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휴, 내가 이 나라 뜨고 만다’
혹시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나 동향이 너무 부담스러울 때 우리가 농담 반으로 자주 하는 불평이다.
가끔 말하지만, 나라를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때때로 완전히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이 나라를 떠나기로 결정한 유일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최근 한 유명 스타가 “한국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온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가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해 큰 화제를 모았다.
대체
그의 정체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해외 이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일까요.

여기, 1990년대에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아 한국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는 호주인 남성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샘 헤밍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국인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이 맞습니다.
그만큼 샘 헤밍턴 씨는 한국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죠.
하지만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해외로 이민을 가려 했다”라며 깜짝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도 이미 미국 비자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샘 해밍턴은 국내 최초의 외국인 개그맨으로 불릴 만큼 오랫동안 한국 연예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997년 호주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당시 마케팅과 한국어를 복수전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때는 해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너무 작아서 한국이 나라인지도 몰랐지만, “남들이 안 하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낯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이듬해인
1998년 샘 헤밍턴 씨는 고려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선발되며, 인생 최초로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 현재의 아내인 정유미 씨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죠.

실제로 정유미 씨는 ‘백인 남자를 만난다’라는 이유만으로 길을 걷던 중 낯선 이에게 욕을 얻어먹거나 실제로 뺨을 맞은 적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죠.
그럴 때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샘 헤밍턴 씨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한편 극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한 번은
여러 명의 남자 무리가 데이트 중이던 샘 헤밍턴 씨 커플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고 하죠.
결국 참지 못한 샘 해밍턴 씨가 그들에게 반격을 시도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커플은 해당 남성들과 함께 경찰서를 찾게 됩니다.
샘 헤밍턴 씨가 외국인이었던 탓에 원활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욱 커질 수도 있었던 상황 때문에 정유미 씨 역시 그저 ‘죄송하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하죠.
이 상황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남성들은 기어코 1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합의금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정유미 씨가 “그 금액은 너무 크다. 당장 마련할 수가 없다”라고 사정하자 상대방 무리는 그녀를 비웃으며 “12개월 할부라도 해드려요”하고 깔깔댔다고 하죠.
결국 샘 해밍턴 씨 커플은 1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상대방 측에게 물어주어야 했습니다.
이때 정유미 씨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했던 나머지 보름 만에 7kg 가까이 살이 빠졌다고 밝혔죠.
심지어 이들 커플에게 이런 상황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번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 있어서 밥 먹듯이 용산과 이태원 동네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현재 샘 헤밍턴은 MBC ‘진짜 사나이’, JTBC ‘마녀사냥’,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역대급 히트작을 배출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는 못했다.
한국이 좋아서 이민을 결심한 그는 처음에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한편, 샘 해밍턴은 2002년 월드컵 특집 외신기자를 맡는 행운을 누렸다.
이를 기회 삼아, 이후에도 kbs ‘스펀지’,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등에서 외국인 재연배우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때의
경험이 매우 뜻깊었던 덕에 샘 헤밍턴 씨는 ‘한국에서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죠.
하지만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토종 한국인조차도 살아남기 힘든 연예계에서 외국인이 지속적으로 출연할 수 있는 방송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때문에 샘 해밍턴 씨는 잠시 꿈을 접고 영어 강사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샘 해밍턴 씨는 그저 관람차 방문한 모 코미디 쇼에서 직접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됩니다.
대사는 단 두 마디뿐이었지만, 당시 그를 눈여겨본 코미디언 김준호 씨가 몇 주 뒤 직접 그에게 연락을 하여 특채 개그맨으로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고 하죠.
이렇게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이 바로 전설의 ‘개그 콘서트’.
이를 기회로 샘 해밍턴 씨는 본격적인 연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듯 짬짬이 출연하는 방송 코너에서는 큰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을 한 것 치고는 그를 불러주는 곳이 많았지만, 전업 방송인으로 살기에는 급여가 턱없이 부족했죠.
특히 정유미 씨와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던 그였기에 상황은 더욱더 난감했습니다.
결국 그들이 부부의 연을 맺던 2013년 샘 헤밍턴 부부는 미국으로의 이민을 처음으로 결심하게 됩니다.
‘기회는 위기 속에서 꽃을 피운다’라는 말이 있죠.
샘 헤밍턴 씨에게도 꼭 이 말과 같은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때는
2013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에게 영구 회원으로 채용을 제안했습니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MBC ‘진짜 사나이’로 최고시청률 19.8%를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한 샘 해밍턴은 이후 각종 방송의 단골 게스트로 자리 잡았다.
또한 2016년부터 큰아들 윌리엄, 2017년에는 차남 벤틀리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고정 출연하며 전국적으로 더욱 많은 인지도와 사랑을 얻었다.
심지어 프로그램은 여전히 성공적으로 방영되고 있으며, 윌리엄과 벤틀리의 사랑스러운 모습 덕분에 시청률이 크게 상승하고 있다.
샘 헤밍턴은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생존할 만큼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는 왜 미국 이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2세 자녀 양육에 대한 고민도 불가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전히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다문화 인구가 89만 명, 매해 태어나는 신생아 100명 중 6명은 다문화 가정 아이인 현재까지도 ‘혼혈 따돌림’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례로, 한국인 흑인 혼혈인 모델 한현민 씨 역시도 학창 시절 내내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욕설을 견뎌야 했다고 하죠.
그 밖에도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숨 쉴 틈 없이 달려야 하는 입시제도, 수십 년 뒤까지 내다봐야 하는 노후 대비 등 다양한 문제로 인해 한국에서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문제들이야 국민인 우리가 손을 대기에는 한계가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죠.
토종 한국인인 우리 역시도 치솟는 물가며, 동결된 월급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사정이니 말입니다.
사람들의 편협한 시각과 그로 인한 신체적 정서적 피해로 인해 미국 이민 비자까지 발급해 둔 샘 해밍턴 가족.
부디 제2의, 제3의 샘 해밍턴 가족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조금 더 배려하고 포용력 있는 마음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