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더 이상 하고싶지 않네요…” 맹구 이창훈 수술 이후 산속 생활 전전하다가 결국 그의 눈물겨운 최근 근황이 공개되었는데..

대한민국 80~90년대 개그계의 레전드 3인방이 존재합니다.

영구

심형래, 오재미 또는 오서방으로 알려진 오재희, 그리고 맹구 이창훈.

심형래와 오재희와는 달리,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냈던 맹구 이창훈에 관한 소식이 오늘 영상의 주제입니다.

한때는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영구 심형래의 인기까지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스타가 되었음에도 돌연 자취를 감추었기에 사람들의 그 궁금증은 더욱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검색창에 맹구 이창훈을 검색하면 ‘이창훈 사망’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함께 검색되기도 합니다.

 

맹구

이창훈에 관한 안타까운 근황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속 사정까지 같이 알아보시죠.

일단 우리가 잠깐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우선 이창훈과 관련된 놀라운 가계도입니다.

이창훈의 여동생은 배우 이미영으로 얼굴만 봐도 다 알아보는 유명인입니다.

이창훈의 여동생인 이미영의 전 남편 그러니까 이창훈에게는 매제였던 사람은 전영록이고, 여동생과 매제 사이에 첫 조카는 아이돌 가수 ‘티아라’의 멤버 전보람입니다.

둘째 조카는 아이돌 ‘디유닛’의 멤버입니다.

 

 

전 매제

집안 어른들 두 분 모두 원로 배우와 가수이고 여동생이 이혼을 했지만, 집안 가계도를 살펴보면 80세 장년층부터 20대 청년까지 모두가 알아보는 연예인이 이창훈 씨 혈육이라는 점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장수 개그 프로그램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개그 콘서트’에서 유일하게 리메이크 되었던 캐릭터가 바로 맹구입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개그계에서 원조 맹구 이창훈과 ‘봉숭아학당’이 끼쳤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개그 콘서트’ 폐지가 결정되던 마지막 방송까지도 ‘봉숭아 학당’으로 마무리가 되었었죠.

이런 전무후무한 캐릭터의 탄생은 시간을 거슬러 1991년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프로그램 안에 ‘봉숭아 학당’ 코너가 첫 선을 보이며 시작됩니다.

 

시청자들은

이전 코미디원들이 선보였던 바보 연기와는 전혀 다른 압도적인 바보 표정 연기와 허를 찌르는 철저한 바보식 대사의 브라운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 결과 삽시간에 어린 초등학생들은 양손으로 배트맨 가면을 흉내 내면서 학교에 가서 배트맨을 외치며 뛰어다니며, 맹구를 흉내 내기에 이르렀었습니다.

90년도에 학교를 다닌 분 치고, 맹구 흉내 안 내본 학생은 전국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학교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민원이 생길 정도였을까요.

여러분은 기억하시나요.

맹구 이창훈은 이렇게 빠르게 인기 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코미디언과는 다르게 원래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습니다.

 

1986년

서울 연극 연출가 그룹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연기력을 인정받던 배우 출신입니다.

개그계의 선배였던 최양락이 대학로에 놀러를 갔다가 우연히 이창훈의 연극을 관람했고, 그의 연기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 당시 ‘유머 1번지’와 ‘한바탕 웃음으로’ 등을 담당하고 있던 김웅래 pd에게 이창훈을 추천하기에 이릅니다.

김웅래 pd도 이창훈 몰래 그가 출연하는 연극을 찾아가 보고 나서 이창훈의 연기력에 감탄을 했고, 이후 종로 극장 앞 커피숍에서 매일 같이 이창훈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김웅래 피디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tv에 출연만 한다면 내가 꼭 너를 스타로 만들어줄게”, “너만 출연 승낙하면 너 말고 너 주변에 있는 다른 연극인들까지 전부 tv에 출연시켜서 꼭 뜨게 만들어 주겠다”

이런 조건까지 달아가며 이창훈을 설득했고, 끝끝내 이창훈에게 출연 허락을 받아냈다고 전해집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최양락은 크게 기뻐했고,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이창훈을 본인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코미디 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연극판의 연기와 코미디 연기 그것도 tv에서 하는 꽁트 연기는 다르다 보니 대사톤과 카메라 동선 이런 것들을 tv에 맞게끔 새롭게 가르친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연기라면 자타공인 고수인 성동일 배우도 연극과 tv 연기가 달라서 초반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했던 바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최양락은 이창훈에게 그것을 가르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다른 코미디언들은 짜여진 개그 꽁트를 할 때 이창훈은 본인의 장점인 연기를 더해서 보다 실감 나는 바보 연기를 했고, 시청자들은 이전에 본 적 없는 표정 연기와 바보 연기에 매료되어 삽시간에 맹구의 매력에 빠지며 ‘봉숭아 학당’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맹구의 엄청난 인기가 연예계 은퇴와 인간 이창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어버립니다.

은퇴를 하고 시간이 지나서 어느 언론의 인터뷰에서 이창훈은 짧은 속내를 살짝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맹구라는 캐릭터로 부와 명예를 다 가졌지만, 코미디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코미디를 멀리했다”

딱 두 줄짜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뒷부분에서

이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더 보강 설명하겠지만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강렬하게 맹구 이창훈을 기억하는 것에 반해, 그의 활동 기간은 굉장히 짧습니다.

배트맨을 유행시키고 “짜장보다는 짬뽕”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1992년 6월 10일 그는 무허가 술집 ‘뿌르보’를 차린 뒤 접대부 10명을 데리고, 불법 심야 영업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을 당합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석방되었고, 자숙 기간 동안 다시 연극계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미 대한민국은 맹구를 너무나 원하고 있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또다시 맹구로 활약하며 1992년 코미디 대상을 거머쥐게 되고, 1993년 ‘봉숭아 학당’은 막을 내리게 되면서 kbs 희극인실 공로패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됩니다.

 

너무나

강렬했던 맹구 캐릭터 때문에 그가 이후에 선보이는 개그 무대는 사람들에게 괴리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가장 단적인 무대가 바로 ‘유머 1번지 프로그램’의 ‘동작 그만’ 코너에서 맞은 선임 하사 역할입니다.

바보 분장도 하지 않았고, 딱 부러진 멀쩡하고 씩씩한 군인의 모습을 연기하는 모습에 대중들은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역할은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진 다른 내무반 구성원들에 비해서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보이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창훈은 이 모습이 본인의 원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공수부대 중사 출신으로 평소 성격도 말수가 적으며, 진지한 사람으로 표정에 변화도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결국 맹구 캐릭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대중들의 호평을 의식한 나머지 ‘동작 그만’ 코너에서 선임 하사 캐릭터도 초반 설정과는 다르게 회차를 거듭할수록 어눌한 말투를 사용하게 되고, 이창훈은 갈수록 자신감을 잃게 되며 방송 활동을 접게 됩니다.

원래 무대 공연과 정극 연기에 큰 애착이 있었던 이창훈은 연극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며, 방송 은퇴를 한 뒤 췌장암으로 투병을 시작한 노모를 위해 산으로, 들로 약초를 캐러 다니며 모든 사회 활동을 포기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했고, 결국 노모가 세상을 뜨자 1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본인마저 폐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폐암 진단 초기에 발견해서 수술 후 5년이 지나 지금은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알려지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암이라는 질병은 완치 이후에 또 재발병률이 굉장히 높은 질병이라 완벽하게 안심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창훈 사망’이라는 인터넷 연관 검색어가 이 부분 때문에 지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확실한 것은 여전히 이창훈 씨 평소 성격대로 극도로 본인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한다는 것이 일부 인터넷 목격담을 통해서 확인되는 것을 보아, 여전히 맹구 이창훈을 지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며 일반인 이창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혹시나 맹구 이창훈을 우연히 보시더라도 팬심에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기보다는 우리들 마음속에 간직한 채 응원하며 지나가는 진짜 팬심을 발휘하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