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때 생각만 하면 치가 떨려와요..” 가수 김종국의 갑작스러운 고백 내용.. 김광수가 그에게 벌인 충격적인 만행들..

1976년 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종국은 아버지가 직업군인 출신의 월남전에도 참전한 국가유공자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근검절약은 기본이고, 조금만 어긋난 행동을 해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군기 잡힌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웠냐면 친척들은 조카들이 무슨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방학 때마다 감옥처럼 전부 김종국의 집에 보낼 정도였고, 그런데 훗날 김종국의 고백에 따르면 ‘자신은 그런 곳에서 평생 살았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청소년 시절 싸움을 잘했던 김종국.

김종국은 ‘안양의 김도끼’라 불리며 당시 2살 위의 형이 다른 친구들로부터 당하면 그가 대신 손을 봐줄 정도였다고 하죠.

 

그런데

고3 때는 뜬금없이 의대에 지원을 하게 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는 김종국이 당시 집안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수를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가 극심한 반대를 하며 집안이 그야말로 난리가 나고 말았고 하지만 김종국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그래서 타협을 했던 게 6개월만 딱 해보고 안 되면 공부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해주게 됩니다.

그러나 똑똑했던 그의 형이 의대에 진학하자 당시 부모님은 형제가 나란히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걸 꿈꾸며 김종국의 연예계 진출도 꺾을 겸 겸사겸사해서 강제로 의대에 지원시켰으나 당연히 떨어졌고, 그런데 그러는 사이 김종국은 오디션에서 단박에 합격해 그룹 ‘터보’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렇게 20살의 나이에 그룹 ‘터보’로 그토록 열망하던 가요계에 데뷔했으나, 그런데 말이 좋아 가수지 1990년대 가요계가 그렇듯 그는 가요계에 데뷔함과 동시에 인권 따위는 없는 노예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요계의 암흑적인 시대성을 감안하더라도 하필이면 그가 들어간 소속사 ‘스타뮤직’은 사실상 건달 계열이었고, 그렇다 보니 ‘터보’의 멤버 김정남과 김종국은 연습생 시절부터 매우 높은 수위의 온갖 만행과 횡포 등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당했던 만행 중 첫 번째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사실상 혹사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당시 하루에 국내선 비행기를 5번 탑승하고 또한 평소 하루 스케줄이 최소 10개부터 많으면 17개까지 되다 보니 당시 매니저의 차량 한 달 주행거리가 서울 시내 영업용 택시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직원들을 동원해 김정남을 지하실로 데려갔고, 김종국 또한 지하실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터보’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정규 1집, 2집 총 2년 기간에만 번 수익이 수십억 이상이었다고 하는데, 2014년 ‘무한도전’에서 김정남이 밝히기로는 2년 기간에만 벌은 수익금으로 무려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먹고 지낼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속사가 정산만큼은 제대로 해준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게, 당시 소속사는 ‘터보’의 대부분의 수익금을 갈취하고 정산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놀고 지낼 정도였다는 건 그만큼 터보의 인기와 스케줄이 엄청났다는 것이죠.

그러다 1996년 11월 어느 한 소속사는 그렇게 잘나가는 ‘터보’가 이런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당시 ‘터보’를 뺏어오려고 ‘스타뮤직’과 ‘터보’를 이간질시켜 앞서 얘기한 모든 만행들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자

이에 검찰이 직접 움직여 ‘터보’가 어느 한 방송에 출연하던 중간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고, 그리고 ‘터보’ 멤버들은 검찰과 숙소에 가서 모든 만행에 대한 조사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과정에서 아무 잘못도 없는 ‘터보’ 멤버들이 괜히 검찰 수사라고 하니까 겁이나 행여나 조사를 받으면서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 때문에 역으로 본인들이 피해를 받을 걱정에, 백댄서의 차를 타고 도주하게 되는데 무려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심지어 외국까지 가서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터보’의 커리어에 있어 손해 본 것들이 많았는데, 당시 ‘터보’의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각종 연말 가요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 후보까지 올랐으나 거주로 인해 모두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당시 검찰은 ‘스타 뮤직’에 대한 수사에 나서게 되어 결국 소속사 대표 권승식과 ‘터보’의 매니저 관계자 등 ‘스타 뮤직’의 관련자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검거되었고, 하지만 공동대표 두 명 중 권승식은 검거됐지만, 나머지 한 명은 수사망에는 올랐으나 잡아넣지를 못했는데, 이 인물이 바로 가요계의 최악의 인물이자 훗날 ‘미스 트롯’을 제작한 김광수였습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약 1년 ‘터보’의 김종국, 김정남은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려고 하던 중 마침 어떤 다른 기획사 대표가 그들에게 ‘각각 10억 원을 주겠다. 우리 회사로 오라’라며 유혹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장은 이내 ‘터보’ 명의의 수익금을 모두 가로채 달아나고 말았고, 그렇게 당시 ‘터보’가 큰 사기를 당해버리자 원래 소속사였던 ‘스타 뮤직’에서 “너희 사기당했으니깐 일단 아무 말 안 할 테니까 다시 돌아오라”라고 해서, 다시 ‘스타 뮤직’으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언론에는 나왔지만, 사실은 늘 그래왔듯 건달을 풀어서 손찌검을 해 오지 않으면 살기 힘들 것이라는 식으로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이때 멤버 김정남은 활동했던 1년 8개월이 너무 힘들어 당시 김종국에게 “나는 다시는 노예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라며 ‘터보’로 돌아가지 않고, 결국 팀을 탈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후 김정남을 대신해 마이키라는 멤버가 터보에 합류했지만, 그런데 이때도 마찬가지로 예전과 똑같은 소속사 만행들이 이어졌습니다.

 

훗날

마이키는 터보 활동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당시 터보 활동을 하면서 소속사로부터 수많은 만행들을 당하다 보니 사람이 옆에 오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고 차 소리만 들려도 나한테 해를 끼칠 것만 같아 항상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심한 우울증까지 왔다. 그런데 우울이 너무 심하다 보니 혈액순환까지 안 돼 몸이 저리고 호흡곤란증까지 와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이때 마이키는 미성년의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소속사 직원들이 허구한 날 만행을 저지르자 하루는 김종국이 마이키를 몸으로 감싸고 반항했는데, 이에 사장은 화가 났던지 다시 김종국을 지하실로 데려가 온갖 손찌검을 하자, 당시 마이키는 김종국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이 크게 들어 엄청 울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2001년 마침내 ‘터보’가 해체되었고, 그리고 이때 김종국은 본격적인 솔로 활동에 나서려고 했지만,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나 김광수 대표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훗날 김종국의 고백에 따르면, “터보를 해체한 뒤 솔로 앨범을 내기 위해 작곡가 여러 명을 찾아다니며 곡을 부탁했으나, 그런데 하나같이 작곡가들이 곤란해하면서 하는 말 ‘미안하지만 너에겐 곡을 써줄 수가 없다’라는 반응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당시엔 작곡 가수도 별로 없었을 시기였는데 알고 보니 전 소속사 대표 김광수가 모든 작곡가들에게 김종국에게는 절대 곡을 써주지 말라고 압박을 넣은 것이었고, 결국 이로 인해 당시 나이도 어렸고 현재와는 달리 인맥이 한참 부족했었던 김종국은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작곡가들에게 부탁을 해봤으나, 여전히 작곡가들은 미안하다며 차라리 전 소속사와 오해를 풀어보라는 답변을 했고, 그러다 하루는 김종국이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용기를 내 김광수에게 전화를 걸어 “섭섭하신 게 있으시겠지만, 형님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정작 김광수는 “네가 이제 아쉬워지니까 나한테도 전화하는구나. 넌 무조건 내가 없애겠다”라고 하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습니다.

이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김종국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죠.

이처럼 김광수의 훼방으로 작곡가들이 곡을 주지 않자 결국 김종국은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해서 어렵사리 1집 앨범을 내게 되는데, 그런데 김광수가 이번에는 방송까지 일부 막아버리는 행태를 부리자 정말 지쳐버린 그가 이제 가수로서는 정말 끝인가 하는 심정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김광수의 방해를 받아 김종국의 1집 앨범은 활동이나 홍보가 전혀 되지 못했고,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음반 판매량이 무려 40만 장이나 팔리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김종국의 2집이 크게 성공하자 마침내 김광수의 방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런데 김광수는 뻔뻔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하루는 그를 찾아와 자신의 소속사 가수들의 피처링을 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아무튼 당시 상황이 맞지 않아 정중히 부탁을 거절했는데, 그런데 이에 김광수는 “네가 감히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냐”라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었고, 사실 이때 김종국이 바랐던 건 “그때 힘들었지 미안하다는 한마디만을 바랐다”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훗날 ‘강심장’이라는 프로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마지막으로, 김종국이 자신의 힘들었던 사연과 관련해 고백하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제가 터보로 데뷔해서 일은 일대로 하고 돈도 못 벌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뭐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저의 20대는 열심히 했지만, 얻은 것도 없고 고생만 했다는 얘기를 제가 많이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정말 나중에 느낀 거지만 ‘터보’ 활동을 하면서 음악으로 많은 분들이랑 교감하고 제 목소리 하나로 많은 분들이 추억을 하시고, 언제나 노래들이 나올 때 반가워하시는데 이런 음악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지금은 정말 가수를 시켜주셨던 사장님, 프로듀서분들 모든 분들께 저는 진심으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사담이지만 여러분들도 생각하는 것만 바꾸면 정말 나빴던 게 좋은 것이 되고요. 반대로 좋은 건데도 생각을 조금 잘못함으로써 너무 나쁜 것도 되고 그러거든요”라고 했습니다.

김종국의 말을 요약하면 터보 시절의 기억이 본인에게는 정말 일만 주구장창했고 돈도 못 벌었고 고통을 자주 당했던 기억뿐이긴 하지만, 결과 음악이 남아있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내가 어떻든 이젠 털어버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 김종국의 참 모습과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