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장 디바의 원조는 김완선입니다.
후에 엄정화, 이효리, 가인 등으로 계보가 이어졌죠.
그런데
그 중에서도 엄정화는 가요계의 여왕으로 군림함과 동시에 연기력으로도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나는 그의 재능이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엄정화가 가수로서 자취를 감출 뻔했고,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가 ‘환불원정대’ 프로젝트를 통해 드러났다.
폐암 수술 중 성대가 손상돼 왼쪽 성대 신경이 마비돼 아직도 제대로 닫히지 않고 있다.
수술 직후에는 목에서 공기 빠져나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고, 너무 힘들어서 미칠 것 같았고, 심지어 인생이 끝난 줄도 알았습니다.
엄정화
그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엄정화의 사생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비밀에 쌓여 있습니다.
특히 남자친구와의 열애설이 더 그렇죠.
엄정화의 전략 때문인 것 같은데요.
영화배우 겸 가수 엄정화는 1969년 8월 17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납니다.
올해 54살인데요.
1992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연기자로 데뷔를 준비했고, 동시에 영화의 삽입곡이었던 ‘눈동자’로 가수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후 영화 ‘마누라 죽이기’,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인사동 스캔들’, ‘댄싱 퀸’, ‘몽타주’, ‘관능의 법칙’ 등과 드라마 ‘폴리스’, ‘인간극장’, ‘아내’, ‘결혼 못 하는 남자’, ‘마녀의 연애’ 등에 출연했으며, 동시에 대표곡으로 ‘배반의 장미’, ‘포이즌’, ‘몰라’ 등을 남깁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렇게 화려한 프로필을 가진 여자 연예인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엄정화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어릴 적 엄정화의 집안은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엄정화의 아버지 엄진옥 씨가 중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엄정화가 6살 되던 해 바이크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죠.
엄정화의 아버지는 서라벌 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젊은 시절 아버지의 꿈도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엄정화, 엄태웅에겐 그런 피가 흐르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후 가족은 학교 매점에서 살게 되는 등 고난을 겪게 됩니다.
학교 매점의 딸이라고 불리었고 엄마도 핫도그를 만들다가 기름에 화상을 입어 아주 고생한 적도 있는데요.
하지만, 학생 전체가 율동을 할 때 엄정화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아주 눈에 띄었다고 하죠.
딸 셋과 아들 엄태웅을 두고 있던 집안의 엄마를 돕기 위해 엄정화는 20살 때부터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정화는 곧 MBC 합창단원으로 취직하게 되는데요.
고등학교 3학년 때 MBC 합창단 모집 공고를 봤지만, 전문대 졸 이상만이 합창단에 지원할 수 있어 고졸인 엄정화는 원서를 냈지만 서류에 탈락합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특채를 모집할 때 오디션을 보고 붙었죠.
합창단에 붙고 좋아서 엄정화는 MBC 앞에서 매일매일 출근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한 시간 넘게 서 있었다고 합니다.
합창단원 중에서 제일 막내였고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는 시골 아이였던 터라 프로그램에 투입이 안 돼 피아노 밑에서 서럽게 운 적도 많았다고 하죠.
하지만, 곧 엄정화는 프로그램에 투입되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영화 ‘결혼 이야기’의 단역으로 데뷔하면서 CF까지 찍게 되는데요.
그리고 유하 감독은 엄정화에게 “너는 오렌지족처럼 생겼는데 눈은 되게 착하다”라고 말하면서 첫 감독 데뷔작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주연으로 발탁합니다.
그런데 엄정화가 연기에 뛰어든 데는 고 최진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엄정화는 “내가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진실 언니가 노래를 너무 못해서”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말을 잇지 못했는데요.
당시
이날 방송에는 톱스타 최진실이 노래를 불렀다.
그 사이 노래에 자신이 없는 최진실을 돕기 위해 엄정화가 합창단원으로 영입됐고, 이는 엄정화가 최진실 소속사에 합류하게 되는 운명으로 이어졌다.
이후 영화 ‘아이즈’를 통해 가수로서 명성을 얻었고, 이후 ‘천국만 사랑하면’, ‘배반의 장미’, ‘삼자대면’ 등이 히트하며 섹시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프리 마돈나.
그런데 당시 엄정화의 사고방식은 가수 자신과 비슷했다.
데뷔 초 ‘그 눈 속의 견습생’ 역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다고 한다.
저는 가수니까 평범하게 연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제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고 나니 제 연기가 형편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자신을 너무 미워했던 엄정화는 이후 2년 동안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드라마, 연극, 뮤지컬에만 출연했다.
가수 엄정화가 잊혀질까 봐 걱정했는데, 영화 ‘결혼은 미친 짓’, ‘싱글즈’,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나타난다’에 출연하고 나서 정말 가수가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여배우와 시간이 촉박했는데 이제서야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엄정화 씨는 스무 살이 된 이후 사실상 가장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엄태웅은 “내가 이 나이까지 배우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다 누나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엄태웅은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무명의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30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용돈으로 생활했다. 그는 이 돈으로 매일 홍콩에서 영화를 빌리는 데 썼다고 한다. .
엄정화는 그녀에게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지만, 다행히 올해 ‘실미도’로 유명세를 얻은 이후 연기자의 길을 갈 수 있게 됐다.
제가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고 했어요.
아버지를 정말 닮은 자매일지도 모르는 엄정화는 동생 엄태웅의 결혼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엄태웅의 현 아내 윤혜진을 소개한 사람은 바로 엄정화였다.
엄정화는 언니가 누구와도 연애하지 않는 게 안타까웠고, 좋은 동생들이 있다며 형수 윤혜진을 추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자신의 결혼 불능보다 엄정화 남동생의 결혼 불능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그런데 엄정화가 재벌 2세 남자와 열애설이 돌고 있다.
엄정화는 2002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D증권 오너 아들 이모씨였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엄정화가 영화 ‘결혼은 미쳤다’ 활동 중 적극적으로 결혼관을 밝히자 두 사람의 결혼설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엄정화는 불만을 토로했다.
엄정화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비겁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냥 이대로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좋겠다. 괴롭힘당하는 것에 지쳤고 거절해서 미안해요.
한편
언론에서 자신의 결혼설을 보도하는 것에 대한 시달림이 지겹고 남자친구에게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미안하다는 심정이었죠.
이후 두 사람은 조용히 결별하게 됩니다.
그 후 엄정화는 2007년과 2008년 모델 전준홍과 열애설이 두 번 터지기도 합니다.
모델 전준홍은 엄정화보다 8살 연하이고 아시아 모델상 시상식에서 패션 모델상을 수상 톱 모델입니다.
또한, 드라마 ‘대한민국 변호사’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는 중이었죠.
열애는 부정하고 결별만 인정하는 전략이었죠.
어쨌든 이런 엄정화 측의 전략 때문인지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고 잘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엄정화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을 극복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신력이 굉장히 강합니다.
류승룡이 촬영 중에 본의 아니게 엄정화 씨를 두 번이나 울렸다고 하는데, 한 번은 저수지에 빠진 엄정화를 구하려고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몰입한 나머지 힘 조절이 안 돼서 가슴뼈를 너무 세게 눌렀는데 촬영 끝나고 나서 엄정화가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또, 말다툼을 하는 신에서는 류승룡이 엄정화의 코끝을 쳐서 코피까지 났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어도 바로 잊고 앞에 남아있는 일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배우의 기본 자세라고 할 수 있죠.
한편
하지만 엄정화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2010년 엄정화는 이승철, 윤종신과 함께 슈퍼스타K의 최종 심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저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엄정화가 이승철처럼 거친 말을 던지지 못하고 막연한 비난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출연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엄정화의 실제 성격도 그렇습니다.
2010년, 엄정화는 수술실에 들어가려던 순간, 자신이 죽으면 인생은 의미 없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다가 성대가 손상되고 왼쪽 성대 신경이 마비되어 아직도 성대가 제대로 손상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수술
직후에는 목에 바람 새는 소리만 났기에 정신병이 오는 것 같았다고 할 만큼 힘들었으며, 인생이 끝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죠.
지금은 그나마 목소리가 어느 정도 돌아와 연기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지만, 이후에 정규 앨범은 10집 한 장뿐이고 엄정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파솔라 음역대를 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종민이 엄정화의 백댄서 출신이고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가인의 초대 무대에 엄정화와 함께 참여하는 등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김종민도 엄정화의 백댄서 출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되레 ‘코요테’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엄정화 씨가 이제는 아팠었던 과거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더더욱 건강해지고, 밝은 모습으로 활동하기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