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영화 <장군의 아들>을 기억하시는분들이 많다. 영화의 성공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배우가 있으니 바로 배우 박상민입니다.
그는
당시 고작 20세였던 김두한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정말 잘 소화했다.
‘잠들면 스타가 됐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고, 당시 청춘의 우상을 넘어 영웅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대부분의 배우들이 받기 힘든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이후에는 끝없는 쇠퇴에 빠졌습니다.

게다가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된 엘리트 집안 출신이었지만, 박상민만 유일하게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선배의 권유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고 했고, 45일 동안 벼락치기 공부 끝에 간신히 합격해 서울예대에 입학했습니다. .
스무살이 되자마자 그에게 큰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역을 맡는 것이었다.
당시 임권택 감독은 신문에 “익숙한 얼굴이 아닌 새롭고 신선한 얼굴을 선택해야 한다”는 김두한 역의 배우 모집 광고를 냈고 약 800명이 관람했다. 위로.
오디션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무술을 수련한 사람들로, 보통 몸무게가 90kg이 넘는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은 엄격한 무인형이 아닌 완벽함이 가득한 아름다운 얼굴을 원했고, 김두한 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다.
이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술의전당에서 아는 교수님에게 혹시 그 분이 적임자인지 물었더니, 흥미롭게도 교수님께서 박상민 선배님을 추천해 주시고 오디션을 보도록 격려해 주셨어요.
그렇게
20살의 박상민은 교수의 추천을 받아 <장군의 아들>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과거 수영과 육상을 했던 경력으로 몸이 좋았던 그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윗옷을 벗고 근육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얼굴은 곱상한데 몸은 남자다운 배우를 마침내 찾았다’며 다들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다.하지만 의욕이 앞섰는지 본인이 무술 유단자라고 거짓말을 해버렸는데요.

결국 이후 무술 시범을 하는 도중 너무 어설프자 임감독은 거짓말인것을 알아채고 면박을 주었고 당시 박상민은 그 망신에 매우 민망함은 물론 속으로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음날 영화 제작자까지 나와서 2차 오디션을 본 그는 마침내 김두한 역에 캐스팅 되었고 이후 영화의 엄청난 성공과 함께 큰 인기를 얻으면서 청룡영화상 인기 스타상을 1990년, 1991년 2년 연속 수상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 시기에는 청소년들이 박상민을 영웅처럼 섬겼다고 할 정도니 그야말로 그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길거리에서 행인이 알아보고 말다툼을 하면 그냥 지나치는 것보다 더 자주 싸웠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장군의 아들>로 알려졌을 때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뒤 집에 가는 길에 폭군을 만난 적도 있다.
별다른 기복 없이 빠르게 인기를 얻은 탓인지 충무로에서 인기 배우 행세를 하다가 결국 프로듀서와 감독들에게 촬영을 많이 당하게 됐다.
1995년 안성기, 김혜수와 함께 주연을 맡은 이명세 감독의 영화 ‘남자는 괴로워’에 출연해 수억 원의 보수를 요구하며 치료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트장에서도 젊은 제작팀이 너무 아쉽네요.
문제를 일으킨 이명세 감독에게 혼나다가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는 이야기는 전설로 남아있다.
데뷔 초 큰 인기를 얻었던 그는 이후 배우로서의 기회를 활용하기 어려워 이전의 큰 인기는 금세 사라졌고, 결국 ‘장군의 아들’이 그의 유일한 대표작이 됐다.
한편
박상민 그는 3번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데 심지어 1997년에는 음주운전 후 사고를 내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2천만원, 목격자와 경찰에게는 각각 500만 원을 건네다 매니저와 피해자를 통해 밝혀지고 말았다.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워낙 자산가에다가 당시 부동산 쪽으로 돈을 많이 벌어 그는 연예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를 타는 연예인으로 유명했다.
그러다 2007년 노총각이었던 그는 지인의 파티에 갔다가 첫 번째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게 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혼의 사유로 성격 차이라고 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박상민의 손찌검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박상민의 주장으로는 ‘아내가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게 이혼의 직접적인 사유’라고 했는데 이 무렵 그는 한 방송에 나와 이혼에 이르게 된 사연에 대해서 직접 털어놓게 됩니다.
‘당시 800억대 자산가였던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그 돈을 다 탕진하면서 그 충격으로 어머니가 뇌졸중이 와 쓰러져 후유증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아내가 입원한 3개월 동안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결국 이에 대한 분노로 다툼이 발생해 이혼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때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5년간의 이혼 소송이 마무리되니 정신과 내 몸도 많이 상했더라. 하지만 이제 와서 누구 탓을 하겠나 싶어 그때부터는 나한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시 의사가 나에게 한다는 말이 ‘이대로 계속 악화되면 박상민 씨는 딱 두가지 성향이 나타날 텐데 스스로 목숨을 잃거나 남의 목숨을 빼앗을 성향이다’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후
2019년에는 한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1년 반 교제 끝에 재혼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마음의 상처가 깊어 오랜 시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지냈는데 지금의 아내의 진실된 모습에 마음을 열고 다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상민 그가 고백하길 “지금의 아내와 한참 애정을 키워가며 결혼을 준비하던 중 2018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림프종이라는 청천병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비록 재검에서 오진임이 밝혀졌지만 난데없는 백혈병 진단 소동은 당시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긴과 동시에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그때는 오만 생각이 다 났으며 지금의 아내를 그대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도 고민했었다. “
“내가 좋아하는 한 외국 배우가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고 말하며 은퇴했는데 매번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배우의 DNA가 아니겠나. 그래서 나도 언제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연기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됐더라”라고 했다.
인생이 한편의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배우 박상민, <장군의 아들>시절 모두를 설레이게 만들었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많은 팬들은 기억하고 있다. 더이상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그의 앞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