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명국환, “밤 사이 전해진 안타까운 소식..” 황혼의 나이까지 단칸방에 홀로 지내온 그의 근황과 이유에 모두가 오열을 하고 마는데

원로 가수 명국환이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가 일찍이 지난달에 별세했지만, 장례를 치를 가족이 없어 부고가 늦어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 별세한 명국환은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고 하는데요.

대한

가수협회는 오늘 오전 9시까지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 희뉴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명국환의 빈소를 마련했습니다. 장례식은 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난 명국환씨가 숨진 지 약 2주 만에 치러졌다.

 

 

명국환의 시신이 발견된 후 구청에서는 고인의 가족을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으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고인은 무관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를 들은 대한가수협회는 이같이 밝혔다. 늦게 소식을 듣고 그의 이름으로 장례식을 조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고인은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50분께 인천 남동구 요양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어제 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늘 선배 선생님이 걱정이었는데, 작년에 한동안 연락이 두절됐어요. 알고 보니 그는 기본적인 사회 지원을 받고 요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그에게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뭔데”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장례식에 참석할 가족이 없어 친인척 없이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우리가 돌봐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시

즉 대한가수협회 역시 사망 2주 만에 사망 소식을 접한 셈이다.

 

 

이자연 협회장은 “구청 여기저기에 가족들을 찾아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게 누나 손녀뿐인데 그 손녀는 현재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명국환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MBN ‘스쿠프 월드’에 함께 출연했던 고인의 조카 조경선과 손녀 가수 리라가 사망 소식을 접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던 고인이 된 명국환 씨는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고인은 ‘스쿱 월드’에 출연해 부엌과 화장실만 딸린 월세 23만원의 반지하 방에 살고 있다는 근황을 공개해 충격을 안겼다.

더욱이 병원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며 70년 동안 혼자 살았고, 세 번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반지하 방에 혼자 살았던 명국환 씨는 “70년 동안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며 “6·25전쟁 때 피난민이 된 뒤 21세에 결혼했는데 자궁외 임신을 했고 모든 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저는 세 번 결혼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유산했어요.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아. 90세니까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말해 듣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또한

당시 “다리가 불편한 건 아닌데 어지럼증이 있어 걷는 게 힘들다”라며 건강 상태를 언급했고, 이에 제작진이 확인한 명국환의 다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넘어진 탓에 상처투성이였는데요.

 

또한, 그는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발톱도 제대로 깎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초면인 제작진에게 발톱 좀 깎아달라고 부탁을 해 제작진이 간신히 발톱을 깎기도 했습니다.

그는 “발톱을 깎아 줄 사람이 없다. 언제 깎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라며 “깎는 김에 바짝 깎아달라. 1년 후에야 또 깎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는데요.

또한 그는 심지어 티비 리모컨과 휴대폰을 착각했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방법조차 헷갈렸으며, 이에 “정신이 아찔 아찔하고 자꾸 잊어버릴 때가 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명국환은 오랜만에 찾아온 조카 그리고 조카 소녀와 함께 외출에 나서기도 했는데, 병원에 방문한 명국환은 정밀검사를 받았고 의사는 결과지를 들고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다. 파킨슨병 증상은 아닌데, 비전형적인 파킨슨병 증상이 뇌파에 큰 문제는 없으나 나이가 많으셔서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증상이 보인다’라며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이에 명국환은 의사의 도움으로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기도 했고 또한 해당 방송 이후 대한가수협회와 음악저작권협회는 독거하는 명국환을 위문하고 기부금을 전달해 온기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방송에서 명국환의 지인은 “이분이 굉장히 어렵게 살고 있다. 홀로 계시는데 가족이 전혀 없다”라며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만 생활하고 계신다. 마지막 삶을 너무 험난하고 힘들게 보내고 계신다”라고 밝혔고, 이자연 가수협회장은 “선생님이 그때도 혼자 다니셨다”라며 “원래 선생님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잊으셨는지 집 앞에서 전화드렸더니, 종로 냉면집에 가 계셨다. 그래서 선생님께 저희 사무실로 오시라고 했다. 종로에 아는 부부가 있으셨는지 부부가 선생님을 모시고 왔었다”라고 당시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이자연 협회장은 방송 이후에도 고 명국환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자연은 말하길 “연말 때도 선생님을 도와드렸다. 그때는 못 오신다고 해서 통장으로 보내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더라. 선생님을 아는 분을 찾았는데 그분도 연락이 안 된다고 하더라. 아마 요양원에 가신 뒤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 찾고 있었는데 어제 요양병원에서 가수라는 신원을 파악해 우리한테 부고 연락이 온 거다. 그래서 밤에 부랴부랴 나서서 우리가 모시기로 했다. 선생님이 요양병원에 언제 갔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올봄까지는 연락이 됐으니까 몇 달 됐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고 명국환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과 함께 월남해 정착했습니다.

그는 1950년대 ‘백마야 울지마라’로 데뷔했으며 이후 ‘방랑시인 김삿갓’, ‘아리조나 카우보이’, ‘학도가’, ‘희망가’ 등의 히트곡을 남겼는데,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제 39회 가수의 날 공로상과 2014년 제 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건문화원장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이자연 협회장은 고인에 대해 “선생님이 노래도 잘하시고 우리를 보면 항상 예뻐하셨다”라고 회고했습니다.

또한 이자연은 지난 2021년 4월에 서울 홍대에서 원로 가수들을 위해 마련한 비대면 콘서트 k가요 착한 콘서트에 참석했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코로나19 때 선배들을 모시고 용돈이라도 드리려고 공연을 했었다. 당시 명국환 선생님도 함께 무대에 서는 걸로 해서 출연료도 따로 드리고 했다. 그때 명국환 선생님이 노래가 잘 안되더라. 나와 같이 듀엣으로 ‘방랑 시인 김삿갓’을 불렀다. ‘나 노래 어때’라고 물으시길래 ‘잘했다’라고 했다. 앵콜 곡으로 둘이 같이 불러야 한다고 그래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게 아마 선생님의 마지막 무대였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결국

명국환은 195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나 후손도 없이 외로운 삶을 살다 결국 자신을 지켜줄 사람도 없이 홀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묘소는 괴산보호국 국립중앙센터에 마련됐다.

한 시대를 장악한 가수가 홀로 떠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정말 그렇게 덧없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우리가 살 때는 온 힘을 다해 살다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헛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평생을 혼자 살아온 명국환 씨가 천국에서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을 만나 가족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천국에서 편히 쉬실 수 있기를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