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 향년 79세로 별세했습니다.
20일
영화계에 따르면 윤정희 씨는 이날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고인은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 딸 백진희 씨와 함께 프랑스에 거주해 왔죠
그녀의 거주에 대한 논란이 많았기에 더 안타까운데요.
지금부터 찬란하면서 아름다웠지만, 슬펐던 그녀의 인생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배우 윤정희 씨는 대종상 여우주연상 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3회, 백상 예술 대상 여자 최우수 연기상 3회에 빛나는 전설적인 대배우입니다.
국내외 각종 영화상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무려 20번 넘게 수상한 대배우죠.
다소
특이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요.
1944년에 출생했는데,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와 전라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윤정희 씨는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광주에서 호남의 명문 전남 여중고를 졸업했어요.
중학교 동창의 회고에 따르면 소녀 시절에도 너무 예뻐서 뒤돌아볼 정도였다고 해요.
그녀는 어린 시절 영화배우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는 교수나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을 받고 합격해서 영화배우의 삶을 살게 됩니다.
1967년 영화 ‘청춘극장’의 ‘오유경’ 역할로 흥행 대박을 해서 하루아침에 톱 스타가 되었죠.
그렇게 1960년대 남정임 씨, 문희 씨와 함께 대한민국 여자 영화배우 트로이카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 당시 여배우는 청순가련형 아니면 요부형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녀는 백치미까지 능숙하게 연기하며 폭넓은 역을 맡았어요.
또한 도회지 여자 역할을 많이 맡아서 그녀의 이미지는 지적인 세련미가 특징이었습니다.
한국 영화 100년사에 무려 99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남녀 배우는 신성일 씨, 윤정희 씨 콤비가 유일하다고 해요.
1967년 ‘청춘 극장’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1992년 ‘눈꽃’까지 무려 99편의 영화로 이어졌죠.
윤정희
씨는 신성일 씨의 동생이나 형수로 출연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연인이나 아내로 등장했어요.
그래서 신성일 씨는 씨를 향해 항상 영화 속의 영원한 연인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971년에는 문희 씨, 남정임 씨가 은퇴한 반면, 윤정희 씨는 결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했고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도 활동을 했죠.
그 당시 보기 드물게 나이 들어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서 여자 영화배우로 좋은 예를 남겼어요.
그리고 1981년 ‘자유 부인’, 1987년 ‘위기의 여자’로 흥행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만 66세인 2010년 영화 ‘시’로 청룡 영화상과 대종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옛날 여배우들이 은퇴해서 사라진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는 영화상 큰 족적을 남겼어요.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하기로도 유명한 여배우였는데요.
그런 그녀가 알츠하이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치매에 걸리고 맙니다.
나이 들어서도 아름답지만, 그녀의 리즈 시절에는 한국의 ‘오드리 햅번’이라고 불리울 정도였죠.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석사 여배우로 학구열도 높았습니다.
1972년에는 중앙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7년에는 파리 소르보네 대학교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1976년 프랑스 유학 시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결혼하기도 했어요.
윤정희 씨가 한국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중 독일의 영화 ‘심청’의 홍보차 방문했는데, 윤이상 작곡가의 소개로 백건우 씨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죠.
그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정희 씨를 총애하자 육영수 여사가 백건우 씨와 서둘러 결혼시켜서 프랑스로 쫓아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기도 했어요.
1977년에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히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일가족이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미국 영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청해 가까스로 위험을 면했죠.
평생 동안 백건우 씨의 연주 여행에 동행했다고 할 정도로 두 분의 금술이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여배우이기도 한데요.
2010년 시상식에서 크리스찬 디올 등의 드레스 협찬을 거절하고 손수 구입한 한복을 입고 참석했는데, 너무나 곱습니다.
그런데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집니다.
2019년 백건우 씨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부터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라고 고백했어요.
2010년 영화 ‘시’를 촬영할 당시에도 대본을 적어놓고 영화를 찍었다고 해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시’에 나오는 주인공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여자였다는 것이에요.
주인공의 이름이 ‘미자’였는데, 윤정희 씨의 본명이 ‘손미자’라고 하죠.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2010년 때까지만 해도 알츠하이머 초기라 영화도 찍고 시상식에도 참석하고 인터뷰도 가능했지만, 2019년 윤정희 씨가 알츠하이머라는 것을 알렸을 때 이미 딸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고 해요.
그 당시 외동딸도 어머니의 증상을 알렸는데요.
이유는 윤정희 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사람이라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였다고 해요.
그동안 윤정희 씨와 백건우 씨의 금술이 너무나 좋았고, 부녀가 그녀를 최선을 다해 돌본다고 믿고 있었는데요.
윤정희 씨의 동생들에 의해 그녀가 방치되고 있다는 논란에 휩쓸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양측은 소송까지 가게 되었죠.
윤정희 씨의 동생은 윤정희 씨가 배우자인 백건우 씨와 딸로부터 방치됐다며 딸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어요.
‘성년후견’이란 장애나 질병 노령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물을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나 신상 보호를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윤정희 씨 동생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2심까지 윤정희 씨의 딸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어요.
이에 윤정희 씨 동생이 제차 법원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성년후견 대상자인 윤정희 씨가 사망한 만큼 사건을 추가 심리하지 않고 각하할 전망이라고 해요.
이렇게
안타까운 가정 분쟁이 있기도 했는데요.
2021년 윤정희 씨의 방치 논란 당시 파리에 거주 중인 ‘한국의 메아리’ 이미아 대표는 이렇게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아 대표는 “몇 개월 전 윤정희 선생님을 찾아뵙었을 때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살고 계셨다”라고 2021년 2월 8일 페이스북에 밝히며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죠.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평안하고 행복해 보여 그나마 작은 안심이 되는데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상태에서도 최선을 다해 마지막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 간 그녀의 위대함을 기리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