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침침해서 문제 푸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87세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 준비하신 이유에 모두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눈이 침침해서 문제 푸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87세 할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 준비하신 이유에 모두가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부터 안 해본 일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 남은 세월 옆에서 불편한 것 없도록 잘 돌봐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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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세 나이로 요양보호사가 된 이재조(창원시 의창구 팔룡동) 씨의 말이다.

이 씨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직접 돌보려고 요양보호사에 도전했다. 첫 시험이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한 번에 합격했다. 지난 5월 14일 제39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같은달 31일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난달 4일에는 경남도지사 도장이 찍인 합격증서도 받았다.

아내 구정숙(82) 씨는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은 뒤부터 거동이 불편해졌다. 또 양쪽 무릎까지 수술해 이동할 때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다. 지난 1월부터 요양보호사가 집에 찾아와 도움을 주고 있지만, 구 씨가 워낙 낯선 사람을 불편해 해 가족들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 씨는 “아내가 낯선 요양보호사가 와서 자신을 돌보는 것을 불편해 했다. 이전에도 내가 옆에서 기본적인 간호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직접 하면 되겠다 싶었다. 자격증을 땄으니 앞으로는 직접 돌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가족들도 그렇고 자신도 한 번에 합격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만큼 기쁨은 두 배였다. 시험을 위해 이 씨는 3개월 가까이 매일 아침 2시간, 저녁 2시간씩 문제집을 풀고 기출문제까지 완독했다. 1400문제가 담긴 시험 참고서도 두 번이나 봤다고.

이 씨가 책상에 오래 앉아 빽빽한 문자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군무원 생활이 한몫했다. 진해 해군정비창 설계과에서 34년 여를 근무했던 그는 1996년 정년퇴직 전까지 휴가도 반납해 가며 성실하게 일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퇴직 전 보국훈장 삼일장을 받기도 했다.

이 씨는 “시험장에서 죽기 살기로 풀었다. 내용은 다 숙지했는데 눈이 침침해 문제를 빨리 읽고 푸는 게 쉽지 않았다. 시험 시간이 1시간 30분인데 문제를 다 푸니까 딱 종료 알림이 울렸다. 경험 삼아 쳐본 건데 좋은 결과 얻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딸과 사위, 며느리도 이번 시험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처음에는 딸, 사위, 며느리가 분량을 정해 이 씨의 자격증 공부를 도와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 씨가 이를 거절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그의 의지에 가족들도 기출문제나 문제집 구매 등 이 씨가 요청한 것들만 도와줬다.

이 씨의 딸 이선미(59) 씨는 “아버지가 원래도 본인 주관이 뚜렷하시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만큼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끝까지 혼자 하신다고 하더라. 걱정되기도 했지만 해내실 거라 믿었다. 오히려 저나 며느리가 떨어질까 봐 걱정할 만큼 쉬운 시험은 아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 씨에게 이번 요양보호사 합격이 의미 있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3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다. 이미 고령인 나이에다가 암이 상당부분 진행된 상황이었던 탓에 병원에서는 치료보다는 요양을 권유했다. 가족들과 요양 치료를 선택한 그는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자신을 돌봤다.

 

 

2년여를 요양한 끝에 기적처럼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고 지난달 검진에서도 위가 깨끗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음 문턱까지 갔다 온 그는 삶에 대한 의욕은 더 커졌지만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 시기 딸 선미 씨가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를 권유했다. 때마침 아내도 낯선 요양보호사를 불편해 하고 있던 터라 큰 고민 없이 공부를 시작했다.

선미 씨는 “아버지가 큰 병에서 완쾌하고 난 뒤라 새로운 삶의 동력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또 어머니를 위한 일이다 보니 아버지도 흔쾌히 참여했던 것 같다. 어머니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도 더 강해지신 것 같고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일만 남은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씨는 남은 생 동안 아내의 전담 요양보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부터 안 해본 일 없을 만큼 고생을 많이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다. 남은 시간은 옆에서 불편한 것 없도록 잘 돌봐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