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조던이 가난한 시절 자신을 도와준 한국인을 약 20년만에 찾아간 진짜 이유, 모두가 그 사연에 눈물만 흘리게되는데요

오늘은 마이클 조던이 평생 갚고 싶어 했던 은혜, 그리고 그 은혜의 주인공인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 사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축구와 농구 중 어느 종목이 더 힘든 스포츠인지를 논하는 것보다도 더욱 치열한 주제입니다. 바로 스포츠 역사상 리오넬 메시와 마이클 조던 중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실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는, 많은 이들이 마이클 조던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시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우승을 이루어내며, 이제 메시의 진정한 라이벌은 호날두가 아니라 마이클 조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오랜 기간 축구 팬으로서 메시를 응원하는 편에 서고 싶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을 생방송으로 관람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니까요. 그러나 만약 운명 같은 기회로 메시와 조던 중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마이클 조던에게 먼저 사인을 요청할 것 같습니다. 이는 스포츠의 한 장르를 넘어선 그들의 영향력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들이 남긴 불멸의 순간들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지금의 한국 한국 농구의 추락을 생각해보면 정말 꿈만 같던 시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저 역시도 90년대엔 농구의 광팬이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축구에 관심이 더 쏠렸고요. 이처럼 메시와 조던의 시대를 모두 경험하고 지켜봤던 스포츠 팬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메시와 조던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마이클 조던은 개척자였고 메시는 정복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든 스포츠든 모든 상황에서 결국 개척자가 정복자보다 고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메시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게 하지만 8,90 년대를 살았던 분들이라면 대다수가 조던 때문에 농구와 NBA를 좋아하게 됐죠 조던의 전성기인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국내 방송사에서는 매주 조던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당시에 엄청 높은 시청률을 선보이며 농구라는 종목에 관심을 전국적으로 높였습니다.

 

 

이걸 비단 90년대의 추억팔이라고 하기엔 2020년대에도 조던의 신드롬은 여자 전 세계의 기업이 우한 방역으로 인해 매출 급락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조던의 일생을 다룬 라스트 댄스라는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에 방영되자마자 넷플릭스의 매출은 물론 나이키마저 구4일생으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나이키는 방역 정책으로 야외활동이 줄어들자 방역 이전과 비교해 40프로나 매출이 급락했지만, 라스트 댄스 이후 에어 조던의 매출이 폭발하며 나이키를 주가 폭락에서 극적으로 구해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정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는 만약 나이키가 조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글로벌 1위의 브랜드로 성장하고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죠. 때문에 아직까지 조던은 은퇴한 선수가 현역 시절보다 오히려 수입이 더 높은 스포츠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이 기록을 여전히 유지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업적인 측면이나 파급력 말고 순수한 업적을 갖고 따져본다 할지라 저는 비록 메시의 광팬이지만 약간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아마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월드 컵마다 매번 고정 손님처럼 틀어줬던 지금은 하늘로 떠나가 버린 펠레의 특집 방송을 기억하시겠죠. 아직도 펠레 월드컵 3회 우승기록을 깨뜨린 선수가 없어 옛날만 하더라도 월드컵 특집 방송은 곧 펠레 특집이란 게 마치 공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메시의 월드컵 특집을 내보내기엔 그의 공격 포인트를 떠나 우승 횟수가 한 번에 그치니 프로팀 성적과 발롱도르 횟수는 앞서도 월드컵 업적만큼은 펠레와 비교하는 게 민망하죠. 요약하자면 업적에 더해 파급력 측면에서 아직 메시는 조던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마이클 조던의 시대는 한국의 글로벌 파워가 아직 낮았던 시기라서 정말 서운하리만큼 우리 대한민국과 인연이 없는 선수이기도 했죠. 90년대의 여러 스포츠 스타들과 헐리우드 배우들처럼 일본만 방문했던 그였기에 다른 스포츠 레전드들보다 비교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분명 유명합니다.

 

 

사실 에어조던의 매출은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더 높은 상태지만 그럼에도 서울을 세 번째로, 택한 것은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뿌듯한 소식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인의 따뜻함을 추가적으로 보도했던 기사가 나와 화제인데 이는 마이클 조던의 궁핍한 시절을 도와준 어느 한국인에 관련된 이야기였죠 사실 조던은 그은한 MBA 스타들의 빈민과 성장 스토리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 덕분에 중산층 정도의 환경에서 자랐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밝혔듯 조던 역시 대학 시절엔 그는 대학 농구팀에 입단 후 20달러밖에 없어 전화 걸 돈조차 없었기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며 돈을 부탁했고 다음 편지에 사용 우표마저 요청할 정도였죠 대학 졸업 후시카고 볼스의 입단이 확정되었고 간신히 항공비를 마련해 공항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공항에서 구단의 경기장까지 가기 위한 차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조던은 공항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택시기사들에게 사정했지만, 사실 돈 한 푼 없이 오히려 위압감을 주는 덩치 큰 흑인이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 택시기사들은 황당한 듯 손사래를 치거나 대놓고 욕을 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하죠. 이를 딱하게 본 어느 안인 택시기사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경기장까지 흔쾌히 태워졌고 조던은 경기장에 도착한 뒤 반드시 갚겠다며 미안함을 표시했었죠. 이 말을 들은 한인 택시기사는 어린 마이클 조던을 향해서 방긋 웃으며 안 갚아도 되니까. 위대한 선수로 성공하세요. 제가 당신의 첫 번째 팬이 되겠습니다. 라며 그저 따뜻한 응원을 보낸 채 연락처 하나 안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 후 조던은 선수생활 내내 기회가 닿는 대로 이 아닌 택시기사를 언급하며 수소문했지만, 택시기사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다가 조던의 마지막 은퇴식에서 모습을 드러냈었죠. 참고로 이 자리에서 밝혀진 택시 기사의 이름은 박상복 씨라고 전해집니다. 그는 조던이 자신에게 빚진 건 택시비가 아닌 위대한 선수가 되겠다는 약속이었다며 이 어려운 약속을 지켜낸 조던에게 오히려 본인이 고마운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조던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따뜻한 분이라며 자신의 첫 팬이 되어준 이 아닌 택시 기사를 십수년 농구를 하는 동안 단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화답하였죠 이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시카고 한인타운에선 유명한데 추가적인 후문에 따르면 조던은 억대해 선물로 그날의 택시비를 갚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특유의 정문화를 자랑하고 있는데, 오늘날 한국의 위상에 이런 교포분들의 따뜻한 사례도 분명히 한 몫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