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애잔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배우 윤문식의 안타까운 아내 소식에 국민 모두가 다같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윤문식은 우리나라 마당놀이의 1등 공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당극에 출연한 김성녀 배우와 함께 찰진 대사에 기막힌 호흡으로 무대를 휘어잡았습니다.

오죽하면

관객들은 김성녀가 윤문식의 아내인 줄 알았는데요.

윤문식이 심봉사면 김성녀가 뺑덕어멈을, 윤문식이 방자면 김성녀가 향단이를 했으니 오해할 수밖에요.

게다가 윤문식은 악행을 일삼는 사람에게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말을 면전에 내뱉으며 막힌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유행어를 직접 만든 윤문식은 현대 마당놀이 창시자로 ‘배보다 광대’로 불리길 원했는데, 후배들에게는 인간문화재급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윤문식이 있기까지 뒷바라지해 온 두 여인의 사랑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윤문식 배우의 인생과 두 여인 그리고 이별에 관해 이야기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윤문식은 1943년생으로 올해 80세이며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입니다.

 

윤문식은

아버지가 서산읍 공무원으로 집에 가정부가 있을 정도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는데요.

하지만 윤문식의 아버지는 술과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었는데요.

원래 할아버지 대에는 서산 대천면의 땅 절반이 집안 소유였으나, 아버지는 윤문식이 9살 무렵 재산을 다 탕진하고 운명하셨습니다.

이후 급격히 기운 가세에 윤문식의 어머니가 나서서 일곱 형제를 먹여 살려야 했고, 혼자 힘으로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윤문식은 어릴 때 문둥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얼굴에 허옇게 부스럼이 생기고, 검버섯이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해 엉망인 꼬락서니에 영락없는 꼬마 장돌뱅이였습니다.

하지만 활발하고 개구쟁이였던 윤문식은 시장 바닥을 휘젓고 다녔는데요.

그러다가 동네에 온 악극단을 보고 윤문식은 혼을 빼앗길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혼자 악극 대사를 외우고 일인극도 하면서 그는 연기 연습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러다 농고 1학년에 학예회에서 연극 무대에 선 윤문식은 가출해 서울로 향하게 됩니다.

매형 집에 얹혀살면서 미군 심부름부터 이발소 면도사까지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새우잠을 자면서도 그가 돈을 벌었던 이유는 연기자가 되려는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964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합니다.

윤문식은 그곳에서 영혼의 단짝, 최주봉과 박인환을 만나게 되는데 세 사람은 1968년부터 10년간 극단 가교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세 사람은 형편이 좋지 못해 늘 꾀죄죄한 차림이었는데, 연극영화과 친구들은 멋쟁이었던지라 세 사람은 ‘못난이 삼형제’로 불렸습니다.

 

이후

윤문식은 1969년 연극 ‘미련한 팔자 대감’으로 데뷔하는데,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에 출연하면서 지금은 현대 마당놀이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배우로서 안방극장과 연극 무대, 영화를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해왔는데, 여든이 된 올해에도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 대학로로 향하는데 연극 연습을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평생을 연기에 올인하느라 젊은 시절 윤문식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배우에게 결혼과 행복은 사치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1976년 연극 선배에게서 한 여인을 소개받습니다.

윤문식은 떠돌이 연극쟁이를 이해해 줄 여자가 없을 거란 생각에 거절하려 했지만, 맘 편히 술 한잔 하자는 생각에 자주 가던 허름한 선술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습니다.

윤문식은 여자는 안중에도 없이 술을 시켰는데, 돈이 부족해 안주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자기가 살 테니 안주를 마음껏 시키라고 하는데요.

윤문식은 족발을 뜯으며, 술을 마시면서 살아온 과정을 거짓 없이 얘기했고, 상대는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말없이 들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그녀가 윤문식의 첫 번째 부인이 됩니다.

이후 윤문식은 90일간 매일같이 그녀를 만났는데 볼수록 참하고 다정한 모습에 푹 빠졌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장인어른이 될 분은 교장이셨는데, 예상했던 대로 그녀의 집 안에서는 윤문식의 직업 때문에 반대가 심했습니다.

‘광대랑 결혼할 바엔 죽어라’라는 아버지의 말에 펑펑 우는 모습으로 나타난 그녀를 본 윤문식은 장인어른의 승낙이 떨어지기도 전에 몰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알뜰했던 아내는 두 사람이 살 집을 마련했고, 결혼 후에 생활비도 벌었는데요.

 

하지만

배우에 한량이던 윤문식은 집에 돈을 한 푼도 가져다주지 않았고, 아내는 교직 생활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결혼 3년 만에야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윤문식은 1980년 국립극단에서 받은 월급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바칩니다.

첫 월급을 받은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는데, 그 모습에 윤문식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데요.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했는데, 어느 날 공연장으로 중학생 두 명이 찾아와 윤문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제야 사실을 안 윤문식은 알뜰살뜰 사는 아내가 사랑스러웠다는데요.

이런 아내의 내조 덕분인지 윤문식은 80년대 한국 마당놀이의 중흥기를 이끕니다.

당시 정월 초하루면 TV에서는 마당놀이 시리즈가 펼쳐졌는데, 윤문식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방자전이라는 공연물이 따로 올라갔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92년 아내가 당뇨를 앓기 시작했고, 15년을 투병하게 됩니다.

아내는 병이 악화하면서 온몸에서 농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기저귀를 100장 가까이 썼습니다.

간병인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상황이 되자 윤문식과 딸이 교대로 돌봤는데요.

아내와 산 세월 31년 중 15년을 병간호로 보냈는데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면 아내의 정신은 멀쩡했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정말 싫어했다고 하는데요.

윤문식은 더 자상하게 해줄 걸 하는 후회가 남아서인지 꿈에도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15년 동안 길고 긴 이별 연습을 했지만, 공연 때문에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데, 그 마음이 어떨지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허전했던

윤문식의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던 그녀는 가난한 배우의 아내가 되었고, 머리가 없던 남편 대신 남매를 키우며 교편까지 잡은 셈인데요.

월급을 건네준 지 3년 만에 얻은 큰 병은 자신이 고생시켜서가 아닐까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떠나간 아내를 향해 사모곡을 부르던 윤문식은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아파트 이웃으로 가끔 마주쳤는데, 항상 윤문식을 보며 인사했고 알고 보니 두 사람 다 혼자였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친해지던 어느 날 지금의 아내가 먼저 같이 살자고 말을 건네 왔는데요.

두 사람은 18살의 나이 차이였지만, 윤문식은 잘 챙겨주는 그녀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아내는 열여덟 살 연상의 윤문식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그의 박학다식함에 반해서였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배우 윤문식이 부인을 보내고 나서 자주 술에 취해 있는 모습에 귀한 문화재가 부식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재를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프러포즈까지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쉽지는 않았는데, 장인은 윤문식보다 12살, 장모는 4살 연상이라 아내 집안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장모님이 29년간 마당놀이를 살려온 윤문식을 좋게 보고, 힘을 써주셔서 완강했던 장인어른도 승낙합니다.

한편 딸의 반대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만에 아버지가 어린 여자와 결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윤문식은 결혼을 강행했고, 2009년 67살의 나이에 49살의 아내를 맞습니다.

이후 행복만 있을 줄 알았던 윤문식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담배를 많이 피던 윤문식은 어느 날부터 추워지면 기침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왔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아내와 병원에 갔다가 폐암 3기라는 판정이 나왔는데, 윤문식은 3기라는 말에 놀라 항암 치료도 거부했습니다.

 

남편이

걱정되었던 아내는 다른 병원에 가보기를 권유했는데, 거기서는 다행히 폐암 초기 진단을 받았고 폐암 수술 후 현재는 완쾌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의 시련은 처음이 아니었는데요.

그리고 윤문식이 아프기 전에 아내가 먼저 투병 생활을 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2017년 윤문식이 폐암 선고를 받기 전에 아내는 뇌수막염으로 1년이나 투병 생활을 했고, 그 후로 갑상선암에 걸립니다.

당시 아내는 윤문식이 아프면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데, 반대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텨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갑상선암 수술이 잘 끝났고, 아내의 건강 또한 현재는 괜찮다고 합니다.

한편 아버지의 투병 과정에서 윤문식의 딸은 새어머니를 마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데요.

 

호칭으로는

‘엄마’라 부르지 않지만 윤문식의 생일에 찾아와 ‘우리 아버지 여든 넘게 살게 해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용돈을 드렸다고 합니다.

딸의 그런 모습에 부부가 감동했다는데요.

세상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전생에 어떤 덕을 쌓았는지, 좋은 아내를 둘이나 만난 윤문식.

오늘 들려드린 그의 인생과 사랑 이별 이야기는 어떠셨는지요.

무엇보다 마당놀이를 지켜줘 감사하고, 건강 관리 잘하셔서 계속 무대에서 좋은 모습 보이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