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일남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박일남은 85세 고령의 나이에 아내와 딸 셋, 아들 하나, 장성한 자식을 두고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목적지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집도 없이 길바닥에서 잘 곳을 구하는 비참한 인생을 연명하고 있었는데요.
이어
그뿐이라면 주머니에 차고 넘치던 시절도 있었건만 박일남은 떠돌이 방랑자 신세로 살아가고 있었고 딱히 갈 곳이 없다 보니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니고 있다며 30년째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에 대해 박일남은 ‘과거에 미안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속지 않은 의미로 고생을 해야 한다. 자기 잘못을 알아야 하지 않나,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잘못한 게 있기 때문에 가족들한테 더 실망을 줄 수 없고 힘든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서 나와 있다’고 말했다.
매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던 가수 박일남, 그는 농촌에서 길을 걷다가 일손이 부족한 농민들을 발견하면 다가가서 일을 돕기도 했지만 나이가 벌써 85을 넘어가다 보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한동안 헤매다가 산속의 버려진 건물에 도착해 익숙한 방식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식사로 그곳에서 라면을 먹은 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지만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편리합니다. 남에게 돈을 빌려서는 안 되나요? 데뷔곡 ‘리드의 순수한 사랑’이 히트해 단숨에 1위를 차지한 박일남은 “내가 없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있으면 누가 도와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별.
순정, 엽서, 희야, 정 등 히트곡을 낸 인기 싱어송라이터였던 그가 이렇게 한심한 노년을 보낸 사연은 무엇일까?
박일남은 지나간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면 마치 어두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다음 날에도 버려진 건물에서 깨어난 뒤 그는 “그날 고마웠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했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잡초를 제거했다. 그는 말했다:
“선배, 친구, 후배 등 평생 동안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절박한 사람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걸어가면서 고마운 분들이 많이 생각나는데, 그중 한 절의 주지스님에게 그 절에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계시다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박일남은 3대째 독립된 아들로 태어났고, 그의 어머니는 매우 엄격했다.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잘 대해주던 어머니는 아들이 가수가 되고 싶다고 선언하자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가수가 되는 걸 절대 이해를 못하셨고 왜 그런 거 하냐고 하셨는데 그때는 가수라고 하면 딴따라로 직업군으로 치면 최하위였고 사람 취급도 못 받았으며,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를 공부시키고 몸 건강히 운동도 시켰는데 뭐 때문에 가수를 하냐며 호적을 판다고까지 말씀하셨다는데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어머님의 뜻을 거역하고 가수가 되었지만 박일남은 밖으로 나도느라 효도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고마워하는 사람이자 미안해하는 사람이고 항상 미안하고 안쓰럽고 왜 생전에 잘해주지 못했을까 죄책감이 남는다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했는데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젊었을 때는 경거망동을 많이 하잖나. 그때는 영화 배우와 가수가 사회적 관점 차이가 많이 났다. 영화 배우들이 위에 있고 가수들은 아무리 유명해도 유랑극단 취급을 받았다.
그때
한 후배 연기자가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는거다. 자기 선배들한테도 말을 막 하고 그래서 내가 그러면 쓰냐고 야단을 쳤다. 하지만 자기가 볼 때 나는 가수 나부랭이였고, 그게 감정으로 비화되면서 내가 따귀를 한 대 때렸는데 나는 그 일로 구속까지 됐다.

폭행 사건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박일남에의 추락은 한순간이었는데 그는 중2 때부터 권투를 배웠고 나중에는 레슬링까지 배웠는데, 그러다 보니 뒷골목을 왔다 갔다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후배들이 생기면서 언론사나 방송국에서는 저거 깡패 두목이다라고 그를 치부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런 박일남이 가장 속죄하고 싶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아내였다. 그는 말하길 “내가 젊었을 때 젊은 여자들하고 루머가 많이 돌았다. 그게 사실이 아닌 것도 많았지만 어쨌든 집에 있는 아내한테는 치명적인 수치심이 되잖나 내가 지은 죄를 다 속죄하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고,
젊은 시절 낭비벽이 심해 빚을 지고 동료들에게 술을 사는 상황에도 육아에 매진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드러냈다.
그는
“술을 먹으면 여럿이 먹게 되고 누구를 사주기도 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오늘 10만 원을 벌었다면 20만 원을 써버리니까 돈이 남지 않고 자꾸 빚을 졌으며 옛날 아내들은 고생고생하면서 먹을 것 안 먹어가며 자식 키우고 다 했는데 그보다 더 고마운 게 어디 있냐”며 지금까지의 가장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아내를 볼 낯이 없다고도 말했는데요.
박일남은 “현재 옛날처럼 여유가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입장이 됐다. 그런 힘없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것도 짐이 되니까 내가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서 작곡실도가 있고 후배들하고 좀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사무실에서도 기도하고 그렇게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후배가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에 들러서 노래를 하고 많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수익이 발생하면 자신이 쓸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놓고 집에 꼬박꼬박 보내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더 경제력이 좋아지면 부단이 곡도 만들어 쓰고 그래서 수입이 많이 생기면 우리 가족도 넉넉해질 거다 내 돌이니까 그렇게 하려 한다’며 책임감을 드러냈는데요.
노래로 쌓아올린 인기는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렸지만, 노래를 향한 열정만큼은 아직 그대로라는 박일남. 그는 30여 년 만에 그만뒀던 노래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다시 기타를 잡고 멜로디와 가사를 구상했는데,
오랜만에
작곡에 도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늦었지만 그녀와 가족을 위해 다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느 정도 회복되면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면 서운할 것 같다. 평생 이 나이가 되면 혼자일 거라고 생각해서 혼자 만들었지만 슬프고 외롭습니다. 그는 “이것을 이겨내고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며 가족을 다시 만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최근 그는 인생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여가 시간에도 자신의 일의 효과를 기록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방랑.
젊었을 때 좋은 순간도 많았고 후회한 일도 많았을지 모르지만, 과거의 모든 잘못을 탓하고 깊은 반성을 바탕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80년이 넘는 박일남의 삶을 통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놀라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해했습니다.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가 더 이상 후회하지 않고,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가수 박일나에게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