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의 절세 미녀 정윤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180도 변해버린 그녀의 현재 충격적인 모습..

여러분들은 혹시 여배우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고 묻는다면, 어떤 배우가 떠오르시나요.

단군 이래의

최고의 미녀라 불리며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미모로 시대를 풍미한 배우 정윤희는 올해 69살로 그녀가 연예계를 떠난 지 38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뇌리 안에 아직도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요.

솔직히 수 많은 보통의 여배우들은 어찌어찌하여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대중의 기억 저 멀리로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나 정윤희는 스스로 연예계에 발을 완전히 뺀 채로 보통 사람들과 같은 생활을 했음에도, 놀랍게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1954년 경남 통영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여고 시절부터 외모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참고로 정윤희와 유년기를 함께 보낸 아는 남자친구의 회고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때는

1970년대 초반 어느 빵집, 당시는 고교생들의 빵집 미팅이 유행하던 시절로 친구가 하루는 정윤희가 다니던 혜화여고 여학생들과의 당시 미팅 자리에 나가게 되었고, 남학생들은 자리에 먼저 나온 여학생들의 인물이 그닥 아니어서 연신 우유만 들이키고 있는데, 그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고 했습니다.

정윤희가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빵 가게에 있는 모든 손님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주인의 시선마저 일제히 그녀에게 쏠리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수십 년 전 보았던 너무나도 예쁜 단발머리 여고생 정윤희의 모습은 여태 이 땅에서 본 가장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와 같이 음대에 응시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친구만 붙고 그녀는 떨어지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이때 정윤희가 그 친구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고, 1년 후배가 되기 싫다며 갑자기 미술로 전공을 바꾸게 됩니다.

 

 

이후 경남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명동 일대에서 활동하며 서울 말씨를 익혔고, 또한 그곳에서 그녀는 ‘부산 미니스커트’라고 불리며 그 일대에서 또 한 번 외모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아무튼 미술을 지망했던 그녀였지만 당시 생활비가 부족했고, 또한 본인의 외모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유달리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된 이유로는 어느 날 갑자기 배우로 장래희망을 바꾸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오디션에 응시한 영화가 당시 최고 흥행 영화로 유명했던 ‘별들과 고향’이였고,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배우 경험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여주인공 심사에서 탈락하면서, 결국 그렇게 별다른 활약은 못 하고 무명 여배우로 남나 싶었으나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김지미

윤정희가 거쳐 갔던 것으로 유명한 ‘청춘극장’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에 원래 가장 촉망받던 신인 배우 강경희가 출연하기로 했으나, 그런데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동명 사건의 강경희가 연루되면서 결국 그 자리에 갑자기 정윤희가 대신 들어가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춘극장’ 출연 이후부터 그녀는 방송가에서 가장 예쁜 연예인으로 선정되는 등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심지어 이후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등에서도 그녀의 뛰어난 외모가 알려지더니 당시 외국 감독들의 구애까지 잇따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나이 30살 때 한 지인의 소개로 중앙건설 회장 조규영을 만나 사랑을 키웠으나, 조 회장은 이미 결혼한 유부남으로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였고, 그럼에도 만남을 이어가던 중 어느 날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급습한 조 회장의 전 부인에게 발각되면서 결국 두 사람은 1984년 8월 간통 혐의로 쇠고랑을 차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찰 조사에서 조 회장은 정윤희와의 관계 때문에 가정 불화가 생긴 것이 아니라, 사실 그전부터 이미 집 안에서는 이혼 얘기가 나오는 등 가정 문제가 복잡할 때로 복잡하던 중 정윤희를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인데, 그런데 그때 부인이 원하는 대로 위자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를 빌미로 자신을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줄곧 간통 사실을 부인한 이들은 유치장에 들어간 지 4일 만에 풀려나게 되는데, 그 이유로는 이때 조 회장이 전 부인에게 이혼 조건으로 결국 원하는 만큼의 거액의 위자료를 주면서 전 부인이 두 사람의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유치장에서 풀려난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본인의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게 되는데요.

“몸들 바를 모르겠다. 연기 생활 10년 만에 내가 공인이란 사실을 새삼 느꼈다. 무조건 죄송하다. 하지만 나는 조 회장을 많이 사랑하고 있으며, 뭔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그 사람의 무엇이 나를 끌어 잡아당기고 있고, 모든 것에 대해 나를 끌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당분간은 쉬고 싶다’라고 말한 후 4개월 뒤 조 회장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면서, 이후부터 그녀는 영화와 TV 출연은 물론 그녀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체의 인터뷰조차도 하지 않으며, 그야말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영화사와 방송 제작진들은 정윤희가 필요했는지 이후에도 수없이 그녀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애를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1993년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녀를 조 회장이 대주주로 있었던 가구 업체 모델로 아주 잠깐 브라운관에서 그녀를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그녀가 연예계에 복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으나, 이후 한 토크쇼에서 전화 인터뷰한 것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공개된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한편

정윤희는 조 회장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1남 1녀를 키우다 결혼 5년 만에 마침내 두 사람 사이에도 귀한 아들 조 군을 낳게 되었고, 조 군은 어려서부터 영재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을 만큼 잘생긴 외모와 영특한 머리로 부부의 큰 자랑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11월 하늘도 무심하지, 그녀의 자랑이었던 조 군이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갑자기 급성 폐렴 증세를 일으켜 한인타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2014년에는 또 한 번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게 됩니다.

당시 조 회장 소유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가 경매에 붙여졌다는 나쁜 근황이 전해지게 됩니다.

 

당시 조 회장의

건설회사는 점차 형편이 나빠지더니, 결국 2010년 기업 재무구조 개선 절차에 이어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말았고, 그래서 이후에는 국민은행의 빚과 이자 20억 원을 갚기 위해서 그녀가 살던 집이 경매에 부쳐질 수밖에 없었으며 또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큰 평형이라 희소가치가 높아 경쟁이 치열하리라 예측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년 넘게 거주해 왔던 아파트마저 남편의 회사 자금난으로 법정 관리에 들어가게 되자, 결국 이때 그녀가 미국 이민을 잠시 준비하기도 했으며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현재는 경기도 근처에서 조용히 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러분 곁을 떠난 지 벌써 27년이 흘렀습니다. 아직까지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있으신다는 말씀에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직접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께 행운이 가득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모두가 보고 싶어하는 배우 정윤희.

지금은 배우를 떠나 일반인으로 살고 있지만, 아픔 이겨내고 항상 행복하게 살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