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돌아왔다’ 추사랑의 할아버지이자 종합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의 아버지인 추계이 씨가 갑작스럽게 향년 73세로 별세했습니다.
한국에 머무르다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추성훈 씨는 모두 방송 활동을 멈추고 급히 일본으로 향했고, 장례는 가족 및 친지분들과 조용하게 치렀다고 하는데요.
아직
창창한 나이에 황망하게 떠나버린 부친의 사망 소식을 접한 추성훈 씨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망연자실한 채 슬픔 품에 잠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내 슈퍼 영웅이었다”라고 부르짖으며 대성통곡하였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죠.
추성훈 씨에게 있어 아버지는 남다른 사연이 있기에 더욱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돌아가실 나이도 안 되었고 특별히 사망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병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인데요.
한편
추성훈 씨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여러 장과 함께 추모글을 올려 보는 이들을 찡하게 했습니다.
추성훈 씨는 “상냥하고 강하고 힘세시고 뭐든지 알고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근데 너무 무서운 아버지였다”라며 어렸을 때 잘못된 짓을 하면 죽을 만큼 맞았다고 합니다.
추성훈 씨에게 아버지는 영웅이셨습니다.
추성훈 씨는 호되게 혼나고 매 맞으면서 성장했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미워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슈퍼 히어로였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애통하다고 전했는데요.
“아직도 아버지한테 더 많이 배워야 하고 이제 조금씩 일이 잘 풀려 같이 돌아다니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떠나셨다”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누구든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생전에 더 잘해드릴 걸 후회하며 아쉬워하는 것 같은데요.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앞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꼭 힘든 길을 선택해라. 그것이 성공하는 길이다”라고 알려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또 “세상에서 만나면 그때는 꼭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골프를 같이 치고 함께 술도 마시고 싶다”라고 전해 보는 이들을 울컥하게 했는데요.
그런가 하면 추성훈 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자신의 국적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3살 때부터 유도를 한 추성훈 씨는 아버지가 유도를 하셨고, 어머니가 수영 선수였기에 자신도 자연스럽게 유도를 했다고 회상했죠.
추성훈 씨의 아버지 어머니는 당연히 한국 국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본 귀화 시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저는 이제 한국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도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 내 마음 속에 흐르는 피는 완전히 한국적이에요.”
추성훈은 일본에서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야 했고, 한국에서도 일본에 살았기 때문에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유도선수인 아버지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추성훈은 한국에 건너가 한국의 상징인 태극마크를 달고 유도를 수련하는 것이 꿈이었고 그때까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가기로 결심하고 부산시청 유도 프로팀에 입단했다.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81kg급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지만, 한국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는 극도로 어려웠다.
추성훈은 이번 결정에서 패한 이유가 실력 때문이 아니라 파벌 때문이라며, 한국의 학문적 연줄 등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지 못한 점을 지적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의 도당 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 나도 그랬어.
그는 “국가를 대표하려면 판정이 아닌 1라운드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판정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했지만 한국인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했다. 일본에서 자란 한국 선수들과 수준 높은 한국 선수들이 결국 한국에 패했다. 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없다.
추성훈은 3년의 짧은 한국 체류 끝에 100년간 유지한 일본 내 한국 국적을 귀화하기로 결정했고,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일장기 출전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한국 관중들은 그를 야유했고 한국 스포츠 신문들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가 조국을 무너뜨린 게 아닌가. 조국을 쫓아낸 건지, 조국이 쫓아낸 건지 모르겠다. 추성훈에게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정말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차별하는 나라를 조국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추성훈을 일본에 보낸 나라가 그를 조국의 반역자라고 불렀다는 게 웃긴다.
하지만 추성훈은 아키아마라는 일본식 이름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는 국민국가의 국민을 넘어 추성훈으로 살고 싶었다.
유니폼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동시에 수놓여졌고, 추성훈과 아키아마는 “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키아마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은 일본 무술 영웅 사쿠라바 가지시를 꺾고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과정에서 추성훈이 몸에 바르던 로션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무기한 영업 정지 처분을 받게 됐다.
문제는 로션을 몰래 바르는 게 아니라, 경기 시작 전 TV 카메라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로션을 발랐다는 점이다.
실용적인 이유로 그는 춥고 건조한 겨울날 밤을 사용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가 일본의 전투 영웅을 물리치자 갑자기 문제가 되었고 일본군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링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심지어 그를 가리키는 ‘이지메(Ijime)’라는 별명도 있었다.
일단
추성훈이 상처를 입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이 이어지는데, 그와 일본의 유명 모델이 사귄다고 알려진 후 일본 언론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도했으며 누리꾼들은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추성훈이 좋다면 한국으로 가라’, ‘조센진과 사귀다니 일본의 수치다’ 등에 반감이 나타났다고 하죠.
일간 스포츠지가 이를 보도했는데, 물론 모두 다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 추성훈이 받은 상처는 컸을 겁니다.
추성훈은 한국에서도 버림받고 일본에서도 버려진 것이죠.
한국에서 활동했을 당시에 받은 상처에 대해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누가 봐도 성훈이가 이긴 경기였는데 판정에서 졌어요. 심판에게 항의했더니, 심판 한 명이 성훈이에게 ‘네가 이해해라.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랍니다. 저도 말을 들을 때는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았는데 성훈이 마음이야 오죽했겠습니까”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을 모델로 쓰기로 유명한 한 유명 스포츠 용품 업체 모델이 됐을 때도 일본 내 안티 팬들이 회사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튜브에는 광고 영상에서 추성훈의 얼굴만을 지워낸 것이 올라와 있기도 한데요.
하지만, 추성훈은 복귀했습니다.
복귀전이 2007년 10월 28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졌는데 얄궃게도 상대는 한국계 캐나다 선수인 데니스 강과의 대전이었죠.
추성훈이 KO로 이겼다는 소식을 인터넷에서 본 순간, 그 어느 국가대표의 승전보를 들었을 때보다 기뻤습니다.
한국인도 될 수 없고 일본인도 될 수 없었던 추성훈, 아키아마가 다시 그의 세계로 유일하게 그를 시민으로 받아주는 진정한 그의 조국, 격투의 세계로 귀향한 것인데요.
일본 국적으로 금메달을 따고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추성훈은 아직까지 자신이 한국인이라 마음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 추계이 씨는 아들 추성훈 씨와 손녀 추사랑이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면서 국내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요.
그는 다음 당시 손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죠.
고 추계이 씨는 2016년경 방송에서 손녀 추사랑과 함께 등장해 손녀 사랑을 과시했고, 지난해 1월 1일 추성훈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등장해서 폭풍 성장한 손녀를 대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추성훈 씨의 인스타그램에는 ‘해피 뉴이어 2022’라는 제목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업로드했는데, 사진에는 벽 앞에 서서 키를 재고 있는 추성훈 씨의 딸 사랑이의 모습이 담겨있었죠.
추사랑은 할아버지 어깨 높은 높이까지 훌쩍 자란 근황으로 눈길을 끌었는데요.
특히 모델인 엄마 야노시호를 닮아 길쭉한 팔다리가 돋보입니다.
추성훈의 모친 류은화 씨는 티비 인터뷰에서 “이 정도의 사람이 왜 우리 애와 결혼을?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놨죠.
그리고
야노 시호의 스타로서의 인지도가 추성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는 뜻에서 한 말인데요.
야노 시호는 일본에서 티비와 잡지 등 각종 매체를 종횡무진하던 S급 패션 모델이었기 때문이죠.
한국으로 치면 미혼 시절의 변정수만큼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녀는 고교 진학 직후 그의 길고 곧은 팔다리를 자랑스러워하던 모친의 권유로 모델을 시작하는데, 초대형 출판사인 슈에이샤의 광고 모델을 시작으로 광고계의 블루칩이 됩니다.
재산으로 따지면 추성훈은 훨씬 더 아래인데요.
그동안 야노 시호가 광고로만 벌어들인 수익만도 최소 100억 원대는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야노 시호가 추성훈의 재산 또는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내다보고 결혼했을 리가 없는 이유인데요.
그런데도 시호의 내조는 전업주부에 근접하는 수준인데, 추성훈의 보양식을 손수 정성스레 준비하는가 하면 추성훈의 고통스러운 훈련 과정과 경기를 지켜보며 펑펑 눈물을 흘립니다.
남편의 의사를 존중한다며 격렬한 경기로 만신창이가 돼 귀가하는 추성훈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감내하겠다고 결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사랑이의 동생을 만들어주자며 자식을 한 명 더 두고 싶어 하는 것도 그녀이고, 보면 예쁜 데다 마음씨까지 고우니 추성훈은 진정 장가를 잘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야노 시호가 추성훈과 함께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고정 출연하자 일본에서는 드디어 그녀에게도 꼬투리를 잡기 시작합니다.
당초 야노 시호의 소속사도 이런 점을 우려해 잡지 촬영이나 패션 분야 활동을 주로 하고 방송 출연은 미뤄왔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그럼에도
추성훈의 아내 야노 시호는 흔들림 없는 내조로 잘 참아내고 있습니다.
추성훈 씨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당시 어렸던 사랑이의 사진과 함께 꾸준히 측정해 왔던 사랑이의 키 성장 기록을 공개하며 정말 많이 컸다고 감탄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추사랑은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토끼띠로 3대가 띠동갑인데요.
이와 같이 손녀 추사랑이 잘 크고 있고 아들과 며느리 또한 일이 잘 풀리고, 이젠 꽃길뿐인 화목한 가정인데, 73세 아직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하여 매우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