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어떻게 숨겨온건가… “갑작스러운 58세 아나우서 이금희 눈물겨운 소식이.. 생방송 도중 그녀에게 찾아온 갑작스런 불행..

포근한 목소리와 사람의 마음에 닿는 화법으로 KBS 간판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을 무려 18년간 진행한 이금희는 지금까지 인터뷰로 만난 사람만 2만 4000명으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MC이자 소통 전문가입니다.

그렇게

방송인으로서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녀와는 언제나 탄탄하고 꽃다운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화면에서 보여지는 베테랑 방송인 이금희와 달리 이금희의 실제 삶은 꽃길보다 가시밭길이 더 많았다.

한때 KBS에서 가장 순박한 아나운서로 불렸던 그녀는 꼼꼼한 정은하에게 열등감을 느꼈을 터이다. 그녀 역시 나이 많은 아나운서와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관계를 맺었지만,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고 나이 많은 가정부로 남아 있었다. 세상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겠다고 고백한 이금희의 실제 생활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965년 넷째 딸을 낳은 이금희 씨는 부모님이 세 딸을 두고 더 이상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늦게 낳았으나, 나중에 또 다른 여동생이 태어나 부유한 집안에 살게 됐다. 다섯 딸.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말단 경찰 공무원으로 당시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어머니가 늘 부업을 달고 살아야 했고, 또한 어려운 형편으로 유치원도 못 보내자 이금희 그녀가 1~2월생이 아닌데도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그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다섯 자매가 한 방에서 같이 자야 했고 그리고 당시 어린 이금희가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어 했으나 그럴 수 없자 커다란 피아노 학원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학교에서 단체로 KBS 동요 경연 프로그램인 ‘누가누가 잘하나’에 박수 부대로 나갔다 다른 친구들이 노래 잘하는 출연자들을 부러워할 때 그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예쁜 언니만 눈에 들어오면서 그때부터 사회자라는 직업을 동경하게 됩니다.

이후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방송반에 지원해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교내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사실상 학창 시절 내내 방송반에서 활동했고, 그러다 대학교 4학년 때 그토록 바라던 방송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처음으로 KBS 아나운서 공채 시험에 응시했으나, 모든 일이 그렇듯 성공은 처음부터 오지 않고 불합격의 고배를 먼저 마셔야 했습니다.

또한, 공교롭게도 불합격 소식을 듣던 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지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당시 여관방에서 혼자 평생 그렇게 서럽게 운 적이 없을 정도로 밤새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 어느 날 KBS로부터 아나운서 시험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리포터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리고 처음에는 원하던 아나운서가 아니라 고민을 하긴 했으나, 그렇게라도 방송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우선 리포터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나운서들과 달리 취재진들이 하루 종일 뛰어야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체력이 허약했다가, 퇴근하고 돌아오자마자 젖은 솜처럼 쓰러지자 부모님이 말리더니 본인도 “나도 그래”라고 말했다. 방송에 적합하지 않다”며 오히려 방송에 회의감을 느꼈다. 나는 마침내 그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4개월 만에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한 회사의 비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내 일에 너무 무관심해서 내가 정말 철없는 비서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비서로 일한 지 9개월이 지나도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고, 여전히 아나운서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다시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해 결국 두 번째에 합격했다. 입사 후 맡게 된 일: 초등학교 아나운서의 꿈을 갖게 해준 어린이 노래경연 프로그램의 운영을 맡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녀가 본격적인 KBS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녀에게는 같은 시기에 입사한 아나운서이자 최대의 라이벌인 정은아 아나운서가 있었다. 테스트에 정은아도 시도했지만 말다툼을 했고 둘 다 나중에 기자가 됐다. 우리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그건 KBS에서 너가 가장 촌스러운 아나운서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그 뒤로도 팀장은 입버릇처럼 ‘너는 이 일을 10년 해야 돼. 너처럼 촌스러운 아나운서는 10년 이내에 안 들어올 테니까’라고 말하며, 대놓고 그녀를 무시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이금희는 기분이 굉장히 상했을 법도 한데 하지만 이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촌스러운 이미지는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남들에게는 없는 다른 점이자 자신만의 강점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결국 이때부터 예전에 정은아에게 느꼈던 경쟁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금희가 고백하길, “솔직히 팀장의 말이 나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촌스럽다는 말은 오히려 부담이 없다는 말로 내 자신이 시골 밥상처럼 편하고 부담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그리고 그것은 어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나만의 장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할 때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잘 들어주는 거다. 사실 누구나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진행자는 말만 잘 들어주기만 해도 의사소통의 절반은 성공한 거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엄마 같은 사람이 최고로 좋은 MC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엄마랑 같이 있으면 편하고 또 엄마 앞에 서면 자랑하고 싶고 어떤 상처도 다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MC도 엄마처럼 편안하면 출연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그녀는 ‘티비는 사랑을 싣고’, ‘아침마당’ 등 KBS의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러다 그녀가 훨씬 더 국민적인 사랑을 받게 되는 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이산가족 방송 때였습니다.

당시 타방송국 아나운서들은 이산가족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우시죠?’, ‘다시 만나서 기분이 어떠세요?’같은 단편적인 질문만 했던 것에 반하여, 이금희 그녀는 이산가족의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따님과 스무 살에 헤어지셨는데 만나서 무슨 이야기부터 하셨나요?” 같은 공감 어린 질문을 던지자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최고의 MC라는 평을 받게 됩니다.

아무튼 이러한 인기 덕분에 당시 그녀가 KBS에서 차장까지 승진하며 그야말로 아나운서로서는 승승장구했고, 하지만 당시 새벽부터 자정까지 여기저기를 오가며 프로그램 3개를 연달아 찍고 그러다 보니 코피도 자주 흘리고 나중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어 결국 저혈압으로 세 번이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한 번은 ‘아침마당’ 생방송 중에도 쓰러져 당시 의사로부터 “당장 모든 일을 그만둬야 하고 계속 이렇게 살다간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듣게 되자, 그래서 결국 이때에 이대로 계속 일을 하다간 큰일 날 것 같아 결국 KBS 아나운서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한편, 그녀가 KBS를 퇴사하기 직전 자신의 자서전을 발간했었는데, 그런데 책 속의 내용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켜 난리가 나기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자서전에는 그녀가 한 선배 아나운서와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가졌으나 선배가 예전 애인에게 돌아가면서 이 결별로 그녀가 몇 년 동안이나 매우 힘들어했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당시 인터넷에는 이금희의 전 남친이 누군지에 대한 문의 글이 쇄도했고, 그런데 하필 이때 당대 KBS 최고 간판 아나운서였던 김병찬과 손범수가 애꿎게 지목되어 ‘이금희의 전남친이 아니냐’라는 루머로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때를 김병찬이 고백하길, “내가 아나운서치고는 스캔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나를 카사노바로 안다. 물론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금희와 사귄 건 절대 아니다. 사실 그 선배는 나도 아는 선배로 아무튼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튼 그렇게 그녀는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프리로 전향했고, 그런데 KBS 아나운서 시절 워낙에 좋은 이미지였던지 프리로 전향했음에도 아나운서 시절 못지않게 종횡무진 활약하며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고, 하지만 이와 별개로 여전히 결혼을 하지 않고 노처녀로 남아있자 당시 그녀를 둘러싼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가왕 조용필과의 스캔들이었는데, 사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스캔들이 자꾸 터져 오죽하면 당시 조용필의 처제마저 ‘재혼하신다면서요’라고 묻자, 그때 조용필이 ‘저세상에 있는 전 부인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이 나서 미안하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똑같은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모든 상황이 달라지는 것 같다. 솔직히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은 없다 보니 닥치면 닥치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최근 일이 잘 안되고 하는 일마다 꼬여서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가 지끈 지끈하다면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한번 생각을 했으면 한다. ‘그래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일 따윈 없지 기왕 벌어진 일 이 일 또한 시간이 지나면 여행처럼 생방송처럼 어느 날 누군가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기억과 추억이 되는 날이 분명히 올 거야’라고 말이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