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락 눈물이 쏟아지고 맙니다..” 임채무의 최근 근황에 많은 이들이 다시 한 번 슬픔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배우 임채우의 안타까운 소식에 모두가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배우 임채무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임채무는 “결혼 37년 차가 됐을 때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라고 입을 열었는데요.

그러면서 “혼자 생활을 시작하고, 하루는 급히 외출하려는데 하얗게 된 뒷머리가 보였다. 그래서 혼자 염색에 도전했다. 옆머리는 혼자서 가능해도 뒷머리는 잘 보이지 않더라.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가 등이 전부 염색약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혼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싶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아내가 췌장암으로 3개월 선고를 받았었다. 스티브 잡스가 걸린 그 병이다. 아무리 길어봐야 5년을 살 수 있다는 병이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죠.

이어 “그런데 아내가 치료를 시작하고, 2개월 정도 지났을 때 주치의가 날 부르더라. 그러더니 ‘아내와 부부 생활이 좋았냐?’라고 묻더라. 나는 ‘난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라고 하는데요.

 

 

그랬더니 의사가 ‘부부 관계가 좋았다면 재혼을 하세요’라고 하더라 의사는 ‘내가 암을 담당하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봤다. 부부 사이가 나빴다면 재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좋았다면 정신적 이상이 올 수 있다”라고 조언을 하더라고 회상했죠.

 

임채무는

“당시에는 내가 해병대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라며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정확히 3개월 만에 이상이 오더라. 지나가는 구름을 보면 내가 ‘여보’를 외치고 있더라. 그러다 제정신이 돌아오면 ‘뛰어내리면 1초 만에 다 끝나는 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었다”라고 말하며 아내와의 사별 후 자살 충동과 함께 극단적 시도에 대한 충동까지 느꼈다고 하죠.

임채무는 5년 전 아내의 췌장의 종양이 생겼고, 6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받았을 때,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암에 좋다는 식품과 한약재를 구하러 천지 사방을 돌아다녔고, 그 덕분이었는지 6개월 판정은 4년으로 늘어났죠.

그러나 하늘은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해 주지 않고 그녀를 데려가고 말았는데요.

임채무는 전 재산을 모두 아내 앞으로 등기해놓았고, 그가 수년 전 사들인 두리랜드까지 그녀 소유로 해놓을 만큼. 그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바치고 싶었던 그였죠.

이 안타까운 사랑이 태어나던 첫 풍경 속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임채무는 무명 시절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어떤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은 아내가 된 박인숙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인연은 그렇게 복선을 깔아놓고 다가오는 것인가요?

1978년 탤런트 임채무와 성우 박인숙은 마포의 한 다방에서 첫 선을 보았는데, 임채무가 첫눈에 반해 15분 만에 프러포즈를 했지만 너무 급작스러운 제안에 박인숙은 거절하고 말았죠.

임채무의 부인 집 안에서도 임채무와 결혼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임채무는 집요했습니다.

반대하는 인숙의 부모를 세 시간 동안 앉아 설득하고, 또 그녀에게 거듭 청혼하여 마침내 허락을 받아냈죠.

 

두 달 뒤에 약혼을 했고

만난 지 석 달 만인 3월 15일에 마침내 웨딩 마치를 올렸습니다.

임채무의 부인 박인숙은 1976년 mbc 공채 7기 아나운서로 입사한 성우였습니다.

그렇지만 임채무는 배우 생활을 너무 성실하게 한 덕분에 가정을 돌볼 시간이 많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임채무 자녀들은 아버지 임채무와의 어린 시절 추억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죠.

임채무의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인숙은

“남편을 감당하기 힘들어 이혼 생각도 했다. 바쁜 남편으로 인해 혼자 남아야 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니 더 이상 아이 둘을 아빠 없는 자식으로 만들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꼬리를 내렸다”라고 말했죠.

임채무의 아내와의 사별 이유는 췌장암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지극 정성으로 임채무 아내 박인숙 씨는 3개월이 아닌, 4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나와 아들, 딸을 제외하면 나의 형제들도 부인이 아픈 것을 몰랐습니다. 그만큼 겉으로 이상이 없었어요. 함께 놀러 다니고 골프 치러 다니고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고를 접한 다음에야 투병 사실을 알았어요.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았어요. 제가 해외 4개국을 돌아다니며 좋다는 약을 다 구해다 주었고,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했습니다. 의사들이 기적이라며 놀랐죠. 그러나 다 무슨 소용이겠나. 결국 떠났는데. 빈자리가 너무 커서 통곡을 몇 차례나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임채무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는데요.

단역 자리를 전전하다가 1984년 ‘드라마 사랑’과 진실을 통하여 멜로 연기로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임채무가 배우 활동을 하면서 몇 번 화제가 된 적이 있죠.

2006년에는 돼지바 광고로 큰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만들어진 광고로 임채무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죠.

임채무는 무명 배우 생활을 거의 11년 동안 했지만, 누구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무명 배우 생활을 이겨내게 됩니다.

임채무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배우 생활을 했다는 것인데요.

그가 말하길 “배우 생활을 40년 넘게 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연기상도 부와 명예도 아니다. 지금까지 리허설 대본 연습에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극중 며느리로 나오는 김유미가 오늘도 선생님 때문에 1등을 놓쳤다고 억울해 하더라”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예전에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방송국 공채를 통해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겉모습만 그럴듯하면 배우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기본이 안 된 배우들이 드라마에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드라마는 안 본다. 방송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후배들을 보면서 속이 상한다”라고 현재의 방송계에 대해 우려를 표했죠.

여러분들은 두리랜드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탤런트 임채무 씨가 운영하는 양주에 위치한 놀이동산입니다.

그동안 놀이동산을 유지해오면서 빚이 몇백억으로 쌓여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죠.

그의 말에 따르면 빚이 무려 145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1990년 개장 때부터 대출을 받아 운영했는데, imf 등 외환위기와 불경기의 흐름에 따라 상황은 악화됐습니다.

수년간 빚에 허덕이면서도 두리랜드에 문을 닫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위한 놀이동산이 제일 재미있어서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어린이를 좋아하고 잘 돌보는 것으로 유명한 임채무는 어린이 프로그램만 5년을 출연한 경력이 뒷받침해 주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현대판 방정환이라고 불리는데 외환위기와 태풍으로 시설이 휩쓸려가고, 사업 운영이 잘되지 않아 매우 어려운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예전에는 입장료 없이

27년간 운영하다가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한편에서는 왜 갑자기 입장료를 받느냐며 따지는 별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때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전 2020년 4월경이었다고 하는데요.

임채무는 왜 그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된 것일까요.

그는 한 방송에 나와 놀이동산을 운영한 지 33년이나 되었다고 밝히며, 놀이동산 하면서 아파트 두 채도 팔고, 놀이동산 근처의 7평 원룸에서 생활하기도 했다고 하죠.

사실 imf 영향도 크고 태풍과 장마 때 15분 만에 약 20억 원의 시설물이 밀려간 것도 주된 이유입니다.

그때 당시 임채무는 건강 악화로 응급실까지 갔죠.

부정맥으로 밝혀졌다고 하더군요.

“부정맥이 오다 보니 움직일수록 호흡이 가빠지더라”라고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게다가 사기도 당했다고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입장료를 2천 원 받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한 가족이 8천 원이 없어서 놀이동산에 들어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선 곧바로 매표소 문을 부수고 무료입장으로 바꾸었던 에피소드는 워낙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러나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 놀이동산 운영은 빚만 쌓이게 되고 대출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맙니다.

그러다 보니 빚이 늘어나게 되고 적자는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죠.

그렇게 입장료 없는 두리랜드를 운영하면서 상상 이상의 빚을 지기도 했으나, 그런 상황에서도 초기 채용했던 직원들에게는 자기가 개인적으로 번 돈으로 모두에게 작은 아파트를 선물하기도 했다는 임채무 씨.

그러던 임채무 씨가 두리랜드를 야외 놀이공원에서 요즘 트렌드인 어린이 시설 등 실내 시설을 추가로 새롭게 꾸미면서 130억 원이 넘는 빚을 다시 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빚 이외에도 살던 집 두 채, 아이들 마이너스 통장까지 써가며 새 시설을 했다고도 하는군요.

 

그런 사실을 안 가족과

지인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말렸다는 후문입니다.

그동안 진 빚도 많고, 앞으로도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 모르는데, 다시 큰 빚을 지면서까지 두리랜드를 리모델링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하더랍니다.

임채무 씨가 그분들에게 한 대답이 걸작입니다.

“세상에 지기 싫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한 마디입니다.

임채무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없어도 이 놀이동산은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임채무 씨가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 번 어르신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캠핑카를 타고 의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의료봉사 모임인 낭만 닥터를 통해서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의 열정을 태우고 있는데요.

그는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에서 ‘어르신들의 의료 봉사가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달려온 그가 이제는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또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이 시대의 진정한 위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하는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임채무의 건강과 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