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들어선 백일섭은 푸근하면서도 속 깊고 가슴 따뜻한 다정한 아버지 남편 역을 주로 맡아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특히
대사를 구사할 때 나오는 특유의 여유로우면서도 정감 있는 대사처리와 목소리는 배우 백일섭 연기의 가장 큰 장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백일섭은 73세 졸혼을 선언하고 당시 가방 하나만 들고 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처음 집을 나와 홀로 살기 시작했을 때는 환청이 들렸고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1970년대 ‘우루사’ 광고를 9년 동안 했을 정도로 대표적인 육식 마초남 스타였던 백일섭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일섭은 명지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KBS 5기 공채 탤런트가 됐지만 결혼을 늦게 했습니다.
장가를 늦게 간 이유는 총각 시절 인기가 많아서 두루두루 많은 여자를 만나고 다녔기 때문인데요.
22살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고, 당시 주요 활동 무대였던 명동에서 빗자루로 유명했다고 한다.
‘명동 빗자루’ 활동 당시 여성들에게 “소주 한잔 하자”고만 하면 됐고, 두 번째, 세 번째 술을 자주 마시다 보니 여자들과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
그러다 35세에 중앙대학교를 갓 졸업한 아내 채미영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처가에서는 그의 결혼을 몹시 반대했다. 총각 시절 누구와도 차를 마실 때마다 험담의 대상이 되었고, 열애설이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 시절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더 이상 여성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결혼 후에는 아들과 딸을 두었습니다.
백일섭 씨는 평소 집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아내를 위한 행사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아내도 별로 서운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백일섭은 “아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결혼도 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그는 내 일과 가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와 함께 있고 직업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백일섭의 인품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전성기 MBC 남자주인공을 맡았던 백일섭은 연예인병에 걸려 캐스팅에서 제외된 뒤 해고돼 20년 동안 행방불명됐다.
백일섭이 MBC에서 퇴출당하게 된 결정적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사무실에서 술 한 잔을 마신 뒤 촬영장에 찾아온 그와 친분을 쌓은 이영원 PD는 모두에게 “이제부터 정신 차리지 그래?”라고 말했다. 녹화가 다음 날로 예정돼 있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났고, 대본을 던진 뒤엔 하지 않겠다며 자리를 떴다.
요즘에도 연예인병에는 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전에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영원 PD가 공개적으로 꾸짖자 수사팀장을 거부하고 폭군이 돼 자존심이 상했다.
백일섭은 이 일로 이영원 PD와의 관계가 깨졌다며 인생에서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당시 자신이 너무 자존심이 강해서 화를 참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후 백일섭이 MBC에서 일을 못하게 되자 회사가 부도나면서 9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백일섭은 오늘날처럼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이 허용되지 않던 시기에 영화제작사를 차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했다.
홍콩
작품으로 소개되었던 애니메이션이 사실은 일본 작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백일섭 회사는 그만 영화사 등록을 취소당하고 말았죠.
게다가 한때는 사업을 엄청 큰 규모로 했다가 시원하게 날려 먹었고 그 밖에도 식당 사업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결국 사기꾼들에게 휘발 휘말려 합계 9억 원에 빚을 지게 되는데요.
최근 방송에서 이계인은 “보도를 보니까 백일섭이 사업 실패로 돈을 날렸다고 하더라”라며 “당시 돈으로 9억 원에 달하는 빚을 얻었다고 했다. 백일섭과 일본에서 영화 촬영을 같이 갔는데 돈이 없어 아이쇼핑하는 모습을 보고 대스타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이후 일본에서 영화 찍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백일섭이 ‘아들과 딸’에 출연한다더니, 그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돈도 다 갚고 다시 성공하셨다고 해서 기뻤다”라고 부연했죠.
실제로 20년간 MBC에서 퇴출됐던 백일섭은 ‘아들과 딸’에서 섭외 요청을 받았고, 당시 이영헌 피디가 MBC 제작국장이 된 상황이라 고민이 많았지만 과거사를 모르던 담당 피디의 긴 설득 끝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백일섭은 ‘아들과 딸’이 대박 났고 이영원 피디를 찾아가 20년 만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며 ‘서로 프로그램이 잘 됐으니까 잊어버리자’라고 해서 갈등을 풀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1992년 내년 10월부터 1993년 5월까지 MBC에서 방영된 작품인데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뿌리내린 집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를 담아 사랑받으면서 최고 시청률 61%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았던 백일섭은 아들과 딸의 성공으로 부채 9억 원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아들과 딸’이 최고 시청률 61%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까지 보내게 됐다고 떠올렸습니다.
그 후 백일섭은 정치권에도 기웃거리게 되는데요.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대중을 지지했고 2007년에는 이명박을 지지했죠.
백일섭은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로 임명이 되고,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데 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탤런트 백일섭은 2010년 11월에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로 취임한 이후 2000 1012년 3월 현재까지 회의에 단 한 건도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월 보수액과 회의비 등으로 총 7746만 원을 받았다”라고 밝혔죠.
그러자 백일섭은 “한 달에 100만 원을 받는다. 그리고 1년 조금 넘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받았을 리가 없다”라고 말하죠.
백일섭이 본격적으로 아내와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 계기는 바로 전원주택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이계인의 전원주택을 부러워하며 똑같이 지었는데 애 엄마가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백일섭은 사람 불러 모으길 좋아해서 지은 건데 아내는 달랐다면서 두세 번 사람들을 불러 모임을 가지자 아내가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고 하는데요.
서로 맞지 않은 채 오래 살다 보니 골이 더 깊어진 것 같다며 집에 가면 소리만 꾀끽 질러댔고 후 집을 나와서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았다고 하죠.
또한
처음 집을 떠나 두 달쯤 혼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는 환청을 느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생각까지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하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 3개월 동안 아내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귀국했으나 아내와 사이가 멀어진 백일섭이 드디어 결혼을 했다고 한다.
2017년 아내와 별거했고, 이 과정에서 아내와 중개자 역할을 하던 딸과의 관계도 무너져 더 이상 연락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백일섭이 출연한 ‘살림남’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 중 유일하게 연락하는 가족은 아들과 아내뿐인데, 그 자신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부담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살림남 시즌2 제작발표회에서는 ‘완성 후 결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마세요. 조.
그리고 과체중 탓인지 허리와 무릎이 많이 아파서 지팡이를 짚어야 했고, 그리스 에피소드 ‘꽃보다 할배’에서는 메테오라 수도원에 혼자 갈 수가 없었다. 다른 출연진들은 모두 건강상의 문제로 갔다.
헬라어판 당시 코디네이터를 하다가 나중에 가이드가 된 분에 따르면 허리뿐 아니라 무릎과 심장도 아프다고 하더군요.
백일섭
씨는 팔순이 다 된 나이에 편안한 노후는커녕 가족들과 멀어지며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가 이제는 더 이상 또 다른 아픔은 겪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너무나 슬픈 한평생을 살아온 배우 백일섭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