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고생만 하며 살아온 것도 억울한데… “최근 방송인 이경애 눈물겨운 소식이..” 아끼던 딸 희서마저도..

장윤정, 박수홍, 김혜수, 안정환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자신의

이들의 공통점은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톱스타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네 사람 모두 부모님이 힘들게 벌어온 돈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장윤정과 박수홍은 이 때문에 부모님과 소송과 소송을 이어갔고, 배우 김혜수는 최근까지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이 힘들게 번 돈을 이렇게 낭비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가슴 아픈 건 연예계에 이런 사례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코미디언 이경애 역시 과거 부모로부터 거의 착취에 가까운 만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며 큰 화제를 빚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경애의 삶에는 사실 부모 말고도 더 심각한 문제가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최근 세 번째 결혼을 했다는 그녀.

대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요?

며칠 전, 채널A ‘금쪽 상담소’에 딸 희서와 함께 출연했던 이경애.

프로그램의 컨셉상 방송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경애와 딸 사이의 갈등이 주로 다뤄졌는데요.

근데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오은영 박사가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이경애 씨가 희서 양에게 하는 말들이 사실은 다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네요”라고요.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이경애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 때문에 얼마나 맘고생을 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아실 것입니다.

실제로 이경애는 어린 시절 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꿀 정도로 공부를 좋아하고 또 잘했다고 해요.

한때는 전교 2등까지 한 적이 있다고 하죠.

근데 왜 갑자기 코미디언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요?

당장 집에 돈을 벌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경애의 아버지는 술값 때문에 자녀를 끼니조차 먹이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알콜 중독이었습니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자기 아내랑 자식들에게도 무슨 폭군처럼 굴었다는 겁니다.

5명이나 되는 애들이 굶는 걸 보다 못한 어머니가 결국 밖에 나가서 장사를 한 적이 있다는데요.

그걸 알게 된 아버지가 한 행동이 아주 가관입니다.

고마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여자가 밖에서 일하는 거 아니다’라고 오히려 아내를 때려가면서까지 장사를 못 하게 했다는 거예요.

 

심지어

손찌검도 어찌나 세게 했는지 한 번은 이경애 씨 어머니 얼굴에 구멍이 날 정도로 맞아서 피가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그냥 콸콸 쏟아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걸 말리던 이경애 씨까지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았다고 하고요.

외에도 노름은 또 어찌나 좋아하는지 끝내 노름 돈으로 아내 그러니까 이경애 어머니가 한두 푼 모아놨던 집까지 날리게 됩니다.

이걸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가족들은 어땠겠습니까?

결국 이경애의 어머니는 집을 나가더니 동네 뒷산에서 극단적 선택까지 시도하게 돼요.

이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무려 5번이나요.

그럴 때마다 이걸 발견하게 된 이경애 본인.

 

 

어머니한테 맞아가면서까지 매번 어머니를 말렸다고 하죠.

당시 고작 19살이 이었다는데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죠.

그럼 개그맨이 된 이후에는 삶이 좀 나아졌을까요?

1984년에 KBS 개그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탄 코미디언이 바로 이경애입니다.

이때의 이경애는 방송에서 틀면 나올 정도였고, CF며 행사까지 온갖 무대를 다 섭렵했습니다.

심지어 전성기 시절에는 방송 한 번에 1300만 원은 그냥 받았고 월 수익이 일억 원에 달했다고 해요.

 

그럼

그 역시 상당히 호화로운 삶을 누리며 부유한 삶을 살았던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실제로 이경애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돈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정리하자면 이번에도 아버지가 문제였다.

당시 이경애의 매니저는 딸이 벌어들인 돈을 모두 빼앗아 도박과 술, 주식투자까지 시작한 아버지였다.

당시 이경애 씨의 월급은 높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의 허리 통증을 이겨내지 못해 한 달 동안 야간 공연을 다녀야 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은영 박사도 이 말을 듣고 혀를 차며 “이건 착취다”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딸이

번 돈을 아내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고 홀로 독차지했던 아버지.

그는 끝내 딸이 번 돈으로 주식 투자까지 시작했고, 이 돈을 고스란히 다 날리고야 맙니다.

이후에도 이경애는 암에 걸린 아버지와 간경화로 투병하는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달에 780만 원을 병원비로 사용하며 고단한 시기를 보내야 했죠.

이때 멘탈이 얼마나 갈렸는지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는 한동안 정신과를 오가며 우울증 치료에 전념했다고 하고요.

정말이지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무거운 마음이 드는 가족사인데요.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차라리 결혼이라도 좋은 남자와 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고 바라게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요?

사실 이경애는 결혼 생활조차도 결코 순탄치가 못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 결혼은 얼마 가지 않아 파경으로 마무리가 됐고요.

두 번째 결혼 당시에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해요.

왜냐하면, 남편 몸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죠.

사실 이경애의 남편은 만성신부전증이라는 병이 찾아와서 간 이식을 받고 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 이경애가 남편에게 ‘살아 돌아와서 너무 고맙다. 내 옆에서 다른 여자를 안아도 다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니, 이경애가 이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확 느껴지죠.

사랑의 결실인지 두 사람 사이에는 곧 예쁜 딸이 하나 생기게 되는데, 이 아이가 바로 금쪽 상담소에 같이 나왔던 희서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스러운 딸까지, 이제야말로 정말 행복한 일만 남았나 싶었던 그 무렵 이영애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는데, 바로 남편의 병 악화 소식이었어요.

이미 간 이식까지 받았음에도 남편의 몸은 점점 더 안 좋아졌고, 끝내 2013년 1월 23일 남편 김용선 씨는 향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한동안 이경애는 방송에 나와서도 남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그렇게

이경애씨는 딸 희서의 건강한 양육을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헌신적으로 헌신해왔습니다.

다행히 최근 세 번째 결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한다.

이제 아이들도 성장하고 새 남편과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경애는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잊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현재 이경애는 딸과의 갈등으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골드클리닉을 찾아오셨어요.

실제로 이경애와 딸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이경애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바쁘게 지내야 하지만, 딸은 천성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게다가

딸을 향해 이경애의 집착 아닌 집착 또한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에요.

실제로 한때 이경애는 ‘딸을 먹여 살려야 한다’라는 책임감에 짓눌려 페트병 수백 개를 모으는 등 일종의 저장 강박 증세를 보인 적도 있었고, 지금은 딸에게 “넌 20살이 되자마자 엄마 곁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라며 다소 강압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경애의 말마따나 딸에게만큼은 절대 아픔과 가난을 물려주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에서 나온 행동들이겠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릴 적부터 겪었던 아픔 때문에 아직까지도 딸에게 집착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딸이 그렇게 효녀라던데 이경애 씨도 이제는 마음 놓고 딸에게 너무 압력을 가하진 말길 바라봅니다.

이경애 씨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