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 정은아 아나운서.. 결국 방송 1시간 전 하차통보?! 그리고 최근 알려진 그녀의 충격적인 결혼 생활에 모두가 경악을..

그녀에게는 늘 따뜻함이 배어 있습니다.

어릴 적 고향 동네의 이웃집 언니 같기도 하고, 학창 시절 단아한 국어 선생님 같기도 한 정은아 아나운서.

한편

직접 만나보니 키가 5피트 7인치에 나이에 비해 꽤 어려보여서 아나운서 체격이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제 어느덧 어느덧 정은아 아나운서는 우아하고 꾸준한 진행 실력이 돋보이지만, 어느 순간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겪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찍 결혼했지만 자녀가 없습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정은아 아나운서는 1997년 3월 손범수와 함께 회사를 떠난 뒤 프리랜서를 선언했으며, 이후 계속해서 각종 프로그램 출연 및 진행을 맡아왔다.

정은아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아침의 광장’, ‘굿모닝 정은아’, ’21세기 위원회’, ‘자랑하자’, ‘비타민’ 등이 있으며, 이 프로그램에는 남성 아나운서들이 다수 출연했다.

 

물론

정은아 인생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은아는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kbs에서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해고되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편안하고 친근감 있는 진행으로 인기가 높았던 정은아 아나운서는 2017년 kbs 직원들이 방송 공영화를 외치며 정상적인 언론사의 역할을 하고자 총파업에 들어가자 생방송 불참 의사를 전달하죠.

정은아는 ‘후배들이 결의를 해서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빈 책상을 보며 들어가 일하는 게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면서 ‘파업 중인 후배들이 힘내시고 잘 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초 오영실은 정은아의 대타로 진행을 할 예정이었지만, 정은아의 파업 지원 후 보복 교체로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는데요.

오영실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함께하는 저녁길 오영실입니다’로서 프로그램명이 바뀌었다는 점에서 정은아가 돌아갈 길은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정은아는 당초 파업 지원 의사를 밝히며, ‘파업이 끝날 때 돌아오겠다’라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황당함은 더 컸죠.

정은아 아나운서가 국민들의 박수를 받은 그 순간에 이미 본인도 모르게 해고자가 되어 있었으며, kbs pd들은 작년 조직 개편 이후 새 프로그램이 통과되기까지 최소한 몇 주의 시간이 걸린다는 기본적인 관념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저녁길, 오영실입니다’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당일에 바로 통과되는 기적과 같은 장면을 이번에 처음으로 목격했다며, 프로그램이 신설된 이유 또한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담당 pd와 해당 채널 pd들, 라디오 사업부 직원들 중 누구도 며칠 동안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황당해했는데요.

즉, kbs 경영진들이 일방적으로 강제 인사나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 없는 제도가 마련돼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죠.

더욱 황당한 건 오영실의 앞뒤 안 맞는 행동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오영실은 자신이 출연한 tv조선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서 말하길, “kbs 근무 당시 나이 들면서 중견 아나운서들 10명이 단체로 지방 발령이 났다. 묵시적인 권고사직이었던 것”이라며, “제가 그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라고 전한 바 있기에, 자신의 행동과 대치돼 더 황당함을 갖게 했죠.

배우로 전향한 이유를 설명하며 한 말이지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인사를 당했을 정도면, 또 누군가의 부당한 인사에 분노를 해야 하는데, 얼씨구나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채우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았는데요.

 

 

애초 대타 mc로 들어간 건 비판받을 이유가 전혀 없지만,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고 자신이 공식 mc로 출연한다는 것은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정은아의 이런 생각을 보면서 참 이미지처럼 바르고, 자신의 역할과 현재의 일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그런데 정은아의 인생에 또 한 차례의 위기가 찾아오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비타민’ 정은아 사건이었죠.

원래 정은아가 ‘비타민’을 맡아서 거의 10년 가까이 진행을 해왔는데, 갑자기 하차가 결정되었고 후임에 은지원, 박은영 아나운서가 결정됩니다.

사실 박은영 아나운서는 나중에 결정되었고, 당시에 은지원 때문에 논란이 컸는데요.

담당 pd는 전날 녹화를 1시간여 앞두고 “다음 ‘비타민’ 녹화에 정은아 아나운서를 교체할 예정이니, 오늘 녹화 방송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라”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았는데, 이는 제작진과 어떤 논의도 없이 본부장과 국장에 의해 전달되었죠.

이 때문에 당시 말들이 많았는데 정은아 아나운서는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는데요.

 

녹화

마지막 날 후배들이 “오늘 녹화를 안 해도 할 말이 없다”며 매우 안타까워했지만, 정은아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무슨 뜻이에요?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녹화 방송은 물론 송별회도 마무리했다.

정은아가 ‘비타민’ 하차 후 휴식을 취하자 남편은 “솔직히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었다. 나였으면 다른 건 없었을 텐데. 지금까지 고생 많으셨고 여행도 푹 쉬시고 여행도 가세요.”

처음에는 남편의 말이 위로의 말인 줄 알았는데, 몇 번 생각해보니 정말 고마웠고, 그 말대로 명절을 쉽게 즐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정은아는 약 2년의 공백기를 갖고 종합편성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정은아 아나운서의 짧은 헤어스타일은 커리어우먼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인데, 키가 커서 그런지 몸매가 정말 멋집니다.

정은아 아나운서와 남편이 아이가 없는데도 불임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정은아 아나운서는 자신의 불임 사연을 털어놓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그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그녀가 30년 동안 방송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데는 남편의 기여가 80%나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은아 아나운서의 남편이 치과의사라는 루머가 돌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다.

정은아 아나운서의 남편은 정은아보다 4살 연상이다.

스무살 남짓의 정은아는 주부들을 위한 ‘아침의 광장’을 맡아 남다른 진행 실력을 뽐내며 후임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호평을 받았다. .

이렇게 보면 정은아는 자연스럽게 방송을 사랑하고 마음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은아에게 아나운서를 추천한 당시 남자친구였던 정은아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정은아에게는 자녀가 없으니 정은아의 입장은 어떠한가?

신입생이 복학생을 만나면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이 반년 동안 정은아를 지켜보면서 시작된 만남은 올 8월 개학 첫날 남편이 “시간 있어요?”라고 물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KBS에 입사했는데,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또 지원서를 가져오고, 정은아 방송을 모두 녹음하고, 라디오에서 정은아가 나온다고 하는 10초 안내 방송까지 다 녹음해 준 건 남편이었다. 방송인 정은아의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었다는 것.

정은아는 “어느 날 대통령 연설 특집이라 많이 떨렸는데 남편이 그걸 보고 눈치채고 ‘그때 긴장했구나’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신이 긴장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은 정은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실수도 눈치챌 수 있었다.

결혼 초기에는 아나운서로서의 본업에 집중하기 위해 자녀를 가질 계획은 없었고, 다음으로 미뤘다.

물론 나중에는 아이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지금은 자연대로 살려고 마음을 바꿨다.

정은아는 아이가 없는데도 자신감이 넘친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후회와 답답함에 스스로를 범죄자 취급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은아 아나운서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을 내지 않는다.

이 말을 정리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은 자연에 순응하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편의 추천을 세 번이나 받아 1990년 1월 1일 아나운서가 된 정은아는 지난 4월부터 ‘나라가 다 됐다’ 생방송을 시작했다.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젊은 아나운서가 KBS 간판 아나운서로 임명되자 아나운서 측에서는 반대했지만 제작진에서는 이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KBS 간부들 사이에서는 ‘정은아가 누구의 딸이다’라는 루머까지 돌았고, 정은아의 아버지가 일부 정부 기관에 근무했다는 루머도 돌았다.

정은아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한편

생방송이고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신입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줄도 모르고 룰루랄라 간 다음, ‘안녕하세요 정은아입니다’라고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생방송을 처음 시작했고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2년간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진 게 큰 경험이자 준비 기간이었던 것 같다고 하는데요.

제작진 입장에서는 ‘이렇게 여러 번 떨어지고 겨우 붙은 아이인데 뭐라도 할 거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하죠.

정은아는 중학교 때부터 방송반으로 활동한 게 아나운서가 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중학교 때 정은아 때문에 방송반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국어 시간에 시를 읽어보라고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시는 저렇게 읽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국어 선생님이 다음 학기에 방송반을 만드셨는데, 정은아가 당시 중학교 방송반의 첫 번째 아나운서였다고 합니다.

‘성공한 아나운서의 비결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정은아 아나운서는 “기술적인 노력, 본능적인 애정 그리고 어머니의 칭찬에서 얻은 자신감”이라고 답했는데요.

정은아 아나운서는 특별한 운동을 찾아서 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도보나 달리기를 하는데, 속도감은 없지만 지구력이 강한 편이라 오랫동안 끈기 있게 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일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그녀의 건강 비결이라고 했는데요.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그 외의 시간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고, 11시가 되면 잠을 자야 하는데 일주일에 이틀은 쉰다고 합니다.

술도 안 하고 잘 자고 잘 먹고 그게 건강 비결이라고 하는데요.

그녀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라운관을 통해 그녀를 만난 지 30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늘 사람 냄새나는 방송인으로 겸손하고 친근한 모습은 변함이 없죠.

정은아 아나운서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바라며 대중들에게 편안한 진행으로 오랫동안 방송 활동을 해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