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얼마나 외롭게 살아온걸까.. ” 항암치료 거부한 윤석화 최근 들려온 눈물겨운 소식” 기적은 언제쯤 찾아오나

연극배우 윤석화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윤석화는 현재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고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죽음을 대면한 상황에서 ‘나답게 살다 나답게 가겠다’라고 충격 선언을 한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한편

윤석화 씨는 지난해 8월 박정자, 손숙 씨와 함께 연극 공연을 마친 뒤 영국 출장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투병을 시작했다.

이때 윤석화가 갑자기 쓰러졌지만 실제로는 흔적이 없었다.

 

 

특히, 넘어지기 전부터 왼쪽 팔이 약해져 힘을 쓰지 못한다고 했고, 당시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쑥 치료를 받기로 했고, 쑥 치료를 받는 중에도 주위 사람들이 그녀는 병원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윤석화 씨의 바쁜 일정으로 인해 병원 진료가 계속 미뤄지면서 진료가 늦어졌고, 그 결과 한국이 아닌 머나먼 영국에서 최후의 일격을 받게 됐다.

 

이렇게

암이라는 병은 항상 무섭게 허를 찌르는데 당시 남편과 후배가 현지 병원의 의견을 듣고 빠르게 그녀를 위해 대처를 하게 됩니다.

이들은 먼저 에어 앰뷸런스를 수배해 런던에서 서울로 급송을 했고,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윤석화를 연세 세브란스병원으로 긴급 이송시켰다고 하는데요.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고 뇌에서 적잖은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자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집도했지만, 그럼에도 수술 시간은 20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이토록 긴박하게 모든 것이 진행된 것을 보면 당시 윤석화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그 수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요.

 

정신을

잃었던 윤석화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한참이 지나 의식을 회복한 후에야 이 모든 과정을 알게 됐고, 죽음을 대면할 시점임을 깨달은 순간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을지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중요한 순간 앞에 담대한 결단은 윤석화의 전매 특허인데 당시 그녀는 의사를 설득하며 “나를 내보내주세요. 이렇게 병원에서 삶을 연명하는 것은 나답지 않아요. 3개월을 살든 6개월을 살든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를 살아도 괜찮으니 윤석화답게 살다 윤석화답게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연극배우 윤석화가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거 아니에요. 당신이 내 팬이었다니 도와주리라 믿어요”라며 주치의에게 죽어도 상관없으니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충격 선언을 하게 됩니다.

주치의인 강석구 박사는 젊은 시절 윤석화의 연극 ‘아가씨와 건달들’을 8번이나 봤다고 하는데, 그토록 찐팬이라 할 수 있으니 윤석화는 얘기가 통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리고 정말로 부탁이 통해 전격적으로 퇴원을 하게 되는데요.

퇴원 후 집으로 이동해 서울 삼청동 한옥으로 귀가하던 날 윤석화는 강 박사에게 엄지척을 하며 “고맙습니다. 윤석화 팬 자격이 있네요”라고 메시지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치료를 거부한 그녀는 이때부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되는데요.

본인은 감소한 바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과 간병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의식불명일 때는 물론 병원에 다닐 때도 혼자 걷지 못해 앞에서 계단으로 가는 등 상황은 점점 나빠져갔고, 또한 병문안을 왔던 지인들은 그녀의 상태를 본 뒤 어두운 낯빛으로 돌아서곤 했다는데요.

연극계 후배, 교회 신자, 문화계 예술인, 정치인들까지 그녀의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문안을 왔고, 그 지인들은 윤석화에게 다시 항암치료를 받자며 권유했지만, 윤석화는 끝내 유혹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운영하던 공연 예술잡지 객석의 바통을 이어받은 영옥 대표는 ‘움직이지 못해 침대에 누워있는 와중에도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라고 말해, 윤석화는 죽음이 찾아와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와중에도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받기 위해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그렇게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을 보노라면 아무리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겠다는 윤석화라도 그녀 역시 가족과의 이별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참고로 그녀의 아이들은 막내만 빼고 학업 문제 때문에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지금은 윤석화에게 와 있는 상태고, 그런 아이들에 대해 윤석화는 말하길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을 꼽으라면 우리 아이들을 키운 거예요. 참으로 기뻤고 좋은 엄마가 되도록 아이들이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 공항으로 마중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라고 말했는데요.

많은 암 환자가 그렇듯, 그녀도 여러 민간요법을 알아보고 시도를 해봤지만, 극적 반응이 오거나 위안을 주는 것은 없었고 그렇다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항암제에 의존하자니 항암제는 식욕을 떨어뜨렸고 밥을 못 먹으니 기력이 더 약해져 갔습니다.

윤석화는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냈고 그러다 쓰러져 잠든 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기 힘든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는데요.

결국 병원에서 처방해 준 항암제는 먹을 때와 안 먹을 때를 한두 달 정도만 비교한 뒤 버리기로 했고, 이때부터 그녀는 세 가지를 꼭 실천하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그 세 가지는 독일산 PM 주스를 마시는 것과 쑥 뜸을 받는 것 그리고 기도였습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거부한 윤석화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고,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마침내 기적적으로 몸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그녀는

다시 움직이고 걸을 수 있고 회복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퇴원한 지 두 달 만에 병원에 가서 종합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모든 것이 좋아졌다. 정말 기쁘고 감사하고 행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안해요. 병원에서는 이런 상태에서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윤석화는 자신이 이렇게 잘 살아남은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특히 PM 주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PM 주스를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마셨습니다. PM 주스는 몸에 유익한 야채와 과일을 칵테일로 만든 가공 음료입니다. 주로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섭취하지만 암환자인 윤석화씨가 마시기 좋은 음료였는데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나타난 뇌종양은 윤석화에게 죽음을 안겨주었고 어느 ​​순간 깨어나 떠나버렸다. 걱정하는 친구들의 진심인지, 민간요법의 효과인지, 의지가 뇌에 스며든 것인지는 오직 신만이 알지만 어쨌든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돌아온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일어나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윤석화는 이미 이전에도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과거 어느 날 밤 밤 10시쯤 공연 연습과 TV 녹화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 6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당시 윤석화는 연극 ‘마스터클래스’ 공연을 일주일 앞둔 상황이었으나, 공연을 강요하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윤석화는 강한 공연 의지를 보여 결국 공연을 취소했다. 결정보다는 행동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건강이 안정되자 사고 발생 21일 만에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섰다.

당시 자선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6000만원을 기부한 그녀는 이 행보를 이어가면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공연에 임했다.

그녀는 당시 인터뷰에서 “작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21일 만에 무대에 섰습니다. 회복하는데 최소 한 달은 걸린다고 해서 21일 만에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분명 노력도 많이 했지만, 이 공연을 꼭 해야겠다는 믿음이 생긴 것도 저에게 멋진 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고통을 안겨준 것은 관객과의 약속과 작품이 주는 엄청난 힘이었다. 그는 그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윤석화는 당시 갈비뼈 골절로 무대에 설 수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휠체어를 타고 공연을 펼쳤고, 부상을 당한 영광이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즉, 윤석화는 큰 상처를 입고 일생에 큰 시련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련을 자신에게 더 큰 정신적 위안을 주는 기회로 삼아 결국 결심을 이룬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씩씩하게 살아오던 그녀는 자신의 신념과 결단에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써 암이라는 무서운 병도 점차 치료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정신적 고통이든 육체적 질병이든 마찬가지다. 모두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질병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나는 이것을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녀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4개월밖에 살 수 없었지만 그녀는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장수한 후 노안으로 사망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을 때 나는 ‘눈만 빼면 건강하다’고 답했다. 아프니까 잠시 쉬라고 했을 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어요. 일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채소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

그녀는 그 외에는 건강하며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회복 후 윤석화의 목표는 하루에 한 번 누군가를 만나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다.

우선, 극장에서 이 작품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박정자와 손숙, 그리고 뮤직디바 최정원, 전수경.

 

그녀들은

윤석화에게 나이를 떠나 찐친들이고 자랑스러운 배우들이며 윤석화는 선배 손숙 무릎 위에 머리를 이며 ‘언니들 제발 아프지 마 아픈 건 나 하나로 족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데요.

자신이 ‘안 말고는 건강하다’라고 말하는 윤석화.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9개월 윤석화다운 것을 말하며 항암치료를 거부한 배우 윤석화는 그렇게 씩씩했고 역시 명불허전 명배우다웠는데요.

조금씩 회복을 하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 병을 완벽히 떨쳐내 다시 예전의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없이 그렇게 씩씩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배우 윤석화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