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는 김성령·김성경, 유재석·나경은, 정준호·이하정, 박찬민·박민 등 연예인과 아나운서 집안이 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은 김태욱 아나운서와 배우 김자옥이 함께하는 대표적인 연예계 가족입니다.
1970년대 안방극장 3인방 중 한 명인 김자옥은 40년 넘게 수많은 흥행작을 배출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연 배우이다.
그리고 김태욱 아나운서는 김자옥의 동생이다.
남매임에도 불구하고 모자처럼 끈끈한 인연을 자랑해 김자옥의 죽음 이후 김태욱은 슬픔을 참지 못했다.
김자옥은
2014년 11월 향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대장암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같은 병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지 7년 만에 김태욱 역시 세상을 떠났는데요.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도 방송 활동을 했기에 그의 비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태욱은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알려졌는데, 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걸까요.
오늘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김자옥 동생, 김태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태욱은 1950에서 70년대까지 문화 예술계를 풍미했던 시인 김상화의 아들입니다.
그는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둘째 누나인 김자옥과는 매우 각별한 사이였는데요.
두 사람은 외모부터 닮아있던지라, 김태욱을 처음 보는 사람은 ‘김자옥이 남장한 것 아니냐’라며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두 사람은 관심사부터 성격까지 모두 비슷했는데요.
그랬기에 김자옥은 김태욱을 무척이나 아꼈습니다.
김자옥은 한 방송에서 ‘하얀 머리 때문에 얼핏 보면 오빠 같지만, 나하고는 9살 나이 차고 아직도 내 눈엔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은 동생이에요’라며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후에는 막내 동생의 손을 잡고 방송국을 구경시켜주기도 하는 등 각별한 남매애를 뽐냈습니다.
김자옥이
김태욱을 아들같이 보살피는 데에는 어머니의 유언이 큰 몫을 했는데요.
69년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얘 좀 잘 돌봐주라’라며 김자옥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생전 아버지의 바람기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에 김자옥은 동생을 아들같이 챙겼는데요.
김태욱도 누나 김자옥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기 때문에, 김자옥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매형과 조카도 알아보지 못한 전조증상을 그만 알아봤다고 전해집니다.
“매형이나 조카도 못 느끼는 마지막 모습을 봤어요. 아파도 얘길 안 해요. 그래서 tv에 나올 때는 기분이 좋을 때예요. 조금이라도 아프면 집에만 있어요. 아픈 모습 보이기 싫어하니까요”
컨디션이 좋을 때마다 방송에 출연하던 김자옥은 어느샌가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어느 날에는 병상에 누워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암세포가 뇌로 전이 되었을 당시 김태욱은 누나와의 대화에서 마지막을 예감했습니다.
김자옥의
횡설 수설하는 말에 순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 김태욱은 병실을 나오기 전 처음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라는 말을 하며 누나를 다독거렸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김자옥은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더니 ‘자주 와’라는 한마디를 힘겹게 내뱉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기에 김태욱은 이별을 예감했는데요.
혼자 병원 주위에서 한 시간을 오열하다 조카에게 ‘네 결혼식에 엄마가 못 갈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의 직감이 맞았는지 김자옥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는데요.
사실 김자옥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김자옥은 평소 아픈 일이 있어도 남들 앞에서 단 한 번도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연기에 임했는데요.
김자옥은
2008년 건강 이상 신호를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갑작스러운 대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대장암 선고 몇 년 후에는 그때 심경을 방송에서 고백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끔찍해요.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나 너무 암담했어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암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며 좌절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는 오히려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어요. 나중에는 웃으며 수술실에 들어갈 정도였어요”
김자옥의 고백에 시청자들은 그녀가 대장암을 앓았으나 완쾌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는데요.
김자옥은 2008년 대장암을 초기에 발견하고 완쾌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김자옥이
2008년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대장암이 심각하게 진행되었는데요.
4기에 가까운 3기 판정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기며 방송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평소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뜻과 연기에 대한 열망이 합쳐진 결과였습니다.
이때를 회고하며 김태욱은 속상함을 토로했습니다.
“지금도 속상한 게 어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셔서 형제들도 다 가족력 때문에 검사했어요. 누나도 당연히 한 줄 알았어요. 근데 10년 동안 안 한 거예요. 처음 하러 갔더니 3기더라고요 생존율이 25%인데, 그 사이에 못 든 거죠. 몇 년만 빨리 검사했어도 이 정도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결국 김자옥은 수차례 수술을 하고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암이 폐와 임파선, 뇌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아들의 결혼식을 서둘러 준비했는데요.
자신의 앞날을 예감하고 떠날 준비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의 결혼식조차 보지 못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배우였기에 그녀의 별세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겼습니다.
특히나 생전 아픈 모습 한 번 내비치지 않고, 항암 치료 중에도 연기 활동을 지속했기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의 동생 역시 너무나 슬펐지만 아픔 한 번 드러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자옥의 별세 소식이 들려온 후 대중들은 남겨진 동생 김태욱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사실 김태욱은 김자옥에 앞서 큰 누나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큰 누나는 우울증으로 생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결혼하고 자녀까지 뒀지만, 동생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다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남겨진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는데요.
그 후 2014년 김자옥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김태욱은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김태욱은 일찍이 이혼의 아픔을 겪었기에, 자식도 없었으며 부모님과 두 누나를 여기고 홀로 외로움을 견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무도 그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2020년 sbs에서 정년퇴직했는데요.
평생을 바쳐온 회사에서 퇴직 후 어느 정도 상실감까지 느끼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편 김태욱은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 후 87년 cbs에 입사한 것으로 방송 생활을 시작하여, 89년에는 kbs를 거쳐 91년 sbs 개국 아나운서로 입사했습니다.
당시 함께 입사했던 동료로는 박영만, 손석기, 유협, 유영미, 윤영미 최선규 등이 있는데요.
김태욱은 sbs 아나운서 팀 팀장을 거쳐 2014년 부국장으로 승진했으며, 2020년 정년 퇴임 당시 국장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2020년 8월에 정년퇴직했지만, ‘김태욱의 기분 좋은 밤’ 라디오 방송은 계속해서 진행됐는데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에도 라디오 진행을 하며 방송 활동에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3월 3일까지 방송을 하다가 다음 날인 4일 자택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되었는데요.
갑작스러운 비보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의 라디오 방송 후임을 맡은 최기환 아나운서는 ‘김태욱 전 아나운서를 잊지 말아 달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생전 고인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배성재 아나운서도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간접적으로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sbs 측에서도 라디오 부스에 앉은 고인의 흑백 사진과 함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를 게재했습니다.
사실 김태욱은 평소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특히
그는 떠나기 전날 마지막 라디오 방송 마무리 말에 ‘여러분 다 잘 될 겁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토록 좋아하던 둘째 누나를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슬퍼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떠난 누나들과 하늘에서 제외해 못다 한 남매의 연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는 어떤 슬픔도 아픔도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