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전 미코 출신 김성희에서 들려온 눈물겨온 상황… 차마 그녀가 다시 방송에 나올 수 없던 이유…

미스코리아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그동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수많은 미인을 배출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1977년 미스코리아 우승자 김성희를 역대 최고의 미스코리아로 꼽는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녀의 활동 모습을 못 본 사람도 있었고, 미스코리아 김성희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성희는 한때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아티스트의 정점에 올랐지만 지금은 연예계 생활에 미련이 없는 듯하다. 아무튼 김성희 씨가 과거의 상처를 모두 치유하고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만큼 역대 최고 미인으로 손꼽히는 그녀는 왜 갑자기 방송계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된 것일까요?

 

더불어

연예계 활동을 접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오늘은 갑자기 방송에 안 나오게 된 이유와 근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역대 최고의 미스코리아
김성희는 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3세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와 노래를 배웠고 작곡까지 배웠다.

이어 김성희는 어릴 때부터 길러온 작사 실력에 의지해 무려 60곡이 수록된 앨범을 냈다.

지금과 달리 노래와 작사를 겸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드물었지만 의외로 그녀의 예술적인 면모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김성희는 미모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아서 상대적으로 예술가로서 묻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던 중 19세 김성희가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진을 자랑스럽게 차지하며 최연소 미스코리아 기록을 세웠다.

그 이후로 그녀는 미스 유니버스 미인 대회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과거 미스코리아 대회에 참가했을 때 자신이 우승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당시 미스코리아의 미의 기준이 김성희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스코리아의 미의 기준은 동양적인 매력과 납작하고 동그란 얼굴, 큰 눈을 가진 미인이었다.

반면 김성희는 작은 얼굴과 V라인 턱, 통통한 서구적인 몸매로 귀여운 외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게임에 등장하자 많은 이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특히 김성희는 167cm의 늘씬한 키와 서양식 체형이 거의 미스코리아 역사상 최초라 더욱 인기가 높다.

참고로 1970년대 여성의 평균 키가 159cm였으니 김성희는 키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외모로 미스코리아 선발 기준을 바꾼 만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김성희의 출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이후 한동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김성희의 체형이 점수를 매겼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이후

5년 뒤, 1982년, 김성희 씨는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하여 그의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 밖에도 인기 프로그램의 mc를 맡는 한편, 드라마에 출연하여 배우로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정말 그녀는 지금으로 말하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mc, 가수, 배우 등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그녀는 황당한 사건을 겪게 되는데요 김성희 씨의 한 열성 팬이 그녀 몰래 혼인신고를 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당시 1980년대 초반에는 단독으로 혼인신고가 가능한 때였는데, 김성희 씨를 너무 좋아했던 한 극성 팬이 마음대로 자신의 호적에 김성희 씨를 아내로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죠.

나중에 그 극성 팬은 정신이상자로 밝혀졌는데, 이후 갑자기 김성희 씨의 집까지 찾아왔고, 결국 경찰에 잡혀 이 사건은 일단락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사건은 일단락이 났지만, 한 극성팬의 허위 혼인 신고로 김성희 씨는 큰 충격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당시

체험 후 그녀는 “한 극단 팬이 몰래 혼인신고를 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팬들의 잘못된 사랑 때문에 연예계 생활이 역겨워요.”

“솔직히 방송도 안 해보고 그냥 연결이 됐어요.”

“미스코리아가 된 후 가수, 모델, 배우가 되고 연예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외로웠습니다.”

“솔직히 연예계는 제 적성에 안 맞아요.”

“경찰이나 언론인을 보면 커피를 사줘야 하는데, 성격상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어 “게다가 미스코리아가 된 후 친구들도 멀어지고 원래의 모습도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복잡한 심경도 직접 털어놨다.

이 사건으로 이미 연예계 활동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김성희는 방송계와 거리를 두게 됐다.

1988년 김성희는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해 청담동에 옷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녀의 의상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씨와 같은 건물에 있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악성 루머들이 퍼지게 되었다.

당시 한 매체에서는 사실 확인을 하거나 어떠한 명확한 근거를 대기보다는, 김성희 씨와 정경환 씨의 허위 스캔들 자체만을 보도하기 바빴는데요.

이후 김성희 씨는 크게 분노하며, 이 매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이런 추측성 보도들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고, 소송의 결과는 해당 매체에 대하여 사과문 게재와 2천만 원 배상을 판결하며 일단락이 납니다.

당시 그녀는 “도대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온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된 정경환 씨와 부도덕한 관계로 오해를 받는다는 건 제가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한 인격체잖아요?”

“아무리 제가 대중 앞에 노출된 신분이지만, 어떻게 근거도 없이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건가요?” 라며 당시의 억울함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녀의 말대로, 김성희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여자로서 정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앞서 허위 혼인신고 사건과 전경환 씨의 허위 악성 루머로 연예계의 큰 환멸을 느끼며, 연예계 생활을 모두 청산하게 됩니다.

퇴직 후 상태
화려했던 연예계 생활을 뒤로하고 탈의실까지 정리한 그녀는 갑자기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사실 김성희는 연예인이 되기 전부터 미국 공예 디자인 공부를 꿈꿨다.

그런데 그때 가족의 반대로 유학을 포기했는데, 미국에 가기 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미국으로 건너간 김성희는 사업가 이승원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 이승원은 당시 큰 상처를 입은 김성희를 잘 돌봤다.

이후 김성희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 세 아들을 낳았다.

 

한때

김성희 씨는 미스코리아 출신들의 친목 단체인 녹원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요.

같은 미스코리아 출신 회원인 한 지인은 “김성희 씨는 잘 지내고 있다 어찌나 야무지고 생활력이 강한지 최근에는 가정 생활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라며 김성희 씨의 생생한 근황을 알린 적이 있다.

이후 어느 날 김성희 씨는 본인의 근황을 직접 알린 적도 있었다.

“결혼 이후에 뭐 평범하게 살았어요.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 하고 그냥 보통 주부들하고 똑같이 살았죠 뭐”

사실 그녀가 연예계를 은퇴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도 그녀는 방송 일을 끊임없이 제안받았고 여러 번의 인터뷰 요청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평범한 주부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낸다.

김성희는 한때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아티스트의 정점에 올랐지만 지금은 연예계 생활에 미련이 없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로 사는 것이 그녀에게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수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아무튼 김성희 씨가 과거의 상처를 모두 치유하고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