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는 1949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막내딸로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딸들에게는 엄격했지만, 막내 김수미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예쁘다고 이마가 넓어질 정도로 세게 쓰다듬어줬다고 농담을 하던 김수미는 어느 날 어머니가 학교 연극 준비로 이모 집에서 자고 돌아오자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한복 중 하나를 완전히 잘라서 연극 소품으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엄마가 그걸 알고 많이 혼났어요.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출근한 후 매일 아침 몰래 김수미를 꼬집었다고 한다.
몇 달 간의 놀림 끝에 마침내 마음을 굳힌 어린 김수미는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퇴근하자마자 갑자기 꼬집힌 듯 “아빠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쳤다. . 나는 고통으로 죽을 것이다. 딸을 돌보던 아버지는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니요, 선생님. 아기가 한복을 자른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기를 꼬집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도 화가 났겠지만, 손쉽게 뻥을 친 딸을 보고도 “아니 쟤는 뭐 되려고 저렇게 잔망스럽냐”라며 당혹스러워했는데, 그렇게 김수미는 어릴 적부터 배우의 끼를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김수미의 어머니는 맨날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부엌에서 불 때서 밥하고, 콩밭에서 밭을 매다가 밤이 되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주무셨다고 하는데요.

김수미가 살던 집은 방이 두 개였는데 한 방에서 아버지가 혼자 주무시고 남은 방에서 어머니와 자식들이 다 같이 잤는데, 김수미는 매일 어머니의 ‘아이고 죽겠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새벽에 닭이 울어 설핏 잠이 깨면 늘 부엌에서는 달그락달그락 엄마가 밥하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김수미는 매일 어머니가 밭을 매거나 아니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또는 젓갈 담그고, 김치 담그며,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만 하시는 모습만 봤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어머니는 위장병을 늘 앓으셨는데, 하얀 소다를 한 움큼씩 입안에 털어 드시고 항상 아프니까 말씀도 없으셨고, 김수미도 아버지와는 대화를 많이 했지만 어머니와는 진지하게 대화해 본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김수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어느 날 밭을 매던 중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시는데요.

당시 김수미는 모친 사망이란 전보를 받고 갔는데, 더운 계절도 아닌데 봄에 그렇게 일하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일찍이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다 몸부림을 치던 걸 본 적이 있었던 김수미는 어머니가 지금 같으면 위암같이 위가 다 상해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아직도 살 떨리게 분한 건 자신은 지금 모든 사람에게 밥이고 반찬이고 해주는데, 정작 자신의 엄마한테는 한 번도 자기 손으로 밥을 못 해드려서 억울하다고 고백했는데요.
그렇게 한스럽게 눈물로 어머니를 보내드린 김수미는 성인이 되어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지만, 당시 선호되던 스타일은 아니어서 데뷔 후에도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하며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전원일기’의 ‘일용 엄니’ 역할로 캐스팅 연락이 오게 되는데요.
30대 초반이었던 김수미는 ‘이왕 할 거면 정말 깜짝 놀라게 해보자’ 하는 오기가 생기며, 그 길로 연신내 시장에 가서 할머니들을 하루 종일 관찰하게 됩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할머니들은 꼭 중얼중얼 뭘 잡수고, 주머니가 고무줄 안에 있었는데, 그런 할머니가 자신의 시골에 있어서 그 목소리가 딱 생각이 났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구현된 ‘데일리 터스크’의 캐릭터는 당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캐릭터였는데, 당시 드라마 PD는 “그런 목소리는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었다. “이 문장을 말해보세요” 그러면 할머니의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거예요.
서른 살 소녀 김수미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 시장에 나가 할머니들을 하루종일 지켜보았고, 연기를 하면서도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담아냈다.
사실 그녀는
처음에는 어떤 역할이라고 구체적인 얘기는 듣지 못한 상태로 ‘전원일기’의 출연을 통보받았고, 이후 대기실에서 만난 선배 ‘일용이’ 박은수가 “너랑 나랑 한 집에 산다” 그러길래 “어머 선배님. 우리 부부예요?” 했더니, “네가 우리 엄마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이도 더 위고 방송사 직속 선배인 박은수와 연기하는 게 좀 불편했지만, 적응이 된 후에는 연기할 때는 신나게 ‘일용이 너 이놈 시끼’ 하고 혼내다가, 그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요.
당시 얼마나 ‘일용 엄니’ 역을 실감 나게 잘했는지, 심지어는 실제 할아버지들이 김수미에게 방송국으로 팬 레터를 엄청나게 보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럼 그녀는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제는 백발노인 분장이 필요 없는 나이지만, 당시엔 팽팽한 얼굴이 너무 젊어 보일까 걱정했는데, 분장이 한 시간 넘게 걸렸고 풋풋한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가발도 붙였는데, 그때는 열악해서 분장을 지울 때 석유로 지우고, 이가 까맣게 빠진 건 아스팔트 도로인 타르 같은 왁스로 붙인 것이었다”라고 말했는데요.
이렇게 열연을 한끝에 MBC는 주인공도 아니었던 김수미에게 이례적으로 연기 대상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게 했지만, 반면 그녀의 결혼 생활은 시련과 좌절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처녀 때 김수미는 결혼을 약속하고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뵈러 갔는데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조실부모했다. 대학을 안 나왔다 직업이 연예인이다”라는 세 가지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이에
김수미는 “대학은 다시 가면 되고 연예인은 그만두면 되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건 내 의지가 아닌데 너무하다”, “아주머니에게도 딸이 있는데 내일이라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 그 딸도 똑같은 잣대 들이댈 거냐”라고 따졌고, 그 길로 결혼은 파토가 나게 됩니다.
이후 한참 동안 연애를 못 하다가 가수 정훈희를 통해 동갑인 지금의 남편 정창규를 소개받게 된 김수미는 처음 만나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는데, 이후 남편이 2년이나 김수미에게 매달렸지만 차분하고 성실한 스타일을 좋아했던 김수미에게 당시 남편은 항상 빨간 오픈카를 타고 다니고, 외모에 유독 신경 쓰는 날라리 스타일이라 남편의 구애를 계속 거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끝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준 것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 김옥환 여사였는데요.
자신의 집에 한 번 놀러 오라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결국 찾아가게 된 김수미.
시어머니는 그런 김수미의 손을 꼭 잡고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요’라며 보듬어 주시게 됩니다.
이런
김수미는 시어머니의 인품에 감동해 결국 마음을 열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러나 그녀를 적극적으로 구애하던 남편은 결혼식 후에도 불륜을 계속하고 떠돌며 그녀를 큰 고통에 빠뜨렸다.
신혼여행 직후 임신을 하게 된 김수미는 결혼식 후 한 달 만에 심한 입덧을 앓았고, 이로 인해 아내와 헤어진 남편은 친구로부터 결혼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임신 3개월 때 호텔 수영장에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수영을 했고, 6개월 동안 전화도 없이 떠나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김수미는 남편이 집에 오는 것을 보자마자 파리채로 남편의 등을 때렸고, 그 순간 남편이 “나도 내일도 수영하러 가야 하니까 때려주세요”라고 말하자 김수미는 남편의 등을 때렸다. 흔적 안 보이도록 아래층으로” – 김수미는 너무 놀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떠났고 더 이상 남편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그냥 그에게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역시 시어머니였다.
매일매일 고민하고, 남편의 부재로 이혼을 시도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던 김수미 시어머니는 어느 날 그녀 옆에 앉더니 “아니, 너 아무것도 없어. 화장실에 가서 버리지 않는 이상 버리는 것. “이혼하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는 “아들이 죽을 때까지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며 “좋은 사람을 만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김수미에게 부동산 서류를 건넨 뒤 “그 대가로 연예계 일을 하지 않더라도 네가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수 있도록 뭐든 해줄게”라고 말했다.
김수미를
딸처럼 아꼈던 시어머니는 이 좋은 나이에 너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며, 재차 자신의 아들과 살지 말라고 간청했지만, 그런 시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김수미는 결국 남편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훌륭한 인품과 따뜻한 마음으로 자신을 아껴줬던 시어머니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김수미.
그런 김수미를 진심으로 아낀 시어머니는 어느 날 김수미의 연극 홍보를 위해 당시 김수미가 구입한 bmw 차량에 타고, 김수미와 10년을 함께 한 운전기사 김종우 씨의 운전으로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러 나가게 되는데요.
며느리가 출연할 연극 포스터를 주유소 벽에 붙이던 시어머니는 그 bmw 차가 후진하던 중 갑자기 급발진하는 바람에 피할 틈도 없이 곧장 차에 치이게 되면서 그만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김수미는 시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자살 시도까지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요.
게다가
김수미는 이후 bmw 그룹의 사장단 회의가 열린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급발진 사고 보상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1인 시위까지 벌이게 됩니다.
김수미는 흰 블라우스에 흰 치마를 입고 오전 6시 45분께부터 2시간여 동안 회의 장소인 웨스턴 빌라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시어머님 영혼이 떠나시질 못한다’라며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는데요.
김수미의 담당 변호사인 하종선 씨는 “사고가 난 차량을 김수미가 아직 보관하고 있는데, 법원은 제대로 시험도 해보지 않고 소비자에게 ‘급발진 원인을 증명하라’라고 떠넘기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bmw를 상대로 강력하게 규명 및 보상을 요구했으나 결국 패소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김수미는 인품을 보고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존경하던 사람을 너무 어이없게 잃은 탓에,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 이후 수면이나 극도의 우울증으로 연기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됩니다.
김수미는 당시의 환청과 환식까지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자살 충동을 이기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하기도 했으며 병상에서 삭발까지 하기도 했는데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스님이 되려고 머리를 밀었던 김수미.
하지만
그것은 현실 도피였습니다.
김수미는 제주도로 내려와 한 사찰에 있으면서 새벽에 일어나 공양 밥도 했고, 힘들었던 당시에 스님 앞에서 맞담배를 피우기도 했는데요.
게다가 김수미는 매일 스님한테 가서 술을 사달라고 했다고도 합니다.
그 정도로 존경하는 시어머니를 잃은 김수미의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이었던 것인데요.
게다가 그녀는 당시 시어머니의 혼령을 자주 봤다고 하는데, 밤중에 밖에 나오면 온몸에 찬 기운이 확 오면서 머리카락 끝이 서는데 그러면 시어머니가 저기 서계셨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원망의 눈으로 김수미를 쳐다봤고, 놀란 김수미는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지게 되는데요.
옆에 있던 식구들은 그런 김수미를 보고 ‘왜 그러냐’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김수미는 시어머니의 혼령을 여러 번 보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을 노려보는 그 모습을 정말 잊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온전하지 못하게 3년이나 괴로워하며 살게 됐는데요.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은 ‘귀신 혼령이 붙었으니, 굿을 한 번 해보라’라고 권하게 되는데, 기독교 모태신앙이던 김수미에게 남편은 별짓을 다 하다가 어느 날 같이 어디를 가자고 하게 됩니다.
남편은 김수미를 데리고 새벽에 그렇게 천도재를 지내러 갔던 것인데요.
그곳에서는 김수미의 시어머니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앉혀놓고, 뒤에서 팥을 막 뿌리며 ‘이제 며느리 손 좀 놓으세요’ 하면서 시어머니가 김수미를 껴안고 있다고 했습니다.
‘며느리 손을 놓네’ 하면서 그 뒤로 놨다고 밝힌 김수미는 그런데 다음 날 ‘전원일기’ 녹화 현장에 가니까 사람들이 그녀에게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고 하는데요.
‘동료들은 귀신이 붙었다’, ‘미쳤다’라는 소문이 있던 김수미에게 ‘웬일이냐’라며 ‘얼굴색이 돌아왔다’라고 말했는데, 김수미 본인도 “이걸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나. 그렇게 굿을 해서 나았다”라고 털어놓게 됩니다.
그렇게
김수미는 정신을 차리고 활동을 재개하며 다시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었지만, 후에 어느 날 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 충격을 받고 빈소에서 자해를 했다는 소문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마광수 교수와 김수미는 평소에 조금의 친분도 없던 사이였는데, 마 교수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수미가 빈소에 와서 술에 취해 커터칼로 자해하겠다고 소동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퍼지게 됩니다.
후에 이 이야기는 김수미가 택시를 타고 오면서 ‘나도 죽어야 돼’라고 자꾸 이야기하니까 택시 기사가 놀라서 노파심에 신고를 했던 것이었고, 김수미가 빈소에서 욕설을 하다가 좀 과다하게 행동한 건 있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김수미의 소지품을 확인해 보니 커터칼이 있어서 차단 조치를 한 것이지, 실제로 꺼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이 되었는데요.
어릴 적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를 잃고 한이 맺혀 살아가다가, 그 때문에 결혼까지 약속했던 남자의 어머니로부터 무시당하며 파혼까지 당했는데, 이후 다시 만난 남자의 구애에는 계속 거절하다가 시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그렇게 만난 남편은 신혼부터 외도를 하며 상처를 받았던 김수미.
근근이 이어가던 배우 생활 도중 ‘전원일기’ ‘일용엄니’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결국 스타덤에 올랐지만, 자신을 아끼던 시어머니를 자신의 차로 치어 하늘로 보내드리는 비극을 겪더니, 극심한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까지 하고 싶었을 만큼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사.
그런 그녀에게 다시는 또 다른 슬픔은 없기를 바라며, 너무나 슬픈 인생을 살아온 배우 김수미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