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주현은 1946년 8월 19일에 태어났습니다.
한편
당시는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노주현 역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형, 누나와 함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를 홀로 키웠다.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에도 별 어려움 없이 자녀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2019년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녀의 어머니는 2018년에 함께 출연한 노주현과 함께 서울 종로에서 금은상점을 운영했다.
오랫동안 가게를 운영하신 어머니께서는 직장 동료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시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키우셨습니다.
노주현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경험을 했다.
어머니가 어렵게 키운 세 자녀 중 하나인 노용악씨는 훗날 LG전자 부사장이 되어 국내 최초로 외국계 기업을 창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어
1994년부터 LG전자 중국법인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에는 외국인 최초로 가전분야 중국 전문가 10인에 포함됐다.
노용악 회장이 이끄는 중국 지주회사 LG전자가 10년간 연평균 39%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또한, 노주현의 누나인 노숙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교사로 일한 동양화가이다.
그러던 중 제 제자인 배우 왕영은 씨와도 접촉하게 됐어요.
하지만 막내 노주현은 형이나 누나만큼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 방송에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의 경험을 언급했는데, 노주현은 이미 현재의 키와 비슷한 학생이었다.
중학생 노주현은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문을 열어준 친구의 누나에게 첫눈에 반했다.
노주현은 누나의 얼굴을 보며 “언니 얼굴이 보름달처럼 예쁘다”고 말했다.
1968년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노주현은 본명 노운영 대신 예명 노주현을 선택했다.
하지만 노주현이 영화 데뷔작으로 등장하자 제작사 사장이 본명을 버리고 예명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노주현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제작사 대표는 작가의 평가를 받아들이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유명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작가는 노운영의 본명을 보고 “세 번 결혼할 이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예명으로 노주현을 선택하게 됐다.
데뷔 후 주목을 받았고, 1970년대 한진희가 주목받기 전까지 노주현은 실제로 TBC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았다. 한진희는 키가 커서 당시 여배우들과 함께 스크린에서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데뷔 초 조연을 맡았다. 성공했습니다.
반면 노주현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숨에 주연배우로 성공했고, 한진희 등장 이후에도 인기가 흔들리지 않고 함께 주연을 이어갔다.
이어
노주현은 TBC에서 활동했을 당시 여운계가 자신을 매우 아름답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여운계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지만 노주현의 사진을 집에 액자 몇 개를 걸고 멋있다고 칭찬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화를 낸 여운계의 남편은 그 사진들을 찢어버리고 여운계와 격렬하게 싸웠다고 하죠.
노주현은 후회하며 자신이 총각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자신의 처지를 묻자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던 노주현.
어머니의 물음에 노주현은 여운계와 사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고, 여운계의 남편이 노주현의 어머니에게 전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주현은 이 일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이후로는 조심하며 행동하였습니다.
이전처럼 많은 인기를 얻으며 눈부시게 활약하던 노주현은 외모와는 다른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쉽게 화를 냈다고 하는데, 그 성격은 70대가 된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노주현인데요.
또한, 19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방송국에서는 노주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는데, 이러한 방송국의 반응에 노주현은 혁신적인 선택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었고 신문에서도 크게 주목받았죠.
그러나 이로 인해 일시적으로 방송 출연 기회 없이 백수 생활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탤런트들이 소속된 방송사에서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것이 절대적인 규칙이었는데. 규칙을 깨고자 선언한 그의 행동은 이후 방송계의 판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방송 생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생활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되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상황이 어려워지자 밤무대까지 서게 됩니다.
무대에서는 노주현에게 나훈아와 같은 출연료를 제안하며 무대에 섰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는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고 하죠.
이후 우연한 기회에 김수현 작가를 만난 노주현은 자신을 드라마에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김수현은 노주현의 배역 질문에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 후 노주현은 다시 김수현 작가를 만나게 되었고 열정을 드러내며 캐스팅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노주현은 87년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하여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중년 남성 배우로 활약하던 노주현은 하나의 고민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역할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에 직면했는데요.
이어
멜로 연기만 계속해서 해오다 보니 자신이 너무 한 가지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외에 다양한 역할을 시도해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노주현에게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주현은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하게 되면서 파격 변신을 성공시키게 됩니다.
당시 연출자인 김병욱 피디는 ‘노주현에게 맞을 각오까지해서 섭외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에 노주현은 오히려 감사함을 표하며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이 배우로서 치명적인 문제였고 큰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병욱 감독이 자신을 구해준 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시트콤 출연 이후 대중들은 친근하게 노주현을 인사하며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는 배우로서 자주 나와야 하며 시청자들과 친해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과거 한 방송에서 노주현은 딸이 20살이 되던 해에 유흥업소를 그만두었다고 밝혔는데, 그의 아내는 수년 전 술집 여주인으로부터 온 문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문자의 내용은 상당히 선정적이었다고 밝힌 노주현인데요.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기분을 받을 수 것입니다.
‘나는 아내에게 상황을 숨기기 위해 술집 홍보 문자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아내는 몇 번의 문자를 통해 실제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분노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결국 그날 나는 아내를 차에 태우고 자신의 일을 보면서 시간을 끌기 위해 장장 7시간이나 돌아다녔다’라고 밝혔습니다.
‘다행히 나는 끈질긴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내는 냄비처럼 빨리 끓고 금방 식는 성격이기 때문에 상황에서 급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는데요.
게다가 이후에는 아들이 사망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까지 했죠.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고요.
현재는 나이가 들어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는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가 줄어들 때 생계를 위해 서울 잠실의 롯데백화점에서 피자핫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사업이 성공하여 장사가 번창했고 현재는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로스 가든이라는 카페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연기를 하면서도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꾸준히 사업을 병행했으며 그의 노력 끝에 코믹 연기에도 도전하여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주현 배우는 76년 동안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온 배우입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