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건군 75주년이자 한미 동맹과 정전협정 70주년인 뜻깊은 해입니다.
한미 연합회 주최로 미국 뉴저지에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6.25 참전용사를 하나의 손녀인 푸른 눈의 가수 마리아가 ‘전선 야곡’과 녹슬은 기차길’, ‘한 많은 대동강’ 등 전쟁가요 메들리를 선보였고, 흰 한복을 입고 등장한 소리꾼 장사익 씨의 무대가 이어지자 감동이 배가 되었는데요.
한편
한국에서는 중국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트로트 팬덤 문화가 형성되어 전 연령층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마리아가 부른 트로트가 소개된 이후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매우 인상적”입니다. 더 자세히 알아보세요.
미국에서 태어나 정착한 한인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더욱이 분단과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이라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혈맹으로 맺어진 한미동맹의 70년 역사는 분명 여러분 세대에게는 특별할 것입니다.
마리아가 ‘미스트롯2’에 출연하자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때
마리아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이 밝혀졌죠.
마리아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마릴린 먼로를 만난 적이 있다면서 할아버지 사진을 공개했는데, 이는 6.25 전쟁의 참전용사이신 마리아의 할아버지와 이때 마릴린 먼로가 위문 공연을 와 만난 것 알려졌는데요.
마리아의 부모님이 한국을 찾아 임진각을 방문했을 때, 마리아와 부모님은 한복을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을 뿐 아니라 마리아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죠.
마리아는 미국 코너티컷 출신으로 파란 눈을 가진 뉴요커이지만, 우리말 발음에 감정까지 실현해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리아를 보면,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가 있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는데요.
미국인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한국인의 느낌이 나고 그녀가 주현미의 노래를 그렇게 한국인의 필링을 가지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전생의 인연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할아버지가 6.25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였다는 사실은 그런 인연을 더욱 짙어지게 했는데요.
어릴 적 마리아는 화이자의 고문역으로 근무하고 있는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와 폴란드계 미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평소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라이브 뮤직쇼나 디너쇼를 자주 다녔던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음악에 빠졌고, 그리하여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합창단에서 코러스로 활동하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3년간 축구를 하기도 했었던 마리아는 강아지, 햄스터, 기니피그, 물고기 그리고 오리를 키웠던 경험으로 수의사를 꿈꾸는 아이였었죠.
다만, 학창 시절 중학교 때에는 왕따를 당하면서 우울증 공황장애를 앓는 등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는데요.
당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왜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었죠.
더불어, 또래 친구들은 모두 연애를 하는 반면에, 본인은 짝사랑을 하고 있었음에도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 등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그 대신 부모님과 함께 그리고 6살, 3살 터울의 오빠와 언니와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요.
그런 마리아가 학창 시절 15살 무렵 좋아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케이팝이었는데요.
원래는 마일리 사이러스, 아리아나 그란데를 좋아해 음악을 계속 들었는데, 어느 날 유튜브를 통해 그룹 ‘엑소’와 ‘레드벨벳’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케이팝을 보고 들은 뒤로 마리아는 케이팝에 빠지게 되었죠.
후 케이팝을 듣기 위해 한국어를 배워가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마리아는 어느 날 한인회에서 노래자랑 대회를 연다는 소식을 접했던 마리아의 아버지로부터 도전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17년 미국 뉴저지 주한인회 추석 큰 잔치 노래자랑에 참가를 하게 되는데요.
당시
마리아는 대회에서 ‘포미닛’의 ‘미처’를 선곡해 노래 춤을 선보여 1등을 차지함과 함께 동시에 1위 상품이었던 대한항공 왕복 한국행 비행기 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한국으로 가서 가수의 꿈을 펼치겠다는 목표를 잡게 되죠.
다만, 굳이 왜 먼 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위험하진 않을지, 걱정으로 인해 부모님은 처음엔 반대를 했었으나, 후에 딸 마리아의 도전에 용기를 주었고 결국 일등 상품으로 받은 비행기 표를 계기로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오게 된 마리아는 처음엔 자취방을 얻은 뒤 홍대에서 버스킹을 하였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대신 유튜브에 케이팝 커버 영상을 올리면서부터 조금씩 이목을 끌게 되었죠.
그러더니, 예능 ‘너의 목소리가 모여’에 참가자로 방송에 출연하면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유학소녀’, ‘히든싱어’에 출연하는 등 여러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나, 반짝 이슈가 되었을 뿐 계속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이리저리 했으나, 결과에 만족스럽지 않아 실망을 많이 했던 이때, 우연히 영화 ‘귀향’을 보게 됩니다.
그리곤 국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에 빠져 한국 전통음악을 찾던 중 가수 주현미의 노래를 듣고선 트로트 가수의 꿈을 꾸게 되죠.
그러던 중 연세대 한국어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시기에 ‘미스 트롯2’가 개최하면서 2020년에 마리아는 ‘미스 트롯2’의 대학부로 참가하게 되는데요.
당시 외국인으로서 최초로 준결승전에 입성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최종 12위에 머물면서 결승 진출엔 실패를 하게 됩니다.
당시 준결승에서 마리아는 ‘목포행 완행 열차’를 열창했고, 조영수 작곡가는 “예전에는 기교가 단순했다면, 지금은 각 소절에 알맞는 기교를 구사 한다”라고 극찬했고, 장윤정은 “마리아의 인생곡 목포행 완행 열차가 완성됐다. 그리고 엔딩을 너무 아름답게 처리해서 좋았다”라고 심사평을 전했습니다.
‘미스 트롯2’의 대학생부로 참가해 준결승까지 진출한 마리아는 이듬해 3월 일자로 ‘좋은날엔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후 ‘골 때리는 그녀들’, ‘가요 무대’, ‘내 딸 하자’, ‘대한 외국인’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벌입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마리아는 소속사와 신뢰 관계가 깨졌다며 내용 증명을 통해 전속 계약 해지를 통고하는데요.
케이팝의 매력에 빠져 미국을 떠나 한국까지 날아온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마리아가 소속사에 보낸 내용증명에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회사는 그녀의 개인 정보와 사생활을 전혀 존중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마리아는 소속사 관계자가 신원을 알 수 없는 20대 남성 3명에게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몰래 알려주고 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마리아는 소속사 대표가 현 매니저 A씨를 일방적으로 해고했다며 고소장을 냈다.
마리아는 현 매니저를 해고하고 그의 동의 없이 집 주소와 연락처를 다른 소속사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유출은 A씨를 해임하고 후임자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 소속사의 입장은 달랐다.
소속사는 A씨의 해고 이유에 대해 “전 매니저는 연애 관리 업계에 일한 적이 없는 마리아의 남자친구였다”고 밝혔다. 이어 “마리아의 요청에 따라 경영을 맡길 수밖에 없었지만, 매니저는 기본적인 경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역량 부족과 업무에 대한 부정직한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라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A씨가 아티스트의 연예활동 지원 방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Maria에 따르면 이것이 에이전시에 기인할 수 있는 이유의 끝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2021년 8월 소속사 대표가 편곡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마리아를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했고, 자신이 나를 수단으로만 봤다는 사실을 알고 배신감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소속사 사장이 개인적인 친분을 해치지 않은 채 더 낮은 행사비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과 함께 공연한 다른 가수들보다 훨씬 낮은 행사비를 받는 것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어린 마리아는 너무 충격을 받아 더 이상 누구에게도 한국을 추천하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한국에 와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한국에서 겪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줬다. 이었다. 나는 말할 수 있었다.
올해는 군 창건 75주년, 한미동맹 및 휴전협정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 만큼, 군은 국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참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한미 합동 연주회가 열렸고, 6·25 참전용사의 손녀인 푸른 눈의 가수 마리아가 ‘전선의 밤의 노래’ ‘녹슨 기차길’ 등 전쟁가요 메들리를 선보였습니다. “대동강.”
한미합동군악단 단원들이 흑백 6·25전쟁 영상을 배경으로 공연을 펼치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6·25 영웅들의 결연한 의지가 후렴에서 느껴지는 듯 묵직함을 더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이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날이었다.
한편
한미 군악대 반주로 천안 시립 합창단과 전통예술 무용단이 협의를 펼치며 감동해 무대를 연출합니다.
마리아는 한미가 모두 함께 노래 부르고 연주하며 자유와 평화 번영을 기원하는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는데요.
현재 방송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마리아는 트로트 앨범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무조건 정통 트로트를 하고 싶어서 다양한 작곡가에게서 곡을 받아서 준비하고 있어요’라며 ‘빠른 것보다도 완벽하게 앨범을 내놓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죠.
케이팝을 좋아하고 순두부찌개 등 한식도 입맛에 잘 맞는다며 한국이 좋다는 마리아는 미국에서의 가수 활동은 생각해 보지 않았고, 한국에서 활동이 잘 맞고 트로트 가수들이 하는 행사 무대도 너무 재미있어서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트로트를 더욱 알리고 싶고, 나중에는 영어로 트로트를 불러서 외국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전했는데요.
마리아의 열정과 노력에 경위를 표합니다.
뜻하는 바를 이루고 많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