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 김형자 결국 이혼하고 최근 아들까지도…” 두 번 이혼도 모자라서 밤 사이 전해진 눈물겨운 소식.. 모두가 망연자실만…

김형자는 6.25가 한창이었던 1950년에 태어났습니다.

김형자의

아버지는 군수였고, 어머니도 부잣집 딸이었는데 김형자의 부모님은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회였던 1930년대에 연애결혼을 했던 흔치 않은 케이스였습니다.

어머니가 김형자를 임신했을 때는 마침 6.25가 발발하게 되는데요.

김형자가 1950년 9월생이니까 6.25 발발 당시는 김형자의 어머니가 거의 만삭에 가까웠던 시기였는데, 원래 황해도에 살고 있던 김형자의 가족은 전쟁을 피해 모두 대전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폭격이 오는 와중에도 피난지에서 불빛을 가리면서 김형자를 출산하게 됩니다.

김형자의 출산 후 그녀의 언니가 아버지 식사를 챙기러 갔는데 ‘아버지. 엄마 아기 낳았어요’라고 하니까, 아버지는 ‘또 딸이냐’라고 했고, 얘는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며 아들 자자를 써서 형자라고 이름을 짓게 됩니다.

 

 

사실 김형자 위로 이미 언니만 셋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이었는데요.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대전에서 사업을 하러 서울로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로 떠난 아버지는 이후 연락이 없었고,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으러 7살인 김형자를 데리고 서울로 가게 되는데요.

어머니와 김형자는 서울에서 아버지가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진 한 동네를 찾아갔고, 그곳의 한 다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김형자의 어머니에게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어머니에게 귓속말로 무슨 말을 전하게 되는데요.

다방의 마담이었던 그 여자는 김형자의 어머니에게 바로 아버지가 있는 곳의 주소를 알려줬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김형자를 데리고 그 주소에 도착했는데, 문을 여니까 어떤 여자가 갓난 아이를 옆에 두고 누워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그 여자는 아이를 막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김형자의 아버지가 그 여자와 외도를 했고, 결국 아이까지 출산했던 것이었습니다.

김형자의 어머니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눈이 발칵 뒤집혔고, 그 여자에게 가서 고무신으로 때리며 대판 싸우게 됩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는 김형자.

그녀의 어머니는 이후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는데, 다시 말해 김형자의 어머니는 배신감의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기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 5명의 딸을 키우게 되는데요.

여자 혼자의 힘으로 5명을 키웠기 때문에, 김형자의 가족은 그 후 형편이 어려운 가난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후 김형자는 대전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는데요.

그녀의 어머니가 대전에서 못 살겠다며 서울로 가자고 했지만, 막상 서울에서 갈 데가 없으니 결국 언니 자취방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김형자의 가족은 단칸방에 6명이 함께 살기 시작하게 되는데요.

김형자는 그렇게 어머니가 홀로 다섯 딸을 키우게 되는데, 단칸방에서 지그재그로 자고 장롱이 있으면 그 밑에 들어가서 자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매끼리 당번을 정해서 요리를 했고, 고등학생 때 빈대떡을 부치기도 했는데요.

식사가 끝나면 설거짓거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공동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당시 김형자는 쌀가게를 하던 부잣집 친구를 보면서 자기 방을 가져보는 게 꿈이었고, 그 당시에 라면이 처음 나왔는데 숙제 들고 맨날 그 부잣집 친구네에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전용 책상에 화장품도 있었고, 먹을거리도 풍부했으며 크림빵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김형자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빨리 커서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게 된 김형자는 1970년 21살의 나이에 tbc 공채 탤런트에 뽑혀서 연기자로 입문하였고, 74년 tbc 드라마 ‘맏딸’로 데뷔하면서 청순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큰 두각을 나타내면서, 70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탤런트로 활발한 연기 활동을 벌여 나가게 되는데요.

 

그녀는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1974년도에 자신이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름으로 새집을 사들이면서, 그녀가 평소에 마음먹은 대로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 했으며, 이후에도 고생하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게 됩니다.

그렇게 김형자는 안방극장과 영화계를 오고 가면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극의 재미를 이끌어가는 감초 같은 연기자로 명성을 떨치면서 연기자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배우의 삶과는 달리 김형자는 사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형자는 두 번의 결혼을 했고, 두 번의 이혼을 한 슬픈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 생활 중에 얻었던 두 명의 자식이 모두 죽는 아픈 기억도 갖고 있는데요.

김형자는 70년대 초반 당시의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가 한 명 있었고, 그 남자와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어머니는 ‘딴따라가 우리 집 안에 며느리로 들어오는 것은 절대 안 된다’라고 극심한 반대를 했고, 결국 그 남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1978년 김형자는 영화배우 김경수와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김형자는 첫사랑을 잊기 위해서 홧김에 김경수와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김형자는 1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남편은 결혼 20일 만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혼외 자식까지 낳았고, 외도를 말리는 그녀에게 구타하고 폭행하면서도 계속 외도를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김형자는 그런 남편과 가까스로 두 번의 임신을 하였지만, 첫 번째 아기는 김형자의 배 속에서 숨을 거뒀고, 두 번째 아기는 출산 직후 숨지게 됩니다.

결국 김형자는 남편의 외도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서 1988년도에 이혼하고 마는데요.

이혼한 그 해 김형자는 네 살 연하인 최길규 피디와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두 번째 남편은 또 마마보이 기질이 있는 연약한 남자였다고 합니다.

김형자는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하지 못하고, 게으른 성격의 남편을 애들 야단치듯이 야단쳤고,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반항을 하면서 두 사람 간의 다툼이 심해지게 되는데요.

그녀는 tv와 영화계에서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돈도 넉넉히 벌었지만, 남편은 게으름을 피우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돈도 벌어오지 않아서, 김형자와 남편 간의 다툼과 마찰이 오랫동안 지속이 되게 됩니다.

김형자는 후에 당신을 회고하면서 ‘남편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했더라면, 자신이 많이 밀어줬을 텐데.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더라. 한 번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잘못 꿰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남편이 일을 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이 반복된 점을 무척 아쉬워했음을 털어놨습니다.

결국 김형자는 두 번째 남편과도 1998년 또다시 이혼하는 아픔을 겪게 되는데요.

두 번째 이혼할 때에는 김형자가 남편이 진 빚을 다 갚아주고, 남편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집과 살림살이까지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혼한 지 한 달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그 집에서 살림을 차려 김형자를 놀라게 하는데요.

이렇게 김형자는 아버지의 외도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두 번의 결혼 실패를 겪고 난 후, 이제 남자라면 징글징글하다면서 또다시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되살아날 것 같아서 이후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두 번의

결혼 실패를 겪은 김형자는 솔로가 되어 20여 년간 나름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요.

이혼 후에 혼자가 된 김형자는 비록 자신에게 가족은 없지만, 나는 이제 나만 생각하면 되고 오직 나만 건강하면 되고, 나를 위해서 살면 되니까 다른 것에 대해선 걱정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저 사람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 어떻게 혼자서 살까?’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지만, 건강하고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오히려 혼자서라도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다고 김형자는 말하고 있는데요.

49살부터 지금까지 20여 년을 자기 생활을 즐기고 살다 보니까 친구들이 ‘너무 아깝다. 한 번 더 도전해봐’라고도 했지만, 웃으면서 장난으로 ‘장례식 갈 일이니?’라고 대답했다는 김형자.

비록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김명자이지만, 연기자로서 15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그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김형자의 용기와 긍정적인 마인드에 박수를 보내며, 불운한 인생을 살아온 배우 김형자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