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살 이젠 너무나도 늙어버린 이상용… ‘그가 매일 아침마다 천 원짜리를 챙겨 나가는 충격적인 이유..’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 없다며..

‘사필귀정’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는 이 말이 맞는 경우를 찾기 힘듭니다.

일례로, 대대로 부정한 방법을 써서 재산을 취득한 일가가 아직까지도 부유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경우도 많고, 또 반대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뼈저리게 가난한 삶을 사는 사례도 흔히 찾아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영원한 ‘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씨입니다.

 

한때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금을 받고 전액을 자신의 부를 쌓는 데 썼다는 의혹을 받은 이상용.

그가 전한 마지막 소식은 매우 슬프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과연 이상용은 횡령 루머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리고 그를 모함한 자의 충격적인 정체는 무엇일까?

더욱이 모두가 ‘전국노래자랑’ 송해의 후계자로 이상용을 지목했지만, 그가 지휘봉을 잡지 못한 안타까운 이유를 살펴보자.

많은 누리꾼들은 “이상용이 왜 MC를 맡지 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생각해보면 이미 송해와 평생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그가 왜 차기 MC로 선택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이미 MBC ‘우정씬’에서 뛰어난 진행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우정의 장면’은 ‘그 뒤에는 역시 엄마’, ‘고향을 향해!’ 다양한 유행어를 남긴 레전드 프로그램이다.

이상용은 당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방송을 진행했다.

덕분에 90년대 말까지 거의 국민MC 수준으로 사랑받은 진행자였다.

그러나 단순한 환대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애정을 독점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4500만 원짜리 집에 살면서 30년 된 폐차를 운전하면서도 슬픈 사연으로 학생의 유료 수술을 기꺼이 지원했다는 일화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상용 선생은 직접 한국아동보호협회를 창립해 16년 동안 567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안겨주고,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수술비를 마련하는 등 위대한 업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대중들.

‘전국노래자랑’ 진행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자연스럽게 고 송해 씨의 후임으로 이상용 씨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결국 고 송해 씨의 후임자가 되지 못했죠.

그렇다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유력 후임자였던 이상용 씨는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의 바통을 이어받지 못한 걸까요?

이상용 씨가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잘나가던 ‘우정의 무대’에서 왜 하차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우정의 무대’.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갑작스럽게 불거진 이상용 씨의 횡령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KBS ‘추적 60분’에서는 이상용 씨가 책 출판 등을 통해 40억 원을 모금한 뒤 그중 단 2000여만 원 가량만 치료금으로 기부하고 나머지 금액은 전부 본인의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내용의 방송을 별다른 확인 절차도 없이 송출하기까지 했는데요.

 

 

이로 인해 이상용 씨는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고 ‘우정의 무대’ 또한 진행자가 교체되었다가 곧 폐지되는 안타까운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상용 씨는 재산을 부정하게 취득하기는커녕, 오히려 버는 족족 어린이들의 수술비에 보태느라 통장 잔액이 40만 원에 불과했다고 하죠.

오죽했으면 그를 수사하던 담당 형사들조차도 “형님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라며 그를 안타깝게 여겼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의혹 자체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루머였던 까닭에 이상용 씨는 첫 보도 이후 3개월가량이 지난 1997년 2월 곧바로 ‘혐의점 없음으로 인한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미 상황은 그의 명예가 나라 끝까지 떨어진 뒤였죠.

그의 방송 생명이 끝나버린 것은 물론 이상용 씨의 부친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접 전단지를 돌리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말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이상용 씨가 과거 횡령을 저질렀다는 잘못된 소식을 믿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상황인데요.

결국 연예계 복귀가 어려워진 이상용 씨는 미국에 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진행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당시 어찌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이상용 씨는 일시적인 실명 증세를 겪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마음의 병으로 인해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한순간에

국민 영웅에서 천하의 나쁜 놈이 되어버린 이상용 씨.

그렇다면 대체 누가 또 어떤 이유로 그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요?

알고 보니 당시 그를 공격했던 이는 청와대 관계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상용 씨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1996년 당시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대전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상용 씨가 그 제안을 거절하자 해당 인물이 자신의 권력을 악용하여 저질스러운 루머를 퍼뜨렸던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상용 씨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던 이들은 루머의 출발점이었던 청와대 관계자도 확인조차 되지 않은 사실을 뻔뻔하게 보도한 언론인도 아니었는데요.

그러나 정작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그때의 어린이들은 그 누구 하나 이상용 씨를 위해 나서거나 먼저 연락을 취하지도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용 씨 스스로는 “아마 그 아이들도 어른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나니 과거 자신이 가난해서 수술비까지도 지원을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진 모양이다”라며 그들을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어쩜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렇게까지 모른 체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토록 힘겨웠던 세월을 딛고 일어나 이제는 다시 방송계에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이상용 씨.

 

그렇다면

최근 그의 근황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제라도 방송을 통해 돈을 벌며 여유롭게 살고 있기를 바라게 되는데요.

일평생 아픈 어린이를 돕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다는 이상용 씨.

여기에 고된 미국 생활과 한국에 돌아와서까지 남의 논과 밭일을 대신해 주며 보냈던 세월이 겹쳐 현재 그는 건강이 매우 악화된 상태라고 합니다.

전립선 질환과 다리 골절 등 여러 증상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워낙 당뇨가 심한 탓에 제대로 된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80세까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는 사실이다.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을 돕기 위해 매일 나갈 때마다 10만원 상당의 1000원을 챙긴다고 한다.

송해와 워낙 친했던 그가 ‘전국노래자랑’의 지휘봉을 이어받았다면 어떨지 이제부터 상상이 간다.

불미스러운 루머로 인해 ‘우정의 무대’에서 하차하지 않았다면, 송해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이상용 전 출연진과 휴식을 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상용 입장에서는 나이와 건강, 후배 김신영에 대한 마음 때문에 ‘전국노래자랑’ 개최가 어렵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

늘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선행을 실천하는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건강하게 회복하셔서 오래오래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