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도중 눈물까지, 아나우서 김주하 이게 무슨 일인가? 최근 그녀의 사연이 공개되고 모두가 눈물 흘리게되는데요..

여러분들은 ‘화차’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화차’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약혼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다가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녀가 큰 빚에 시달리며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내가 모든 것에 대해 그에게 거짓말을했다면 내 배우자가 나에게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하기조차 무섭습니다.

오늘은 이 끔찍한 경험에서 탈출한 김주하 앵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김주하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고 재학시절 신문부 활동을 하며 뉴스와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92년 건국대학교 지리학과에 입학했으나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다시 수능을 치른 뒤 94년 이화여대에 편입했다.

아나운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여성 아나운서 중 상당수가 이화여대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이화여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편입학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결국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김동건 아나운서에게 직접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아침뉴스 진행을 맡았고, 이후 2000년 10월부터 2006년 3월까지 5년 5개월간 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했다.

앵커로 활동하던 그녀는 2004년 아나운서에서 뉴스기자로 전향해 화제를 모았다.

그 후 그녀는 2007년 첫 아이를 데리고 출산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1년 동안 주말 뉴스 데스크만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2008년 MBC 뉴스24 진행을 맡았으나,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해 2011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김주하의 목소리는 중성적이어서 독특한 음색으로 인기를 끌었고, 전화 인터뷰에서 목소리가 남자로 오해되기도 했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육아휴직 중 1인 시위를 벌이며 투쟁에 참여했다. 파업이 끝난 뒤 그녀는 기자직에서 쫓겨나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에서 일했다.

2015년에는 MBC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2015년 7월부터 MBN 특집기자로 활동 중이다.

김주하는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성들의 롤모델로 인정받고 있으며, 제2회 시간의 여인상에서 올해의 여성상, 2002년 대한민국 아나운서대상 방송부문 앵커상 등을 수상했다. 제16회 기독교문화대상 부문. 있습니다.

한편, 김주하와 사기 결혼설도 돌고 있다.

이로 인해 김주하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사생활에 큰 사고를 당하게 됐다.

하지만 김주하는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2000년대 초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아들을 소개시켜주려는 중년 여성이 접근했지만, 김주하가 거절하자 그녀는 그녀 주변을 맴돌며 도움을 청했다.

당시 중년 여성이 밝힌 아들은 강필구씨다.

강필구 대표는 1971년생 미국 시민권자로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베이커리증권 이사를 역임했다.

김주하는 기독교인이고 전도를 위해 강필구를 만났다.

 

 

그러나 김주하가 출장 중이던 중 강필구 측이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결혼 발표는 김주하의 동의 없이 강필구 측에서 이뤄졌다.

이때 밝혀진 사실 중에는 강필구의 삼촌이 가수 송대관이라는 사실도 있었다.

송대관의 조카이자 며느리 김주하가 됐다.

이후 송대관은 자신이 방송한 방송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인데 큰 물고기를 잡은 기분이다. 너무 기쁘다”며 김주하 앵커의 결혼을 축복했다. 그런 여자가 우리 집에 들어왔어.”

김주하는 지난 2004년 강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다.

하지만 2013년 10월 남편 김강주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남편은 교제 당시 유부남이었던 사실이 드러났고, 김주하의 시어머니 이씨는 김주와 연결하기 위해 아들의 혼인증명서까지 위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와 강필구.

그녀는 이혼도 하지 않고 과부도 아닌 유부남의 아들을 속여 그와 결혼하게 했습니다.

김주하 측근에 따르면 김주하가 첫 아이를 낳고 나서야 결혼 사실을 알게 됐다.

김주하의 측근은 “충격과 배신감이 들었다”며 “아이가 없었다면 벌써 헤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학력에 관해 거짓말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견뎌온 김주하는 남편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손을 대기 시작한 뒤 이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난 2009년 해당 아파트에서 여주인과 1년 정도 동거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남편 강씨가 살았던 집 옆.

2014년 초에는 강씨가 혼외 출산을 한 사실이 알려졌고, 한 여성이 강씨와 그의 애인 박씨 사이에서 딸을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와 애인 박씨가 김주하 아나운서와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중 미국 산후조리원을 방문했기 때문에 충격은 더욱 컸다고 한다.

강씨가 산후조리원을 방문하고 비용도 직접 부담하는 등 박씨를 세심하게 돌봤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박씨는 40대 초반으로, 작은 체격과 오목한 이목구비, 잘생긴 외모를 자랑한다.

이들을 목격한 한 재미교포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일반적인 커플처럼 보이지 않고 지나친 애정 표현으로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잠시 헤어져도 헤어지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 .

 

 

김주하 아나운서는 두 사람의 수차례 해외여행 증거와 과거 애정이 담긴 이메일 등을 확보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2014년 초 연인이 임신했다는 사실은 이혼소송 이전부터 이미 알려졌다.

그 결과 김주하는 남편에게 여러 가지로 등을 찔렸다.

결국 2014년 9월 김주하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상해 혐의로 형사소송에서도 승소했다.

강씨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5년

1월에는 김주하와 강 씨가 11년 만에 정식으로 이혼하였으며, 당시는 외도 사과금으로 3억 원을 김주하에게 주도록 판결을 받았습니다.

다만 문제는 재산분할 문제였습니다.

2016년에 재산 분할이 최종 판결되었는데, 김주하 명의 재산 27억 중 남편에게 10억 2100만 원을 주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유책 배우자인 남편의 재산 기여도가 인정되어 분할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강 씨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 5000만 원의 위자료를 판결하고, 두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1인당 매달 200만 원씩 양육비로 지급하도록 판결되었습니다.

그러나 김주하 앵커가 사라져버린 11년간을 누가 보상할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법정 공방은 2년 동안 이어졌지만, 결국 김주하 앵커는 이 악연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한편, 김주하가 사기 결혼을 당해왔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속이려고 의도적으로 덤빈 강 씨의 모자가 송대관의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김주하 앵커를 방심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재산분할 비율은 1심처럼 김 씨 45% 강 씨 55%로 유지했습니다.

김 씨가 연간 1억 원을 벌었지만, 강 씨는 연 3억에서 4억 원을 벌며 재산 증식에 더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재판부는 이에 따라 김 씨의 순재산이 27억 원, 강 씨가 10억 원인 점을 고려할 때 김 씨가 10억여 원을 강 씨에게 줘야 한다고 봤습니다.

김 씨는 2004년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강 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뒀으나 강 씨의 외도와 폭X 등으로 불화를 겪다 2013년 이혼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은 남편이 김 씨에게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되 김 씨는 남편에게 13억여 원을 재산분할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김 씨와 남편은 각각 ‘너무 많다’, ‘너무 적다’라며 항소했습니다.

김 씨는 특히 2심에서 남편의 어머니 명의 부동산이 실제론 남편 소유라며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김 씨가 갖게 됩니다.

김주하 앵커는 눈 뜨고 사기를 당하는 힘겨운 결혼 생활을 겪었지만, 앞으로는 자녀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