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천하의 이상용이 어쩌다가…” 그가 말하는 송해 선생의 전국노래자랑 후임이 될 수 없던 “충격적인 사연” 을 알아보세요…

‘뽀빠이’ 별명으로 유명한 방송인 이상용(79)이 심장병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루머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4일 교양 ‘스타다큐 마이웨이’에는 이상용이 출연해 일상을 공개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심장병 환아들을 돕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전했습니다. 이상용은 “하루는 내가 사회를 보는데 한 부모가 심장병으로 아픈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며 “수술비가 없어서 수술을 못 하고 있다더라”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당시 MC 출연료가 1만4000원이었는데 수술비가 1800만원 수준이었다”며 “그때 내가 600만원 전세 살고 있었는데 일단 (내 돈으로) 아이 수술부터 시켰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상용

은 “수술비 마련을 위해 3개월 정도 무대에 올랐다”며 “이후에 소문이 났는지 내 집 앞에 심장병 가진 아이와 그 부모가 몰려왔습니다. 그렇게 가진 돈 하나 없이 (지원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용은 ROTC 후배인 김홍신 작가와 만나 억울하게 ‘후원금 횡령 루머’에 시달렸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김 작가는 “(이상용이)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사연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심장병 어린이들을 수술시켜 주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는데…갑자기 모함에 시달렸다”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상용은 “평생을 바쳐 600명의 심장병 어린이를 수술해 줘서 (다들) 잘살고 있었다”며 “근데 하나도 수술하지 않았고 사실 후원금을 내가 횡령했다고 하니까 당시 국민이 엄청난 지탄을 보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그는 “방송 일도 다 끊기기 시작해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혼자 떠나야 했다”며 “미국에서 하루 13시간씩 관광버스 가이드 일을 하며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용은 “이후 후원금 횡령 루머가 전부 무혐의로 판결이 났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방송 복귀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당시 무죄 선고가 나왔는데 신문에 안 내주더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방송인 이상용이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떠올렸습니다.

이상용은 MBC ‘우정의 무대’에서 독보적 패기와 입담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MC. 어느덧 팔순이 된 이상용은 이날 절뚝거리며 카메라 앞에 등장해 걱정을 샀습니다.

 

 

이상용은 “몇 달 전 층계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나이 먹으니까 뼈가 잘 안 붙고 회복이 잘 안 된습니다. 살도 싹 빠졌다”며 “하체 운동을 해도 다리에 살이 안 붙는습니다. 그래서 절뚝절뚝 걷는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상용은 “시청자 여러분들 걱정 마라. 안 아프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이날

이상용은 최전성기였던 ‘우정의 무대’ 진행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여관에서 3일 합숙하고 만든 프로그램이 ‘우정의 무대’습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상용은 ‘전국노래자랑’ 2대 MC이기도 하습니다. 그는 “제가 1년간 재밌게 진행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하다 그만두고 ‘우정의 무대’로 갔다”며 “그 이후부터 고(故) 송해 선생님이 진행을 하셨다”고 밝혔습니다.

이상용과 트로트 가수 유지나의 인연도 공개됐습니다. 이날 유지나는 “제가 힘들 때 자꾸 엎어지니까 오빠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뭘 살려줘’라고 하길래 ‘제가 먹고 살 길이 없다’ ‘저 행사 좀 달라’고 요청했다”며 “오빠 덕분에 그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돈 맛을 보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이상용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눠야 한다며 심장병으로 아픈 아이들을 후원해온 것으로도 유명하습니다. 환우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대를 뛰는가 하면, 어린이 보호회를 설립하는 등 언제나 앞장서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상용은 지난 1996년 심장병 후원금 횡령 루머로 인해 발목을 잡히며 큰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만큼 억울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다 바쳐 600명을 수술해줬는데 한 명도 수술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전국민이 다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늘은 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이상용은 MC 자리도 내려놓은 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관광버스 가이드를 했다”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