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스타 배우 강석우 결국 들려온 눈물겨운 소식…” 한 순간에 그가 모든 방송에서 하차할 수 밖에 없었던 눈물겨운 이야기를 확인해보세요.

사람은 누구나 차곡차곡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오는 세월에 대해서는 사실 불호를 논할 일이 아니며, 피할 수 없으면 최대한 즐기든가 그게 안 되면 오는 대로 겪으며 견딜 일이죠.

어차피 미래란 불확실한 것, 온갖 변수들을 끄집어 불안해하며 발을 동동 굴려봤자 인생만 어수선해질 뿐, 물론 몇 가지의 대비들이 쓸데없다고 할 수 없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대비는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57년 6.25 때 월남해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하신 부모님 밑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강석우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단 한 번도 손찌검을 당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사람에 대한 배려가 특출났기 때문인데, 일례로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버스를 타고 가시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계단에 거꾸로 처박힌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이때 그렇게 다치시고도 병원에 도착한 아들 강석우에게 하셨던 말이 “제발, 버스회사에다 운전기사 고발하지 말라”라고 당부부터 하셨으며, 그 사람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 그러면 안 된다는 얘기였죠.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들 강석우가 목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말 특이한 경험을 했고, 그날부터 음악가의 꿈을 꾸게 됐다.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학교 앞을 지나가던 차가 경적을 울리자 선생님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아시는 분 계시나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솔”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오르간 뚜껑을 열고 솔비늘을 찾아보더니 어린 강석우에게 정확하게 맞췄다며 칭찬을 했고, 그래서 그날의 기억은 마침내 강석우에게 음악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음악가를 꿈꿨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장래에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영화 음악을 하려고 대학에 갔는데, 연기 오디션에서 뜻밖의 1등을 하게 되면서 자퇴하게 됐어요. 2학년 때 농담을 하고 그때부터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당신은 걸을 것입니다.

당시 그는 “사실 당시에는 연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정부기관에서 신인 남자배우를 모집하고 상금이 100만원이나 됐다. 그러자 친구들은 “내가 제일 잘해서 사진 촬영비도 내고 나오라고 했고, 1등하면 상금도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배우가 되고 싶어서 오디션도 안 가고, 제대로 된 연기 연습도 안 했는데 800대 1이라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어요. 대회에 합격해서 최종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러다가 극장 세트장에 갔는데 솔직히 누군가가 나를 끌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 늘 있었고, 연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이 불편한 옷을 어떻게 없애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그게 가능할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처럼 그는 방송사 공채 탤런트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딱 한 번 실시하고 사라진 정부 기관에서 뽑은 남자 배우가 되어, 당시 방송사 3사 특채는 물론이고 단역도 거치지 않고, 바로 영화에서 주연을 맡게 되는 엄청난 특혜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특혜가 이때까지만 해도 배우가 되는 길이 방송사 공채 탤런트가 유일한 길이었던 다른 배우들에게는 큰 불만이 되어, 당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따돌림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우리 때는 tv 연기자가 되는 길은 공채였다. 그리고 공채에 들어가면 기수가 있기 때문에 서로가 굉장히 끈끈하다. 하지만 나는 한국영화진흥공사에서 선발된 배우라서 kbs, mbc, sbs 모두 특제로 가서 일했기 때문에 동기 개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이는데 굉장히 잘 모인다. 그런데 나는 아무도 모을 사람이 없고, 후에 개인적으로 일을 하면서 친해진 선후배는 몇 명 있긴 하지만 또래 친구는 딱 한 명으로 송승환 밖에 없다”

이처럼 이때는 영화배우 출신과 tv 연기자 출신들이 서로를 배척하는 문화가 강했던 때였는데, 그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했고 또한 술도 잘 마시지 못해서 더욱 한 패에 끼지 못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그에게 ‘고개도 숙이지 않고 뻣뻣하게 군다. 혼자 고고한 척하지 말라’라며 손을 봐줘야겠다고 벼르던 선배들도 있었고, 심지어 면전에다 놓고 ‘건방진 놈, 재수 없는 놈’이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너희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라며 자존심, 교만, 오기 같은 곳으로 겨우 버텨야 했고, 그래서 결국 1985년 실제로 연기 활동을 쉬면서 다른 길을 고민하게 되는데, 하지만 막상 연기를 그만두려니까 할 게 없고, 나이도 많고 다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 고민을 하던 중 평생의 은인 최인호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그는 최인호 원작의 영화 ‘겨울 나그네’에 출연해 비록 본인이 원했던 길은 배우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연기가 아니면 길이 없겠다 싶어 정말 열심히 촬영을 했고,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헝클어진 머리를 만들려고 일주일간 일부러 머리를 안 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고로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본인의 성격이 워낙에 뻣뻣하고 자존심이 세서 ‘겨울 나그네’ 제작 당시 출연 배우 이름이 나오는 순서를 두고 다음과 같은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니 이름이 제일 먼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하지만 영화사 제작진들은 이미 스타 반열에 올랐던 안성기의 이름을 먼저 내세워야 했기 때문에, 당시 본인을 설득하는 데 많은 애를 먹어야 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결국 이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마침내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급부상했고, 그리고 이 무렵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지금의 아내입니다.

 

당시

두 사람은 친구의 생일파티 때 카페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사람은 강석우였다. 하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아내를 좋아하기보다는 유명인의 실제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년 간의 교제 끝에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

아무튼 이후에도 많은 드라마에 출연했고, 중년이 된 이후로는 ‘착한 아빠’, ‘무기력한 아빠’ 등 평범한 아빠의 역할을 많이 맡아, 대표적인 예인 연기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라디오였다는 거죠.

어쨌든 정치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라디오를 그만뒀을 때 권력자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 해임됐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러다가 2022년 1월 방송인에 출연했다. 다른 방송국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세 번째 예방 접종 후에는 읽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방송 도중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해 당시 모든 방송을 하차해야만 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3차 접종 이후 눈앞에 먼지나 벌레처럼 생긴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비문증이 한쪽 눈에서 발생했었다. 사실 너무 두려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이때 나는 실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혼자 눈을 감고 걸어보는 연습을 할 정도였는데, 뭔가 폭삭 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달 반 정도 그러다가 천만다행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처럼 내 시력이 회복된 걸 보면 일시적인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석우 그가 고백하길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조직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이 조직에서는 생각이 좀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조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있겠지만, 그런데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는 술 마시는 모임이라든가 자기들의 어떤 집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다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않고 얼마든지 독립적으로 정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살아가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큰 집에서 더 호사스럽게 살고 싶고 지금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자고 들면 진짜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물론 지금의 나의 모습도 누구는 호사스럽게 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나름 검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재단을 만들려고 한다”

“막연한 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추진 중이고 그리고 이 재단을 통해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려고 한다”

“그리고 딸과 아들에게도 약속을 받았다. ‘너희들 마음껏 쓸 만큼 돈을 벌어서 쓰고, 그다음에 남는 돈 아빠에게 주면 재단을 만들어서 그걸 세상에 돌리자. 그건 세상에 돌리는 게 맞는 거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고독한 배우 인생을 걸었던 그가 앞으로는 행복만을 꿈꾸며,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지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