰 커피숍을 인수하려고 한다고 할 때, 함정이다. 잘 되면 어머니한테 줄 리가 없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아들 말도 안 들으시더라 어쩔 수 없이 해드렸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어머니는 그 커피숍에서 또 한 번 사기꾼을 만났는데, 파피아뉴기니 금광 사기 사건이라고 합니다.

사기꾼들이 어머니를 대표로 올려놨는데, 설운도의 어머니라니까 은행에서 가게 수표까지 발행해 줬고, 1990년에 10억의 사기를 맞았다고 하죠.

당시 10억이면 지금으로 따지면 100억 정도의 가치라고 하는데요.

그 일로 설운도 어머니는 드러눕게 되었고, 설운도는 정말 오랫동안 빚을 갚았다고 합니다.

 

일로

인해 설운도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병이 왔고, 20년간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아내 이수진은 ‘자기 인생에 이혼은 없다’라고 하며 어떻게 이겨낼까만 생각했다고 하죠.

그런데 얼마 전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한 유명 래퍼가 극단적 선택을 해서 여러 개의 번개탄을 피운 사실이 경찰로부터 드러나 뉴스를 통해 보도된 사건이 있었죠.

유튜버 이진호 기자는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봤다고 하는데요.

당시 한 오피스텔에는 번개탄을 피운 a 씨 말고 b 씨가 함께 있었죠.

a 씨는 번개탄을 피워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 것으로 드러났고, b 씨는 자다가 일어나 번개탄이 타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물을 뿌려 다행히 큰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고, 본인 또한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a 씨는 b 씨와 함께 있다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더 충격적인 건 A 씨는 유명 힙합 서바이벌 프로였던 ‘쇼미더머니’와 ‘고등 래퍼’에 출연했던 래퍼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진호 기자는 이 사건을 경찰 관계자로부터 직접 확인했다고 전하면서, 당시 이 오피스텔에 같이 있었던 두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고 밝혔죠.

이 기사가 보도된 직후 이 유명 래퍼의 정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쏠렸는데요.

이진호 기자는 취재를 통해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번개탄을 피웠던 고등래퍼 출연자인 a 씨는 래퍼 디아크였으며, 같이 오피스텔에 투숙하고 있었던 b 씨는 설운도 딸 이승아였다고 하죠.

디아크는 2004년생으로 올해 스무살입니다.

당시에는 미성년자의 나이인데요.

 

설운도의

딸 이승아는 1996년생으로 올해 28세입니다.

무려 8살 차이가 나는 두 남녀가 한 오피스텔에서 투숙하다가 이 같은 일이 벌어져 충격을 안겼죠.

이승아는 설운도의 막내딸로 설운도가 딸바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아꼈는데, 2012년 인생극장을 통해 처음으로 방송에 얼굴이 공개됐었는데요.

kbs 여유만만에서 설운도와 같이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승아가 ‘아빠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자, 설운도는 ‘딸이 최고다. 아들은 별로다’라고 말하며 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었죠.

또로 전국 체전에 출연했던 이승아는 ‘아빠가 이 자리에 와 계시다’라며 직접적으로 설운도의 딸임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만약 이진호 씨의 말대로 번개탄을 피우고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래퍼가 디아크가 맞고, 같이 오피스텔에 머물렀던 b 씨가 이승아라면 정말 큰일 날 뻔한 일을 당한 것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관리가 많이 필요해 보였죠.

사기를 당하고 아들에게 미안했던 어머니는 20년이나 몸 져 누운 끝에 세상을 떠나시더니, 딸까지 극단적 선택 소동을 일으키며 가슴을 졸여야만 했던 설운도 씨에게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