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왜 굳이 시집을 가서..” 왕년의 스타배우 박상아 결국 이혼 결정하나.. 그녀가 많은 논란에도 두문불출하는 이유..

유독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최고 정치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도 임기 이후에도 그 영예를 지킨 경우가 극히 드문데요.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더 그런 편입니다.

지난해 11월 90세의 나이로 별세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소식으로 화제를 모은 인물이 있다. 그녀는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이자 며느리이다. 배우 박상아. 한때 국민배우로 큰 사랑을 받았고, 그 이후로 외부 사업을 한 적이 없어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오늘 이미 톱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녀는 돌연 연예계를 떠나 대한민국 최고 관료 아들의 세 번째 부인과 결혼하고 몰수를 요구하는 서구세력인 20억 원 노처녀에게 사기를 당한 뒤 돌연 연예계를 떠났습니다. 검찰도 할 수 없는 재산에 대해 “우리 같은 죄인은 사역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의 영광’을 자처한 배우 박상아의 알려지지 않은 삶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상아는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그리고 미국에서 여러 미인 대회를 출전하며 그때부터 꾸준히 연예 활동에 관심을 보였고, 이후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kbs의 슈퍼 탤런트 대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같은 해 시청률 60%대의 엄청난 인기를 얻은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 배용준 등과 함께 출연하면서 청춘스타로 사랑받기 시작했고, 그러나 이때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배용준과 그녀가 스캔들이 나면서 한창 청춘 스타로 잘 나가야 할 때의 스캔들로 인해서 인기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다시 인기를 회복하며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던 중, 그런데 2000년에는 너무나도 뜬금없이 대한민국 최고위층 자제 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전재용과 염문설이 나더니 돌연 모든 연예 활동을 중단하며, 연예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당시 전재용도 인터뷰에서 “2000년 선배가 이끄는 그룹에 다니면서 상아를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평범한 그룹 멤버로 만났지만, 이후 한 신문기사에 “우리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욱 가까워졌다”고 우리 관계에 대한 루머가 게재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용석 씨의 나중에 증언에 따르면, 2003년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한 전재용 씨가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배우 박상아와 결혼하고 싶지만 아내가 이혼한다”고 밝혔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하면서 법적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강용석은 전재용에게 “한국에서 결혼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 라스베거스 같은 곳에서 결혼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강용석이 말했듯이 나중에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결혼했다.

 

 

한편 강용석이

이러한 사실을 밝힌 이유로는 “이미 세월이 10년이나 지났고, 당시 전재용으로부터 수임료를 받지 않아 마음대로 상담 내용을 얘기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또한 전재용 씨가 자신에게 고소를 하더라도 그동안 고소만 했던 본인이 고소를 당하면 화제가 될 것이다”라며 여유 있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만나서 거의 4년 이상을 같이 살고 있는 상태였고, 그런데 2003년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그 비자금이 박상아와 박상아의 어머니 계좌로까지 흘러간 것과 관련해 말이 나오자 박상아와의 관계를 공식화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1995년 무렵부터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던 검찰은 번번이 비자금 추적을 실패하고 있었고, 그러다 2003년에 검찰이 또다시 비자금 추적을 하다 앞서 얘기한 대로 박상아와 어머니에게까지 흘러들어간 자금을 포착했으나 하지만 이때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로 고 전두환의 비자금 조사는 결국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위층 며느리로 살던 박상아는 한때 이혼 루머가 퍼지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니었고, 그러다 2011년에는 서울의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그녀가 목격되는데, 그 호텔은 한국에서도 상위 0.1% 사교 클럽으로 분류되는 최고급 수영장으로 개인 회원권 가격만 1억 3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그녀는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혐의로 벌금 15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하는데, 당시 재판부는 박상아가 지난 2011년 해당 외국인 학교가 문을 열기도 전에 소속 직원과 입학 상담을 받았고, 그래서 본인의 자녀들이 학교의 입학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부정 입학을 계획했다고 했습니다.

즉 박상아의 딸은 입학 자격이 없음에도 다른 외국인 학교에서 전학을 오는 것처럼 가장하는 소위 학적 세탁의 방법으로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부정 입학시켰다고 했습니다.

 

한편 2012년에는

범서방파는 남편의 재산을 몰수하는 대가로 갑자기 20억 원을 가져갔고, 이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이후 남편은 약 400억 원 상당의 땅을 건설업체에 팔았고, 매매대금 일부를 용인 땅에 대한 이자를 받는 데 썼다. 대신 받기로 했어요.

그러나 건설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부도가 났고, 전재용이 급하게 토지를 팔려고 하자 건설사는 돌연 범서파 식구들을 동원해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며 세력을 다잡았다. 그래서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전재용은 20억 원을 받았고, 거액의 돈이 건설사와 갱단에게 전달됐다.

당시 남편은 형이 집행된 뒤 처음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한 달쯤 뒤 원주교도소로 이송됐는데 당시 하루에 400만원을 받는 처우가 독특했다. 업무를 방해했기 때문에 3년이 채 안 되어 벌금 38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6천만 원을 전액 탕감하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한편 이때

전재용이 교도소에서 복역 중 갑자기 창살 밖에서 찬송과 소리가 들리면서, “그때부터 눈물이 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라며 훗날 기독교 방송을 통해 당시 상황을 고백했고, 이후 신학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고 열심히 공부해 결국 신학대학원의 합격 통지서까지 받으며 당시만 하더라도 살아계시던 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하자.

마지막으로 박상아 그녀가 고백하길 “남편이 출소하자마자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고 했을 때, 굉장히 싸우고 안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 같다. 그동안 예수님을 믿으며 새벽 기도도 다니고, 나름 십일조도 됐지만, 그 전까지는 ‘나한테 축복 좀 많이 주세요’ 라는 기도밖에 할 줄 몰랐다. 누가 봐도 죄인인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조차 숨기고 싶은 사실인데 남편이 신학 공부를 하며 사역까지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인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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