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배우 주현 안타까운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청력마저 잃어가고 걱정되는 그의 소식들을 지금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주현은 1943년에 함경남도 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주현의 문명은

주일춘이고, 그의 아버지는 중국 출신으로 한의사로 활동하던 천도교도셨는데, 공산당에게 잡혀 1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다가 1948년에 가족을 이끌고 월남한 뒤, 천도교 교령 주석까지 지낼 정도로 천도교에 심취해서 버는 돈을 모두 종교에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셨지만 수입의 대부분을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쓰지 않고, 천도교와 관련된 일에 썼기 때문에 삼 형제인 자식들에게는 재산을 거의 물려주지 않았고, 역시 한의사셨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집안 생계를 꾸려 나가셨는데요.

아버지가 중국에서 내려오신 분이라 밀가루 음식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수제비를 드시다 보니 주현은 어머니가 수제비를 끓이면 뒷간에 가서 울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때 너무 밥이 먹고 싶었고, 고등학교 2~3학년까지는 항상 배가 고팠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주현은 그런 아버지에게 함부로 대들지는 못했는데,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무척 엄하고 자잘한 정이 없었던 분이시라, 아들 주현은 어린 시절 아버지께 잘못하면 사정없이 주먹이 날아왔고, 자신도 체격이 꽤 컸지만 아버지를 속으로만 원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모에게 대드는 건 호래 새끼나 하는 짓이니까, 부모한테 귀싸대기 맞고 쫓겨나도 반항을 못 했다”라고 하는데요.

학창 시절 주현은 178cm에 80kg였을 정도로 체구가 커서 사람들이 큰 호랑이라는 뜻의 ‘왕호’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힘이 세다 보니 다른 학생들이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현 역시

의협심이 있어서 약한 애들을 보호해 줬지 절대 때리지는 않았다는데요.

당시 학교에서 싸움이 나면 방과 후에 애들이 다 나와 구경하는 데서 옷통 벗고 1 대 1로 힘겨루기를 하곤 했지만, 주현은 한 번도 진 적이 없이 동네와 학교를 거의 다 평정했을 정도로 힘이 세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반장을 3년 내내 했는데,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힘 좋고 인기가 좋아서 반장을 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어느 학교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애들이 있으면 껄렁거리는 깡패들도 있었는데, 학교마다 이름난 애들이 있었고 그때 깡패들은 주로 패싸움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학교 애가 누구한테 맞았다고 하면 그 학교로 몰려가서 싸우고 껄렁껄렁한 놈들은 모자를 찢어서 헌 모자처럼 재봉질로 박아 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또한 모자챙을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눌러 썼고, 주현도 껄렁해 보이려고 종종 그러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책가방 안에 몽둥이 같은 것도 넣어 갖고 다니고, 그때는 골목마다 깡패들이 있어서 자칫 방심하면 끌려가 맞으니까 책가방에 흉기나 쇠 파이프까지 신문지로 감아갖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나중에는 주로 퇴학 맞은 애들이 교복을 입고 깡패처럼 다니면서 공사판에서 쓰는 철근 갈고리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는데요.

하지만 당시는 교내 규율이 엄격했고, 학교에서 담배 한 번 피우면 퇴학감이었을 정도로 선생님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걸리면 그냥 몽둥이로 때려서 시퍼렇게 멍들도록 맞았고, 학교에서 깡패 짓 하면 무조건 퇴학시켰으니까 깡패도 선생한테 함부로 못 했다고 합니다.

그런 주현은 어릴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자주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본 영화를 실감 나게 들려주곤 했다는데요.

하루는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신파극의 대사를 외워서 학교 장기 자랑에도 나가기도 했던 주현은 당시 정치가가 꿈이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연예계를 동경했을 뿐, 배우가 될 생각은 없이 졸업 후 건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게 됩니다.

대학에 다니며 그는 지금의 아내인 김광자 씨를 만나 연애를 하게 되는데요.

아내는 학창 시절 메이퀸 출신이었는데, 주현은 학교를 오고 가는 도중 그녀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주현은 아내에게 계속적인 작업 끝에 그 시대 연인들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었던 청평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뒤 공공연한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는데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연애를 시작한 주현은 이후 군에 갔다가 제대하자마자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주현은 자신이 첫사랑과 결혼했다고 남들이 부러워도 했지만, 너무 일찍 결혼한 탓에 때때로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데요.

그렇게 아내와 결혼한 후 아들, 딸을 한 명씩 낳은 주현은 ‘사실 결혼 후 몇 년은 총각 같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아이들이 생기니 기분이 달라지더라’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래도 남자는 철모를 때 결혼해야 별 탈 없이 사는 것 같다며, 그 이유는 여자를 알고 사회를 알고 나면 결혼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여자를 만나도 자꾸 단점만 보이고, 그러면서 더 좋은 여자 없나 하고 바라게 된다’라고 말하는 주현은 군에서 제대한 후 원래는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도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더니, 민주공화당 공채 시험을 봤다가 또 떨어졌고, 중앙정보부 시험도 봤다가 역시 떨어지게 되는데요.

그래서 장사가 맞는 것 같아서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나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그때는 연줄이 있어야 하고 자본도 필요해서 결국 포기를 하게 됩니다.

그는 군대를 ROTC로 갔기 때문에, ROTC 3기 선배가 ‘야 넌 군 체질이니까 장기 복무하는 게 어떻겠냐?’라고도 물어봤지만, 당시는 박 대통령이 이북 출신 군인들을 막 자를 때였고, 또한 자신은 육사 출신도 아니다 보니 결국 중위로 전역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주현은 ROTC 5기 출신으로 전방 철책에서 GP장으로 근무했는데, 북한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124군 부대를 침투시켰던 당시의 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무시무시했던 전방 상황을 회상하며 ‘난 그때 제일 먼저 죽는 줄 알았다. 북한 쪽을 보니까 평소 보이지 않던 직사포가 보이더라. 우리는 벙커도 없이 막사 앞에다 호를 파놓고 있을 때였는데, 직사포 한방이면 날아가는 거지 뭐. 실제 가끔 교전도 벌어졌고, 그런데 이쪽으로 침투하는 인민군들을 보면 항복이란 게 없어 꼭 죽기를 작정하고 오는 놈들 같아. 우리 쪽으로 오면서 우리 계급장을 거꾸로 달고 오는 걸 보면 죽겠다고 오는 거 아니겠는가. 우리 쪽을 교란하다가 죽으라는 거지. 마이크로 뒤에서 ‘손들고 나오라’라고 해도 김일성 찬가 부르고 안 나온다. 독한 놈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던 주현은 군 제대 후 kbs가 제작하는 베트남 전선 다큐멘터리 8부작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드라마 반, 다큐 반이었던 군사 영화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원래는 장교 출신으로 배우들에게 군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자문 역할로 고용된 스턴트맨이었는데, 중대장 역을 맡은 배우가 제때 나타나지 않자 땜질용으로 즉석에서 주현이 기용되게 됩니다.

당시 자문비에서 200달러를 더 준다기에 중대장 역할을 덜컥 맡아버린 그는 연기는 처음이었지만, 장교 출신으로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중대장 역을 그럴싸하게 해냈는데요.

후에 무전병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자 이번에는 무전병 역까지 그는 무난하게 소화해 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주현의 연기를 본 KBS국장이 그를 젊을 적 신연균 스타일이라고 극찬을 하면서, 결국 이것이 인연이 돼 주현은 kBS의 특제 탤런트로까지 선발되며 연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하지만 당시에는 텔레비전이 집집마다 있지는 않던 시절이어서 tv 연기자는 별로 인기가 있는 직업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현의 아내는 당시 같이 못 산다고 집을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주현은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데뷔 초반에는 연기력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는데요.

주현은 탤런트 특채 후 처음 몇 달간은 큰 체구 덕분에 엑스트라 장군 등의 단역만 도맡다가 이후 ‘사랑의 훈장’이라는 드라마로 첫 주인공 역을 맡게 됩니다.

원래는 주인공으로 신영균이나 최무룡이 거론됐던 작품이었지만, 주현을 파격적으로 기용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고은아가 상대역으로,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된 이 드라마는 크게 히트는 했지만 주현의 연기력이 문제였습니다.

주현은 그전에 군사물 같은 것은 군인 출신이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연기에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멜로에 나가니까 연기가 안 되었다고 하는데요.

 

 

또한 그때는

배우가 잘 못하면 피디들이 어찌나 야단을 치는지 주눅이 들어서 할 수가 없었는데, 여주인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는 장면에서는 ‘야 넌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라고 했더니, 여자를 잡아먹으려고 그러냐’라고 야단치고 너무 표현이 안 되니까 제작진들끼리 고민하다가 결국 10회 만에 주현이 죽는 걸로 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현은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차라리 아주 잘 됐다’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주인공 한 번 해봤으니, 그는 다시 원래의 꿈을 위해 외교관 시험이나 여기저기 원서를 내면서 다녔는데, 그때 의외로 방송국에는 시청자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도 텁텁하고, 연기도 구수한 그 연기자를 왜 중도 하차 시켰냐’라는 항의였는데요.

주현 배우가 연기는 못해도 순박한 데는 있었다며, 복귀를 요구한 시청자들 덕분에 주현은 죽은 후에도 상대 역인 고은아의 회상 장면에서 종종 얼굴을 내밀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뿌연 연기 속에서 아무 말 안 하고 서 있는 그런 영혼 역할로 다시 드라마에 출연했던 것이었는데요.

이듬의 주현은 ‘먹구름 흰구름’이라는 드라마에 다시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주인집 딸을 짝사랑하는 벙어리 머슴으로 대사가 없는 역할이었습니다.

그 드라마는 상대 역인 한혜숙의 데뷔작이기도 했는데, 대사가 없어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도전했지만, 벙어리 역이야말로 대사가 없으니까 연기가 더 필요했고, 그렇게 또 주현은 홍수가 나서 온 동네가 쓸려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막다가 또 죽는 것으로 도중에 하차를 당하게 되는데요.

주현에게 ‘잘 해낼 수 있는 역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는데, 주현이 ‘유도와 복싱 등을 해서 운동을 했다’라고 하니 운동하는 장면을 멋있게 써주고, 또 다른 뭐를 잘한다고 하면 그런 장면을 써주고 하면서 다행히 드라마는 히트를 치게 됩니다.

그렇게 주현은 이 드라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연기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야간 비행’을 꼽고 있는데요.

 

데뷔 초

연기력으로 지적을 받던 그는 그렇게 차츰 안정을 찾게 되었고, 쉼 없이 활동을 했지만 체구 때문인지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주로 이순신, 강감찬, 김유신 등 장군 역할에 머물렀고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피디들에게 밑 보이게 된 주현은 점점 캐스팅에서 설자리를 잃으며, 할 일이 없으면 방송국에 나가 누가 소주 사주면 한 잔씩 얻어먹곤 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배우 서승현의 남편이었던 지금은 작고한 kbs 황은진 pd가 ‘잘하는 배우를 왜 이렇게 썩히느냐’라며 ‘회전목마’라는 드라마에서 사기꾼 교장 역할로 주현을 캐스팅하게 됩니다.

주현은 장군 역할만 주로 하다가 사기꾼 역할이 들어와 당황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임한 결과 이후 황은진 피디에 의해 연기 인생의 가장 대표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직도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서울 뚝배기’의 ‘안동팔’ 역이었는데요.

그는 처음 캐스팅되었을 때 ‘무슨 역할이냐’라고 물으니, ‘뚝배기 식당에서 “어서 옵시오~ 3번 손님 받아라”이런 역할이다’라고 설명을 받았는데요.

처음엔 ‘자신이 죽으라는 얘기인지, 화가 나서 다 뒤집어엎고 집어치울까 하다가 그래도 황은진 피디가 놀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서 써준 것이니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진심을 다하게 됩니다.

‘서울 뚝배기’에서 주현은 ‘아저씨~~ 껄랑요’라는 사투리로 큰 유행어를 만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당시 왕십리 쪽에 서울 사투리를 주현이 듣고 연구해서 만든 캐릭터였는데요.

당시 작가가 주현에게 ‘그 꼴랑요가 대체 무슨 뜻입니까?’하고 물으니 주현은 ‘야 내가 언제 꼴랑요라고 했냐?’라고 했는데 작가가 ‘자기가 걸랑요? 해놓고 그걸 몰라?’이러자 주현은 ‘야 그건 애드립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 꼴랑요’가 재미있다며 주현에게 더 하라고 주문했지만, 주현은 막상 하라고 하니 또 잘 안됐다고 하는데요.

만일 그가 ‘서울 뚝배기’를 하지 않고 집어치워버렸다면, 지금의 명배우 주현도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후 그는 드라마 ‘옥이이모’에서는 이빨이 없는 풀빵 장수 역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로 이빨을 뽑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는데요.

또한 영화 가족에서는 암에 걸린 아버지 역을 소화하기 위해 연기 인생 최초로 과감하게 머리를 삭발했고, 애꾸 분장을 위해 눈꺼풀을 라텍스로 잡아 늘렸는데, 하루 종일 눈꺼풀을 내리고 있으니까 머리가 아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주현은 그 영화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는데요.

데뷔 초 연기를 못해 드라마에서 도중하차하던 배우였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주현은 이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는 명배우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원래는 배우가 될 생각도 없었다가, 우연히 군대 다큐에 출연해 특채 탤런트까지 뽑히며 배우가 된 것인데, 주현은 그런 자신에 대해 말하길 ‘”거울을 보면 ‘어떻게 이 얼굴을 가지고 배우를 해 먹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맨날 술 쳐 먹어서 얼굴 퉁퉁 붓고 머리통도 크지. 배떼기는 나왔지. 그런데 뭐 연극 출신도 아니고 연기를 학교서 배운 것도 아니고 그런데 30 몇 년간 연기하면서 밥먹고 살았단 말이야. 그러니까 연기는 원초적인 팔자야”라고 했는데요.

영화 촬영을 모두 마치고 홍보 포스터를 찍어야 한다는 제작자의 요청에 ‘자신의 얼굴을 포스터에 쓰지 않을 거면 찍지 말라’라고 했지만, 결국 못 이기고 나가서 찍기는 찍었는데, 시사회에 가서 보니 자신은 “사진은 고사하고 포스터에 있는 이름도 하도 작아서 잘 안 보이는 바람에 기분이 무지하게 나쁘더라”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그는

“극장에 오는 관객들이 젊은 층들이고 거기에 맞춰야 되니까, 늙은 놈의 얼굴이 나오면 우중충해 보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 연기 생활을 한 사람이고, 단역 배우도 아닌 이 영화에서 한 파트의 주인공인데 젊은 놈들 뽀뽀하는 것만 붙여놓고 이름도 잘 안 보이고 이게 뭐 하는 짓들이냐. 그렇게 해놓고는 영화 홍보를 해달라고 그러냐? 안 한다. 나도 내 팬이 있고 나보고 싶어서 오는 관객들도 있는 거야. 그런데 이렇게 해놓는 게 어딨어?”라고 말하며 불쾌함을 드러냈는데요.

주현은 또한 수십 년 연기의 길에 정진하며 대사 하나, 표정 연기에 혼신을 힘을 다하는 중년 연기자들은 얼굴 사진 한 장으로 뜨는 젊은 얼짱 앞에 무기력하다고도 말했었습니다.

중년 연기자들은 밥을 먹는 장면에만 필요하다고 해서 ‘밥상용 배우’라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나이 든 연기자들은 그때나 필요하게 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그는 또 말하길 “연예, 교양, 오락 프로그램 할 것 없이 모두 10대 20대 위주로 가는 게 방송계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서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라, 진짜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고 사우디에 가서 땀 흘리고 월남 가고 한 사람들, 자식들 키운 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잖아요. 있어봐야 전국 노래 자랑이나 가요. 무대밖에 없어요. 20대와 30대가 상품 구매력이 높다는 이유로 이제 방송의 주인은 그들이 됐어요”라며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그는 젊어서부터 오랜 시간 배우로 살다 보니 제시간에 집에도 잘 못 들어갔고, 아내에게 못해준 게 많다며 미안함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좀 문제가 생겨야 붙들고, 씨름도 하고, 야단도 칠 텐데 공부 잘하고 아무 탈 없이 잘 컸다며 자신이 너무 애들한테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도 세월은 비껴갈 수 없었던 것일까요.

주현은 얼마 전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열 번이나 음주를 하고 한창 때는 하루에 담배를 60개이나 피운 그는 혈압이 무려 172의 고혈압에 당뇨와 고지혈증 그리고 지방 간의 신장도 좋지 않고, 무릎까지 나빠지며 다리가 아무리 펴도 완전히 휘어버린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청력마저 떨어지며 청신경 손상이 와서 잘 안 들리는 상황인데, 보청기를 사용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보청기 견본품을 껴보자 드디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만족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인 그는 해당 방송에서 ‘자신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죽다 살아났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동료들 중 가까운 사이였던 조경환이 별세했을 때 너무 놀라가지고, “올봄에도 같이 만나서 ‘네가 술이 세니, 내가 술이 세니’ 이러던 친구인데. 이렇게 갑자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날 줄 몰랐다”라고도 말했었는데요.

연기를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질문에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다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앞으로 더는 건강을 잃지 말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건강하게 활동해 주기를 바라며 사람 냄새나는 배우 주현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