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후 진성이 장윤정에게 이런말까지 했다고…?” 해당 소식이 전달되고 지켜보던 모두가 감동하고 말았는데..

장윤정은 ‘장회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후배들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장윤정은 그런데

후배뿐만 아니라 예능이 어색한 선배를 챙기는 인물이기도 하죠.

10월 2일 방송된 예능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는 장윤정이 중년 남자 트로트 그룹 ‘트롯꼰대즈’를 기획해 노래 강사로 진성을 초빙했습니다.

장윤정은 이런 진성과의 인연을 묻자 “활동할 때는 거의 마주치지 않았어요. 한 번 편찮으셨잖아요. 투병하실 때 친하지도 않는데 연락처도 모르는데 자꾸 마음이 신경이 쓰이더라고요”라고 운을 뗐습니다.

이어 “회복해 나오시자마자 찾아가서 ‘너무 걱정했다’라고 예능 나갈 때 ‘진성 씨 같이 나가면 안 될까요?’라고 했더니 진성 선배님이 저를 ‘엄마’라고 부르세요. 선배님은 제게 고마운 부분이 있으신지 연락드리면 언제든지 와주시더라고요”라고 밝혀 훈훈함을 자아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방송에서 진성이 직접 ‘윤정 씨의 막내동생이 되고 싶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장윤정은 무엇이든 진심으로 임하는 진성의 태도를 극찬하며 “예능에 마음 여신 지 얼마 안 됐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진성은 예능 스승 장윤정을 향해 ‘장 회장’이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감사함을 드러내는가 하면, “나는 윤정 씨의 막내 동생이 되고 싶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어 특급 예능감을 뽐냈는데요.

 

그런가 하면

장윤정이 진성을 예능계로 인도하기 위해 했던 노력을 말하자, 김동현은 “다 키웠네”라며 그녀를 한껏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장윤정의 이야기대로 진성은 과거 투병 생활을 했었습니다.

진성은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로 감동을 자아냈고, ‘태클을 걸지마’로 빛을 보기 시작하며, 그는 ‘안동역에서’로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보릿고개’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에게 이제 빛나는 나날들만 계속되는가 싶었지만 이름을 알리려는 찰나 불행이 또 찾아옵니다.

‘안동역에서’가 뜨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이 동시에 찾아온 것입니다.

“병원에 갔는데 ‘암입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혼이 나갔어요. 요즘에는 암에 좋은 약도 많이 나오고 초기에 발견하면 나을 수 있는데 당시에는 암이라면 죽는다는 생각이 강했죠. 사형 선고였어요. 인생이 여기서 끝날 거라 생각했어요. ”

특히 그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컸습니다.

아내와 함께 백년해로를 꿈꾸며 행복한 생활을 기대했지만, 이들 부부에게 닥친 것은 병고였습니다.

“병실에서 잠든 아내의 모습에 왜 이렇게 내가 고통을 줄까. 내일 아침에 어디라도 떠나버릴까 별생각을 다 했어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은 호전되어 체력에 맞게끔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한 방송에서 현재도 진행 중인 투병 생활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림프 중 혈액 암은 완치가 없다고 해요. 재발률이 굉장히 높아요. 지금도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갈 때마다 불안하고 초조하죠. 병원 가기 전날에는 잠도 설쳐요.”

진성의 인생사를 들어보면 장윤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성의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이와 아버지의 물리적 가해로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찾기 위해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진성을 두고 떠났습니다.

12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제가 12살 되던 해 외삼촌이 저를 찾아왔어요. 삼촌의 첫말이 ‘너 어머니 보고 싶지 않니’ 였어요. 사실 어머니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가슴에 원망만 가득 차 있었죠.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상스러운 욕을 했었어요.”

그렇게 어린 진성은 1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났지만 처음 드는 생각은 ‘저분이 내 어머니인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난 뒤, 그의 생활은 오히려 더 힘들어졌습니다.

“아버지하고 다시 결합을 했는데, 처음에 안 받느니만 못할 정도로 너무 괴로운 나날이었어요. 거의 매일매일 싸웠어요. 너무 싸우니까 외삼촌이 다시 갈라서게 하려고 했어요. 아버지하고 싸우고 어머니를 데리고 갔죠.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가 없는 서러움을 겪었고, 어머니하고 떨어지면 밥을 굶기 때문에 따라가려고 어머니를 따라가는데 버스 타는 과정에서 외삼촌이 저를 발로 찼어요. 제가 뒤로 낮아 빠졌어요.”

그때 ‘너희들은 나의 부모가 아니라 철천지원수다. 다시는 내가 당신들을 부모라고 생각 안 하고, 다시는 내가 너희를 안 만날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는 1994년 ‘님의 등불’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되었고, 무명으로 전전하다가 힘들게 보내던 그 시절 아버지 산소를 찾았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막걸리를 올리고 본인도 한잔 마신 뒤 원선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막걸리를 올리고, 나도 한 잔 마시고 멀리를 보는데 환청이 들렸어요. ‘너는 아직도 헤매고 있냐, 누가 그렇게 테클을 거냐. 네 애비가 테클을 막아주겠다’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가수 인생의 빛을 비추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43살이었어요.”

 

 

그렇게 힘겨운 투병생활까지 보내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진성인데요.

장윤정의 동료에는 예전부터 유명했습니다.

특히 후배들이 굶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장윤정인데요.

 

장윤정이

이처럼 후배들을 먹이는 데 진심인 이유는 무명 시절 생활고로 배고팠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라면 한 봉지로 3일을 버텼다는 장윤정은 늘 빈혈과 영양실조에 시달렸던 가슴 아픈 과거를 회상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음식을 푸짐하게 하는 이유에 대해 장윤정은 “너무 가난했어서 그게 있어. 먹다 못 먹는 짜증. 그래서 나는 먹는 게 되게 중요해”라고 털어놨습니다.

장윤정은 20세 때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수의 길을 걸었지만 그 시절이 가장 배고프고 힘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내 딴에는 대단히 뭔가 해낸 것 같은데, 거기서 끝나고 아무것도 없었어. 배고파 숨이 끊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때는 라면 하나로 3일을 먹었어. 그걸 불려서 하루에 한 끼 소금만 넣고 먹었는데 얼마나 맛없었겠냐. 근데 그게 너무 맛있었어 노래도 안 되고, 병이 나면서 영양실조에 걸렸어”

그렇기에 장윤정은 더욱 노래 연습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장윤정은

“노래방 기계에 가서 전부 다 보고, 트로트 같은 게 있으면 연습하고 그랬어. 그렇게 연습을 한 게 든든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이를 본 이찬원은 “장윤정 선배님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다들 1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이에요. 장윤정 선배님의 집에 가면 절대 후배들 손 하나 까딱하게 하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찬원이 전한 미담에 장윤정은 “그래 찬원아. 아무도 안 믿었다. 네가 얘기 좀 해줘라”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전현무는 “이런 게 mz세대가 아니에요. 가만히 듣고 계세요”라는 말을 남겼고, 그 말에 장윤정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렇게 줄 서 있는 후배가 250명 정도 되지 않냐?’라는 김숙의 말에 장윤정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다 데리고 나올 예정이에요. ‘당나귀 귀’ 나오는 걸 보며 연락을 해요. 괜히 안부 인사를 보내요”라고 말한 장윤정의 모습에서 후배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후배뿐만 아니라 선배까지 힘든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트로트계를 이끌어 나가는 장윤정을 보고 있으면 왜 ‘트로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을 듯한데요.

앞으로도 장윤정과 진성 모두 건강하게 활약하는 모습 계속해서 보여주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