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심은 1951년에 제주도 토박이 집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고두심
그녀는 중1 때부터 고전 무용에 빠져서 도 대표로 민속경연 대회에 나가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받을 정도로 춤에 소질이 있었고, 나중에는 경희대 무용학과의 특채로 합격까지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용을 포기하게 되는데요.
고두심은 무용을 하면서 tv도 흔하지 않던 시절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막연히 배우가 되고 싶다고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성일, 엄앵란, 최지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촬영차 제주에 오게 되었는데, 당시 그 배우들이 모두 한 호텔 5층의 베란다에서 바다를 구경하고 있던 도중 고두심을 비롯한 수많은 여고생들 인파가 아래에서 연예인들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두심은 그때 신성일이 마치 자기만 바라보는 것 같았고, ‘쟤는 배우 시키러 서울로 데려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환상에까지 사로잡힐 정도로 배우에 대한 꿈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훗날 고두심은 배우가 되어서 신성일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너무나 어이없어’라고 했다고 하는데요.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낸 고두심은 서울에 공부하러 간 오빠에게 매일 밥을 해주러 서울로 가게 되는데, 배우는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도 모르겠고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세종문화회관 옆에 학원을 2개월간 다니다가 어느 날 오빠가 신문에 천성 물산 주식회사라는 곳의 채용 광고를 보여주게 되면서 그 회사를 찾아가 면접을 보게 됩니다.
당시 면접관이 고두심에게 ‘특기가 뭐냐고’라고 묻자, 그녀는 ‘고전 무용’이라고 답했는데요.
‘수입 전문 무역회사의 실무에 필요한 특기가 뭐가 있냐’라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시골 처녀였던 고두심의 순진한 대답을 들은 면접관은 박장대소하면서 ‘알겠으니 일단 가보라’라고 했는데, 고두심은 며칠 있다가 회사에 출근하라는 깜짝 연락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두심이 맡게 된 직무가 현금 출납 업무였다 보니, 회사에서는 순수한 데다가 깔끔한 인상에 고두심을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취직하게 된 고두심은 사장님 비서 업무를 겸하며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모두 외워서 사장님이 필요할 때 항상 즉각 전화를 연결시켜줬을 정도로 열심히 직장 생활에 임했고, 원래는 서울에 오빠 밥을 해주러 간 건데 나중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빠가 반대로 밥을 해주는 웃기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직장을 4년간 다니던 그녀는 72년에 mbc 탤런트 공채에 지원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1차 서류 심사와 2차 카메라 테스트를 합격하더니 3차 임원 면접 후 최종 사장님 면접까지 보게 되었는데, 당시 잘나가던 가수 은희가 고두심의 동창이어서 방송국 사장님과 은희 얘기를 한참 나누었고, 결국 최종으로 합격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배우의 꿈을 이루고, 직장을 퇴사한 고두심.
하지만 그녀는 탤런트가 되고 나면 신데렐라가 되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방송국에서 매일 선배들 담배와 커피 심부름이나 하게 되자 실망감에 다시 다니던 회사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다 2년 후, 방송국 드라마 국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네가 배우로서 싹이 보여서 점수도 잘 주고, 너를 1등으로 뽑았는데. 왜 배우를 안 하냐’라며 신인으로서는 꽤 큰 역할로 드라마에 캐스팅하게 되는데요.
첫 배역을 맡은 고두심은 첫 대본 연습 날 한 공간에서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 하게 되자, 그 부담감에 온몸이 너무 떨려서 도저히 대본을 읽을 수가 없이 입을 뗄 수가 없었고, 앞에 앉은 선배가 자기들도 처음엔 그랬다며 괜찮다며 용기를 줬지만 그래도 견딜 수가 없어서 끝내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펑펑 쏟게 되었고, 결국 드라마에는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후 고두심은 다시 다른 드라마의 성춘향으로 캐스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복을 입기에는 몸이 커서 뚱뚱해 보이고, 옷맵시가 살지 않아 이번에도 출연 기회를 놓치고 마는데요.
사실 그녀는 그러한 몸매 때문에 ‘애마부인’에도 섭외가 되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드라마에 ‘엄마’ 역할로 나오면서 국민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그녀는 여러 드라마의 단역으로 차근차근 경험을 쌓으며 열정을 불태우게 되는데요.
그러다 그녀는 거상 김만덕의 일대기를 그린 정화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되는 기회를 잡았는데, 당시 신혼 초 남편이 미국으로 일하러 가 있던 때라 시댁에서 지냈다 보니, 시어머니가 손맛이 너무 좋아서 밥을 잘 먹었더니 살이 찌게 되었고, 나중에 그런 그녀를 보게 된 드라마 PD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고두심을 조연으로 내리고 주인공을 남정임으로 교체하게 됩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쳐서 속상해하던 고두심.
하지만 당시 남정임의 집에 강도가 침입하여 권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렇게 남정임이 드라마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다급했던 제작진은 고두심을 다시 주인공으로 올리게 되었고, 결국 그 드라마는 종영 때 김만덕 기념탑이 세워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게 되어 처음으로 고두심 이름 석 자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80년대 ‘전원일기’ 큰 며느리로 22년을 출연하며 국민 어머니로 등극하게 되는데요.
고두심은 어떤 배역이 주어져도 항상 최선을 다했고, 89년에는 ‘잘났어 정말’이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사랑의 굴레’에 출연하며 당시 여주인공이었던 김미숙보다도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연말에 kbs 연기대상까지도 수상하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90년에는 mbc에서도 대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sbs에서 대상을 받으며 여배우로는 최초로 방송 3사 대상이라는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후 2004년에는 mbc와 kbs에서 동시에 대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어냈고, 2015년에 다시 kbs에서 대상을 받으며 역대 연기 대상의 최다 수상자로 등극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처음 대상을 받을 당시 제주도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와서 배우로 뽑히고도 계속 꺾였다가 끝내 일으켜 세운 것처럼 많은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대상을 받은 mbc에서도 당시 ‘춤추는 가얏고’라는 작품에 출연해서 창을 해야 했는데 차 안에서 그리고 샤워하며 욕실에서까지도 피나게 창을 연습했다고 하며, 그렇게 연기자로 큰 인기를 얻으면 나중에는 정계 진출 제안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는 그쪽 공부를 하던 사람이 하는 것이지, 자기가 tv에 좀 비췄다고 정치를 하면 그동안 정치 공부한 사람들은 뭐가 되냐’라며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게 되는데요.
또한 그녀는 유명 톱배우의 결혼식에는 가주지 못하더라도 인기 없는 후배 결혼식에는 꼭 참석을 해준다며, 결혼식에는 유명 동료들이 참석을 해주는 그 얼굴이라는 게 필요한 건데 그게 부족한 비인기 후배들의 결혼식에는 본인이 꼭 가주고 또한 경조사 중에 조사는 꼭 챙기려고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고두심은 모교인 제주여고에 두심 장학회를 만들어 집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게 되는데요.
한 번은 해외에 가서 사우나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 사장님이 ‘자신의 딸이 과거에 두심 장학금을 받았다’라며 고마움에 고두심에게 밥을 사줬다는 미담도 있습니다.
이렇게
연기자로 사랑을 받으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게 된 고두심.
하지만 가정에서는 바쁜 스케줄로 아이들에게 많이 챙겨주지 못했던 못난 엄마였는데요.
아이들 학교 준비물 한 번 같이 가서 사주지 못했고, 아이가 열이 나고 아파도 도우미 아줌마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단 대문 밖을 나가면 일에 집중하느라 아이를 까먹고 있다가 끝나고 들어갈 때 되어서야 생각이 나서 걱정이 되곤 했다고 합니다.
사실 밖에서 일하고 들어오면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는 아이들 챙길 정신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그녀가 1998년 결혼 18년 만에 이혼 소식을 알렸을 때는 사람들 모두가 놀랐고, 그녀 본인도 너무 충격이 컸는데 당시 집에 전화벨이 계속 올려서 얼떨결에 받았더니 한 할머니께서 ‘당신 때문에 내가 티비를 봤는데 이 시간 이후로는 tv를 안 보겠다’라며 화를 내셨고, 잠시 후 또 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신 역시도 너무 대단히 실망했다’라며 고두심에게 소리치게 됩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고두심은 아무 생각이 없었고, 멍한 상태로 ‘시청자분들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셨으면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하고 느끼게 되는데요.
이혼 후 혼자가 되고 나니 대문 밖이 무서워서 자주 나가지도 못했고, 그러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면 다른 사람들은 한 가족이 왔는데 자기는 반가족이니 쓸쓸했고,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까’라는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큰 자책감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까지 아프게 하며 자신의 인생 최대 오점을 남겼다는 고두심.
당시 한 번은 강릉에서 촬영을 마치고 오는데 차 안에서 내내 ‘자신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한 자세로 너무 오랜 시간 계속 생각을 했더니, 결국 허리에 담이 오는 바람에 차에서 내리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고, 나중에는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로 병원까지 다니며 투병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의 학교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기사로 소식을 보았다. 사람 살다 보면 별별 일도 많고 많은 생각 끝에 결정을 하신 걸로 알고 있으니, 아이의 학교 생활은 자신이 잘 다독일 테니 걱정 마시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당시 그게 참 큰 위로가 되었다는 고두심은 ‘이혼을 하지 말고, 실수를 포용하며 인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하는데요.
또 어느 날은 여수에 있는 시청자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자신이 고두심 당신을 만난 적은 없지만, 당신이 충분히 생각해서 결정했으리라 믿고 너무 자책하거나 묶여 있지 말고 하루빨리 털어내라’라며 여수갓김치를 고두심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고두심은 이후로 그저 일에 매진하며 기나긴 우울감에서 서서히 헤어 나오게 되는데요.
그로부터도 이제는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모두 결혼하여 자신의 곁을 떠났고, 그렇지만 이 나이에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려운데 지금은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함께 대화하고 식사도 같이 하고 여행도 다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고두심의 전 남편은 불과 얼마 전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고두심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고 하는데요.
고두심은 얼마 전 한 방송의 아들과 함께 나왔는데 아들이 아빠의 유품을 정리했다며 고두심에게 한 상자를 보여주는데, 거기에는 전 남편이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고두심의 사진이 들어있었고, 그걸 본 고두심은 ‘미워서 갔으면서 왜 이렇게 갖고 다녔냐’라며 울컥해 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배우가 되었지만, 수많은 실패와 역경이 있었고 결국에 성공해서 승승장구했지만, 끝내 남편과 이별하며 인생의 오점을 남기더니 하늘로 떠나버린 남편은 떠날 때까지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두심.
그녀는 50년을 연기한 길만을 걸으며 ‘연기 빼고는 이제 할 줄 아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일상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라며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그녀에게 그런 행복의 나날들로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우리가 몰랐던 그녀만의 슬픈 인생을 살아온 배우 고두심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