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디즈니 플러스에서 방영한 카지노란 드라마는 큰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최민식은
드라마에는 <범죄도시2>로 큰 인기를 얻은 손석구와 충무로 최고의 조연인 이동휘도 출연해 종영 25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그만둬라.
하지만 오달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오달수는 과거 ‘천만요정’이라는 별명을 지닌 충무로 대표 조연이었지만, 이름값이 무색할 만큼 큰 화제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오달수는 드디어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오늘은
디즈니 플러스가 드라마 카지노의 대본 리딩 홍보 영상을 내보낸 직후 왜 오달수가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렸는지와 더불어 그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지금은 기생충을 비롯해 최근에 <오징어 게임>까지 가히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펼쳐지고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원조격인 한류 영화는 바로 <올드보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당시에 <올드보이>는 우리 한국 영화 최초로 무려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니까요.

그리고 이 <올드보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인생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던 ‘천만 요정’ 오달수는 십수 년간 충무로에서 한 배우였습니다.
오히려 주연보다 더 주목을 받으며 충무로의 대표 스타로서 스크린을 점령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잘 나가는 배우의 갑작스러운 추락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한 사건에 의해 밑바닥으로 가기엔 너무나 허망했던 그의 노력은 다음과 같은 인생 스토리를 통해 여실히 잘 드러납니다.
오달수는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소박한 우연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는 부산에 있던 시절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하였으며 어려운 생활고로 인하여 인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이때 연희단 거리 폐극단에서 포스터를 붙여주는 자비를 도와주다가 극단 단원들끼리 서로 돕고 돕는 정겨운 모습에 큰 매력을 느껴 그 길로 연극 배우의 꿈을 갖게 되며 정식 단원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명 극단에 입단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극심한 반대로 괴로워했기 때문에 시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그의 연기를 취미로 여겼고, 아내 오달수 역시 남편의 연기 경력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에게 차갑게 대하던 그의 아버지는 마침내 그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달수는 극단 생활을 이어오던 중, 안타깝게도 현지 일간지에 보도될 정도로 유명해진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오달수의 아버지는 우연히 지역 일간지의 기사를 보다가 오달수의 이름 옆에 연극배우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부친은 이 부분을 손수 스크랩 하며 어느 날 오달수에게 보여주었고 “너의 직업은 연극 배우가 맞구나”라는 인정을 해주면서 더 이상의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친과 달리 아내의 반대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아내가 오달수에게 결혼 조건으로 내민 것 중 가장 첫 번째가 연극을 그만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달수는 사랑을 위해 연기를 잠깐 그만두지만 결국은 자신의 꿈을 위해서 이혼을 선택합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열망을 사랑마저 막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 길로 오달수는 서울로 상경에서 연극 활동을 이어갔는데 자신의 오래된 부산 사투리 때문에 한동안 연극계에서 찬밥 취급을 당해 왔었습니다.
“너 같은 놈이 무슨 연극이냐? 부산으로 내려가라”는 동료들의 모진 핀잔과 더불어 3년 동안 준비한 연극이 월드컵과 맞물려 쫄딱 망해버리는 불운까지 겹쳐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을 했을 당시 너도 나도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하느라 어느 누구도 무명 배우가 기획한 연극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습니다.
이때 오달수는 전 재산을 들여 어렵게 마련한 극단 연습실까지 처분하며 생활고를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영화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한 영화에 300만 원을 받고 출연한 게 그 영화 인생의 본격적인 서막이 됩니다.
오달수는
<올드보이>, <효자동 이발사>, <마파도>, <친절한 금자씨> 등 쉼없이 스크린을 누비고 다녔고 이어 <국제시장>, <암살>, <베테랑> 등 자신이 출연한 영화 모두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돌파합니다.
그렇게 그는 존재감 넘치는 조연으로 춤으로 대표 스타로 거듭났고 심지어 에 출연하며 손석희와의 인터뷰까지 진행했습니다.
하늘이 마치 그의 고난길을 알아주며 보상이라도 하듯 오달수 이 인생은 충무로 조연 역사상 역대급의 상한가를 치게 됩니다.
그러나 S급 주연 부럽지 않던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추락하게 되습니다.
이윤택 성폭력 폭로 기사의 댓글에서 오달수가 언급되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 댓글은 오달수가 90년도쯤에 자신을 여관에서 성폭행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달수는 긴 시간 침묵을 지키다가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고 의심 어린 대중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밝힌 다른 배우마저 뉴스에서 또 다른 피해 사실을 밝히며 오달수는 탄탄대로 연기 인생에서 완전히 급제동이 걸리게 됩니다.
당시 대중들의 여론은 이건 너무 오래된 사건이었고 피해자의 과거의 기억과 진술에만 의지한다는 그런 찬반 여론이 팽팽했습니다.
어쨌든
오달수는 가난한 무명배우에서 대배우가 되기까지 몇십 년이 걸렸지만 완전히 밑바닥으로 추락하기까지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달수는 이어지는 논란에 배우 활동을 중단하며 완전히 잠적했고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지내며 그야말로 처참한 페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오달수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으나 다행히도 가족들이 일찍 발견하였고 이후로는 24시간을 가족들이 늘 지켜왔다고 합니다.
이후로 그는 기자들을 피해 거제도로 내려가서 농사만 지으며 시간을 보내게 되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는 오달수는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됩니다.
비록 그는 법적으로 무혐의였지만 대중들의 찬반 여론은 여전히 팽팽합니다.
그의 복귀
아니면 연기를 그만둬달라는 여론이 분열된 가운데 오달수가 다음으로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선과 악을 떠나 나 자신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입장과 기억의 차이는 있지만, 이 사건을 계속해서 언급하는 것은 나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상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달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 영화 ‘요시찰’로 돌아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충무로에 안장됐다. 이후 드라마 ‘카지노’에 출연하며 차기작에 대한 큰 고민을 드러냈다.
디즈니플러스는 홍보 목적으로 대본리딩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이번 영화에는 주연배우로 최민식, 손석구, 이동희만 소개됐다.
이름의 기존 가치를 생각하면 최소한 오달수는 포함됐어야 했는데, 오달수는 홍보영상에서 빠져 얼굴이 없어진 것이다.
이에
오달수는 지인들을 통해 “무혐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자신에게 너무나 잔인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전해 들은 최민식은 “작품을 통해 연기력으로 계속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면 언젠가는 대중들의 곁에 다시 갈 수 있다”며 따뜻한 위로를 전해줬다고 합니다.
이런 오달수는 과거의 ‘천만 조연’이라는 명성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요?
법치주의 사회에서 그는 무혐의라는 결과를 얻었으니 이제 그만 우리도 확인되지 않은 추측과 루머는 배제하고 그의 연기에 대해서만 평가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