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결혼 후에도 여배우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과거에는 결혼과 동시에 잠정적 은퇴를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결혼과 함께 모습을 감췄던 여배우 김진아도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진아는 결혼 후 삶의 모습도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생각하는 의식도 달라졌습니다.
아들을 입양해 엄마가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였죠.
영화배우 김진규, 김보애의 딸로 태어난 김진아는 말 그대로 연예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집안에 연예인만 13명으로 유명한 연예인 집안입니다.
하지만 김진아는 지난 2014년 8월 20일, 향년 50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시간이 지난 뒤 밝혀집니다.
이유가 뒤늦게 밝혀진 데에도 이유가 있었죠.
고인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별세를 지켜본 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활동에서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였습니다.

삶을 비관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충동을 느끼며 지낸 젊은 날의 방황을 보내고 자식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엄마가 되었던 그녀였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진아는 굉장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1983년 영화 ‘다른 시간 다른 장소’로 연예계에 데뷔한 김진아는 이후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창밖의 잠수교가 보인다’ 등 작품에서 당시에는 보기 드문 섹시하고 세련된 매력으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2002년 드라마 ‘명성황후’, ‘사랑’ 등에 출연했으며 2010년에는 영화 ‘하녀’를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또 SBS ‘스타 부부쇼 자기야’, MBC ‘세바퀴’ 등에 출연하는 등 꾸준히 연예 활동을 이어왔었습니다.
김진아의 집안은 연예인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한 방송에서 김진아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출연작만 600여 편에 달하는 원로배우 고 김진규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또 자신의 어머니는 한국 최초 화장품 모델로 알려진 배우 김보애라고 덧붙였죠.
또한 남동생은 배우 김진근, 남동생 아내는 배우 정애연이며, 이모부는 배우 이덕화, 제부는 코미디언 최병서, 사돈은 ‘신라의 달밤’을 불렀던 원로 가수 현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남동생
김진근과 정애연은 훗날 이혼하게 됩니다.
김진아의 부친 김진규는 1960년대 최고 인기 스타로 당대의 슈퍼스타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보다 선배이며 우위에 있던 배우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 관객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영화 사상 손가락 안에 드는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범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1961년작 영화 ‘오발탄’의 주연을 맡기도 했죠.
그리고 같은 해에 찍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사랑방 손님’ 역할로도 유명합니다.

1964년에는 ‘벙어리 삼룡이’의 주연을 맡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1960년대에 받은 남우주연상만 9개이죠.
그러나,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는 여자 관계가 무척 복잡했고 술만 먹으면 위협적으로 변해 주먹을 휘두른다는 이야기가 돌았습니다.
그의 두 번째 부인이자 김진아의 모친인 김보애가 쓴 자서전에도 나오는 이야기죠.
아버지가 곁에 없었기에 어머니가 대신 규율을 잡았지만, 김진하는 매사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자제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엄마 속을 썩이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이 오면 비관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젊은 날의 김진아는 희비의 극과 극 사이를 오가며 성장했습니다.
인생의 고비에서 그녀는 호스피스 자원봉사 생활을 하면서 봉사의 삶을 살았고 ‘입양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며 홍보 대사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김진아는 지난 2000년 남편 케빈 오제이와 국제결혼한 후 아들 ‘매튜’를 입양했습니다.
그녀는
하와이 집을 방송을 통해 공개했고, 아들 매튜에 대해서는 “입양에 대한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하고 사랑으로 키우고 있어요”라고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또 당시 김진아는 고급 리조트를 방불케하는 하와이 집에 대해 “오래된 집을 구입해 인테리어 꾸미는 데만 10개월이 걸렸어요”라고 했습니다.
또한 김진아 남편 캐빈이 직접 디자인하고 조립한 장식장과 부엌 등을 자랑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김진아 남편 케빈은 부엌 타일과 천장 손잡이에 하나까지 세심히 골랐고 아내가 유리하기 쉽게 찬장 밑에 조명을 설치하고, 전기선이 보이지 않도록 콘센트 위치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등 자상한 남편의 면모가 드러났습니다.
또한 야외 수영장까지 김진아의 건강을 위해 남편 케빈이 개조한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김진아는 중년의 나이에도 늘씬한 수영복 몸매를 뽐내며 하와이 집에 딸린 야외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이어 그녀는 원인 모를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5년 전 몸이 굉장히 아팠어요. 어느 날부터 몸이 붓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성형수술을 했다는 오해까지 받을 정도여서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몸이 아파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여러 검사 결과 몸의 면역력이 거의 떨어져 있었어요. 건강한 몸으로 회복은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겉모습에서 변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걸을 수 없을 만큼 몸이 부었고 7호였던 결혼반지가 13호까지 늘어 있었죠. 하와이로 오게 된 것도 따뜻한 곳에서 있어야 한다고 해서 왔어요. 내 건강을 위해 남편이 많이 신경 써주고 수영장까지 개조해 만들어줬어요”
당시
방송에서 김진아 모친 김보애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늘 부모에겐 물가에 내놓은 자식이죠. 행복하게 슬프지 않게 잘 살길 바라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이에 김진아는 “내 자식한테 나도 이런 마음이었어요. 비로소 자식이 있으니까. 엄마의 마음을 깨닫는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간간이 작품 활동과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예계 복귀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던 그녀였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김진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 암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진근을 비롯한 가족은 고인의 곁에서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던 그 해 초에 말기 암 선고를 받고 하와이에서 치료와 요양에 몰두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김진아가 세상을 떠나고 몇 주 후 동생 김진근은 누나의 사인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누나의 병명을 사실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한테는 병명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빈자리가 중요하고 상황이 중요했지, 병명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물론 그렇다고 병이 창피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도 언젠가 그런 병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누나는 면역체계 질환 중 하나인 희소병 경피증을 앓았어요. 피부에 이상이 오고 혈액순환이 안 되기도 하죠. 그게 지속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겨서 어느 한 곳에 종양이 생겼고, 그게 암이 됐어요”
“그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작년 9월에 받았어요. 종양 제거 수술을 해서 잘 된 줄 알았는데 미국에 돌아간 후 두 달 뒤에 다시 검사를 해보니 종양이 다시 생겼어요. 이후 무서울 정도로 종양이 커지면서 위급한 상태가 됐죠”
김진아가 앓았던 경피증은 자가면역성 질환으로 피부가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부 경화가 진행돼서 전신성 경화증이 되면 피부뿐만 아니라 혈관이나 내부 장기도 딱딱하게 결절이 생기게 된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음식을 삼키기 힘들다든지 아니면 고혈압, 심부전 또는 심근경색 폐섬유화 같은 합병증이 생기면서 5년 생존율이 40~50% 정도 받게 되지 않는다고 하죠.
암으로 투병하고 치료를 받은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김진아의 경우처럼 투병을 하다 끝내 세상을 떠난 연예인들도 많습니다.
길은정, 여운계, 장진영 등 모두 암 투병을 하다 끝내 별이 되었습니다.
김진아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모친인 김보애도 하와이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부디 고인이 그곳에서 부모님과 재회하여 함께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